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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5주일 독서와 복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조회수 | 2,209
작성일 | 10.02.06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서 6,1-2ㄴ.3-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 있었다. 3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아뢰었다.
  
우리는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15,1-11<또는 15,3-8.11>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루카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

베드로는 지쳐 있었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질’도 없는 낚시는 얼마나 ‘긴 인내’를 요구하는지요? 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멍하니 새벽을 맞이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운명을 바꿀 선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머뭇거리고 망설였을 것입니다. 밤새 허탕을 쳤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물을 내립니다. 결과는 배 두 척으로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의 고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선택되었습니다. 지친 어부에서 예수님의 으뜸 제자로 바뀐 것입니다. 변화의 주체는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선택하셨기에’ 베드로는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운명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렸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바뀝니다. 나무가 성장하듯 사람도 성장합니다.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려면 어떤 형태로든 ‘부르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따라야 합니다. 고난과 저항이 있더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베드로에게는 부질없는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밤새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그물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뜻을 고집했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님의 말씀에 자신의 뜻을 꺾었습니다.  

매일미사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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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아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하루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이 얼마만큼 남아 있습니까?

사제 서품 후 첫 미사 때, 새 사제들의 인사말 내용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 인사입니다. 진솔한 표현이기에 잔잔한 전율도 전해 오지만, 이런 인사를 들을 때마다, 저 마음만 잃지 않으면 충분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5년, 10년, 20년이 지났을 때에는, 과연 어떨까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정말로 깨달았습니다. 이사야는 가까이할 수도, 범접할 수도 없이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스러움을 느꼈고, 바오로 사도는 박해자였던 자신의 과오를 명백히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는 자신이 그분과 함께하기에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도와 드리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마워하셔야 한다거나 내가 도와준 사람들이 나에게 보답해야 한다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자신들이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거나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칠삭둥이라고 자처하는 겸손한 이들을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오늘날 복음 선포자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의탁하는 겸손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매일미사 2016년 2월 7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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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지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거둘 수 있도록 저희의 귀와 마음을 열어 주소서.

▪ 독서

군중은 예수님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모든 것은 하느님 말씀의 능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주일의 복음에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자렛에서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데, 이때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다.” (루카 4, 32)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 (4, 36) 하며 서로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겐네사렛 호숫가의 고기잡이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이미 고기잡이는 끝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하십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로 자란 예수님께서 고기잡이를 직업으로 살아온 베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당신 말씀으로 자신의 장모를 낫게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4, 38 – 39).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스승님’ 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위에 있는 이, 명령하는 이, 권위자를 뜻합니다. 고기잡이의 권위자는 아마도 베드로였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이 고기를 잡을 시간도 아니고, 깊은 데 그물을 던지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는 것이 헛일이라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물을 던집니다.

이렇게 말씀의 능력을 믿고 따른 데서 나온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6절), “배가 가라앉을 지경” 으로(7절)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8절). 이러한 베드로의 반응은 제1독서에 나온 이사야의 반응과 공통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청하는 것은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관계 단절을 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이사 6, 3) 자신이 ‘입술이 더러운 사람’ 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그런 처지에서 하느님을 뵈었기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고백했던 것입니다(이사 6, 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한테서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를 당신 곁으로 가까이 부르십니다. 이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그를 정화하시어 당신께 합당한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0절) 여기서 고기잡이 이야기는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지금까지 복음이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였다면, 이 마지막 말씀은 그 고기잡이가 제자들에게, 그리고 복음을 읽는 공동체에 중요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사람을 ‘산 채로 붙잡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11절에서 말하는 그의 부르심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쓰며 밤을 새는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고기가 잡힐 만한 곳에 수고하며 그물을 치지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날들도 허다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지금 다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면, 그는 이날을 기억하며 주님의 말씀대로(루카 5, 5) 다시 배를 저어 바다로 나아가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곳에 그물을 던질 것입니다.

