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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내가 만난 세리
조회수 | 1,641
작성일 | 07.11.09
어느 주일 새벽미사 때였습니다.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교우 두 분이 성당 맨 뒷자리, 그것도 중앙 통로 쪽이 아니라 창 측 구석에 자리를 잡고 미사를 봉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새벽미사에는 그리 많지 않은 교우들이 참여하시기 때문에 대부분 좌석 뒤로는 앉지 않으시는데, 유독 그 두 분만 뒷자리에서 미사가 끝날 때까지 고개도 한 번 제대로 들지 못하신 채 미사를 봉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미사가 끝나면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사 후 얼른 제의를 벗고 성당 밖으로 나가서 그 부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 부부를 만나 이유를 어렵사리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너무도 짧고 간단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성당에 나와서’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를 하시면서 어찌나 부끄러워하시고 미안해하시던지 오히려 제가 죄송할 정도였고, 괜히 여쭈어봤다는 후회까지 들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 한 마디 대답이 짧고 간단한 것이었겠지만, 그 부부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어려운 고백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사의 이러저러한 일들에 치이다보니 그동안 게을리하고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신앙생활이었겠지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하느님을 뵈올 면목이 없어서 몇 번이고 성당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제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의탁하며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주님 대전에 나와,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뉘우친 분들이었습니다. 그 부부가 다시 주님 대전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갈등과 고민 속에서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고, 용기와 힘을 내었을까 요? 하느님께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창피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수줍게 말씀하시던 그 부부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 앞에서 용기를 내어 고백한 것이 커다란 기쁨이 되었던지 그 부부는 웃으면서 맘 편히 집으로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고 계십니다. 그날 그 부부를 만났던 일은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고백했던 복음 속 세리의 모습을 묵상해 보기에 충분한 만남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있는데, 참으로 흐뭇했었습니다.

그 부부보다 제 자신이 아침부터 굉장히 커다란 위안을 얻게 된 것 같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체험한 것 같았습니다. 밝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제 안에서도 기쁨과 행복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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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노성호(요한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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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초대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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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 됨의 길에서 넘어야 할 관문은 겸손의 문입니다. 겸손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인도해주는 덕목입니다. 겸손함은 강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인지 인정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나를 받아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곳곳에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죄 많은 존재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죄인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인간의 죄악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을 받아주고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이 결국 승리하며, 인간과 세상을 구원한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하느님의 자녀, 고귀한 인격으로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나며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이 자격이나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참 제자가 되는 길에서 넘어야 할 유혹 중 하나는 마치 내가 계명을 지키고 선을 행하며 열심히 기도를 올려 하느님 앞에 설 자격이나 권리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죄인인지 알지 못하며, 율법만으로는 의로움에 이를 수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그는 겉으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왜곡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 또한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로움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며, 공로나 자격으로 그분께 요구할 수 없는 것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자신이 부족한 죄인이며 쓸모없는 종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게 합니다.

참 제자 됨의 길에서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유혹은 시련과 실패, 두려움과 비참함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종종 삶에 위기가 닥칩니다. 그때마다 그동안 쌓아온 신앙생활이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그러한 시련이 모든 사람에게 생기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련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시련 안에서 견디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시련은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죄악을 인정하도록, 하느님의 은총만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겸손의 덕을 다져줍니다.

나의 신앙이 타인에 대한 단죄나 하느님 은총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나의 나약함이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나를 비우고 버리는 삶의 길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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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한민택 신부
평화신문 2019년 10월 27일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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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기도는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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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앙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참되고 올바른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며 참다운 기도의 방법을 질문합니다. 하지만 기도에 ‘잘 되는 기도가 있고, 잘 안 되는 기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시간을 함께 하는지가 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이야기를 통해 어떤 마음 자세로 기도에 임해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십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의 삶과 노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치며, 불의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십계명은 완벽하게 지키는’(루카 18,11 참조) 사람입니다. 반면 죄인이라 불리는 세리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돈을 갈취(?)하여 로마에 바치는 매국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계명을 성실하게 준수한다고 생각하는 바리사이의 기도는 당연히 하느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의로운 기도로 인정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처사는 논리적이지 않고, 선을 중시하는 신앙의 측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전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타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 18,9 참조)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만족감’과 ‘자만심’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의로운 존재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의 올바름을 내세울 만한 어떤 ‘의로움’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집회 35,21 참조)는 말씀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선행, 제물 봉헌, 단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께 의탁해야 이뤄집니다. 만일 의로움이 자신의 행위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하느님과 같은 ‘구원자’로 오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 자세로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과 깊은 친교를 맺으며, 따스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시며 함께하시는 주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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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노희철 베드로 신부
2019년 10월 27일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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