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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만인을 향한 거룩한 부르심
조회수 | 1,929
작성일 | 07.04.27
푸른 목장

4남 1녀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곱게 자랐으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 이원미 테레사 자매가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용돈을 모아 어려운 친구들을 도왔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독재에 맞서 싸우다 2학년 때 제적당한 뒤, 노동운동을 하다가 87년에는 수녀원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성소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으며, 허약해진 몸으로 사글세방을 얻어 공장 일꾼과 파출부 등의 일로 번 돈을 빈민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마지막 삶을 투신합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열흘 전 자신의 두 눈을 앞 못 보는 이를 위하여 기증하며 이 같은 말을 남깁니다.

“33년 간 밝은 두 눈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본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 밝은 세상을 보게 하는 일이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내 몸은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진정 착한 목자를 따라 살았던 성소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부르심, 그 생명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한 모든 이들의 땀과 눈물에 진정 오늘 묵시록 저자의 말씀이 이루어 졌으면 싶습니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묵시 7, 17).

주님의 참 부활을 믿었던 역사이래 숭고한 이들의 소명과 주님 희망의 말씀이 없었던들 그 일들을 과연 훌륭히 끝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된 부르심을 받았던 모든 이들은 끊임없이 착한 목자께서 인도해주시는 ‘푸른 목장’을 희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시편의 마음을 함께 되 내이고, 읊고 또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 1~4).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부를 수 있는 시편의 노래입니다.

성소주일을 생각함

성소주일에 모든 신학교에서는 엄청난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청소하느라 신학생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을 ‘청소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다녀간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늦게까지 치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래도 그 일들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들 사제성소를 뒤따를 후배들을 위한 작은 잔치였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진정 ‘부르심’은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아모스’는 당신의 부르심에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아모 7, 14~15).

가끔은 세상의 유력한 이들을 뽑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이들을 당신 구원의 도구로 뽑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한 인물들이었는지…,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1코린 1, 26).

주님께서는 아무런 능력도, 권력도 없는, 정말 부족한 사람들을 복음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무엇이 잘나서 그 거룩한 성소에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성소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숭고한 뜻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며, 그 길이 성소의 길인 것입니다. 그 같은 아름다운 일을 할 때도 내가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 16).

분명 착하신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의 기쁨과 참된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상의 천국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소의 삶인 것입니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 14).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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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소(聖召)주일! 거룩한 부르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날이 며,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서 그 부르심을 얼마만큼 의식하며 지내고 있는지 묵상하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채워나갈는지는 오롯이 그 자신에게 유보된 선택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명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과 소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며, 어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 어려움과 부담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르신들 역시 당신들이 살아 낸 삶을 되돌아보며 보람과 자부심, 그리고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으로 기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그 삶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돌려집니다.

그렇기에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라도 그것을 참아내는 것이 보통 우리네 사는 모습일 것이고, 젊은이들에게 그와 같은 후회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들과 주변 어른들은 여러 가지 조언들을 건네게 됩니다.

젊은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건네는 인생에 필요한 여러 조언 들을 심각하게 생각해 봅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 인간 본연의 선한 의지를 표현하며 사는 우선적 가치를 강조하며 인생을 통해 우리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는 삶의 방법에 대한 권고를 애써 외면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그저 입신양명과 부귀영화! 소위 출세한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종용하고 있지 는 않은지? 우리 사회에서 출세한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부각되어 모두의 인생 목표가 되어 버린 시대의 흐름을 보며 한 쪽으로 치우쳐버린 일방적인 가치관에 조심스럽게 염려의 마음을 표합니다.

우리네 인생을 통해 참으로 행복한 삶의 지혜를 우리 아들, 딸들에게 전해주어 야 합니다. 부자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들을 실현하는 삶도 그들에게 꼭 필요함을 알려야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자비의 삶을 젊은이들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먼저 생각을 수정하고, 그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 춘천교구 여성제 부르노 신부 : 2016년 4월 17일
  |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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