▪ 성찰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이 한 것처럼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는 교회라는 배를 저어 이 세상으로 나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고기잡이 기적을 통하여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11절), 인간적인 판단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우리도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는 그분의 말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말씀을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기도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당신께서 그것에 희망을 두게 하셨습니다. 당신 말씀이 저를 살리신다는 것 이것이 고통 가운데 제 위로입니다.” (시편 119,49 – 50)

▥ 안소근 수녀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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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세 명의 제자, 곧 시몬 베드로, 그리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의 가장 중요한 때에 예수님과 함께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에 초대 교회에서도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 제자들의 부르심은 개인적인 부르심이면서 교회 공동체의 부르심과 소명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군중을 가르치신 다음, 시몬에게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깊은 물은 언제고 위험합니다. 갑자기 풍랑이 일 수도 있고, 사고가 났을 때 멀쩡히 돌아올 수 있는 확률도 높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을 낚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복음을 선포하고자 위험을 무릅쓸 각오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아침나절에는 고기를 잡을 가능성이 없고 밤에 그물질을 해야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내리라 하셨고, 그 결과 배 두 척이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복음 선포를 비롯한 하느님의 일은, 사람이 쌓아 온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분열될 수 없는 교회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찢어져서 여러 개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디 하나로서 다양성 안에서 언제나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개별적인 부르심이면서 하나의 공통된 응답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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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사바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2월 10일
  |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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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μὴ̀ φοβοϋ : 메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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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방문 혹은 소명을 받은 이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전형적인 성경 구절이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본 즈카르야가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가브리엘 천사는 “두려워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루카1,13) 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 라고 말합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는 고기 잡는 어부인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갑자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시몬이 ‘두려워’하며 저에게서 떠나가 달라고 애원하자, 예수님도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라고 하십니다.

즈카르야에게 천사가 말한 ‘두려워하지 마라’(μὴ̀ φοβοϋ̈ : 메 포부) 라는 이 표현은, 즈카르야의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셨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에는 마리아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으며, 마리아에게 벌어진 일을 통해서 하느님이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당신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인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안에 당신이 함께하실 것임을 알려주는 것 입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표현은 우리가 하느님께 소명을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운 마음을 안심시킨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느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고, 은총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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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수완 로마노 교수(하상신학원 영성신학)
수원교구주보 2019년 2월 10일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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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죄인이라는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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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하면 날마다 늘어나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무위에 이른다.”(為學日益,為道日損,損之又損,以至於無為) 노자 도덕경 48장의 내용이다. 여기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말한다. 지식의 축적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이뤄지며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 인생을 설계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할수록 지식이 쌓이는(益) 것과 비례하게 번잡함과 난해함도 함께 증가(益)한다. 반면에 도를 행하는 사람, 즉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그 행위를 반복할수록 고집이나 집착이 점점 사라지고(損) 그에 비례해 수고로움이나 의심도 함께 줄어든다(損).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계획과 기준을 내려놓는 것이 되므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위’, 곧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무위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한다.’(無為而無不為) 즉 그는 하느님의 일과 자기의 일이 하나가 돼 ‘스스로는 하는 일이 없지만(無為)’ 그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일이 된다.(無不為) 내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가의 차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이사야와 바오로, 베드로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을 ‘입술이 더러운 사람’, ‘칠삭둥이’, ‘죄인’ 등으로 표현하며 자신이 무능력하거나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죄 많은 인간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반해 위대한 인물들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거리낌 없이 고백한다.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어야 했다. 신약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비난할 줄은 알았어도 자신과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거나 그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지는 못했다. 아니 고백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른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합리적 계산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것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삶의 기적들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베드로는 오늘 자신의 인생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험을 했다. 복음을 읽고 있자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구태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고 더군다나 베드로에게 고기잡이와 관련된 조언을 하신다. 어부였던 베드로도 아직은 낯선 예수님의 지시에 아무 저항 없이 그물을 내린다.

그는 어부였고 예수님은 목수였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그가 낯선 남자의 한마디에 순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동선에 그의 시선이 줄곧 함께했음을 짐작게 한다.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고기가 잡힌 것이다. 이 사건 앞에서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이 죄인이라 고백한다.

죄인이라는 고백은 쉽사리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모든 것들이 잘못됐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획한 위치에 끊임없이 그물질을 했지만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 그런데 바로 그 호수에서 예수님의 한마디 지시로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만큼의 고기를 잡은 것이다.

찢어질듯한 그물은 베드로가 상상할 수 있는 희망의 부피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으로는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이 일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지금 눈앞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지금까지 해왔던 스스로의 계획과 기준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은 근본적인 삶의 전환을 이루게 해준다. 스스로 주인이 돼 계획하고 실패하고 낙담하는, 그래서 날마다 쓸모없는 것이 자꾸만 늘어나는 과거의 삶에서 불신과 두려움이 날마다 줄어드는 신앙의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 전환점에 죄인이라는 고백이 있다.

혹자는 오늘 베드로의 체험이 내심 부럽다고 여길 것이다. 표징을 요구한 유다인들처럼 신앙의 견고함을 위해 그와 같은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나길 희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나 바람은 여전히 외부적 조건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위학(爲學)의 태도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 자신의 계획이나 의도에 의해 이뤄진 일들은 많지 않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의 부모는 왜 그분들이어야 하는지 또 지금의 나는 왜 여기에 서있으며 왜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됐는지 등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구하려 하는 순간 우리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 인생은 객관적 지식이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이며 초대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도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한 베드로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했고 그의 응답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했던 일이 그에게 똑같이 재현되도록 했다. 즉 예수님에 의해 ‘낚인’ 그는 예수님의 예견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일이 그의 일이 되는 것, 그것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하는’ 신앙의 삶이다. 베드로와 함께 우리 신앙의 주춧돌을 놓은 바오로 사도의 오늘 고백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코린 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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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년 2월 3일
인천교구 서강휘 신부
  |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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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녹) 연중 제20주일 독서와 복음 [불을 지르러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  [4] 1920
606   [청주]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1요한 4,19).  83
605   [수도회]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  [3] 2153
604   [인천] 하느님의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  [4] 777
603   [의정부]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2] 614
602   [마산] 옳게 깨어있음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이다  [4] 2555
601   [수원] 깨어서 구원을 기다림  [3] 2339
600   [서울] 깨어 있기  [6] 2306
599   [대구] 자기 관리. 자기 성찰  [3] 637
598   [군종] 행복을 향한 기다림의 자세  [1] 1934
597   [안동] 남 몰래 드리는 희생제물  [4] 2149
596   [대전] 우리의 네 번째 친구는?  [2] 706
595   [부산]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5] 2661
594   [광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  [1] 2325
593   [전주] 충실하게 깨어 기다림  115
592   [원주]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 항상 ‘의식’하며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1] 2367
591   [춘천] 사랑 나누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1] 123
590   (녹) 연중 제19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2] 1233
589   [수도회] 자녀들에게 물려 줄 재산은 하느님께 향하는 삶  [3] 2416
588   [대구]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4] 2463
587   [서울] 참으로 부자 되는 길  [6] 2706
586   [수원] “불나방”  [4] 2636
585   [마산] 내 재산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2] 2501
584   [인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 부유한 되었으면 합니다.  [3] 2381
583   [안동] 이 시대의 괴물 '탐욕'  [4] 2433
582   [부산] 베품은 하느님의 일  [7] 2403
581   [광주] 예? 보이는 것만 믿으라굽쇼?  2469
580   [전주] ‘탐욕의 곳간’과 ‘사랑의 곳간’  [2] 122
579   [제주] 쉬지 않는 젓가락  91
578   [원주] 재산의 소유와 분배  2312
577   [춘천] 허무로다, 허무!  [1] 83
576   [군종] 참된 부자가 되려면  [2] 2550
575   [의정부] 확실하고 유일한 보증  92
574   [청주] 모으는 데보다 잘 쓰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92
573   [대전] 이제부터는 하늘에 저축하라.  [2] 2474
572   (녹) 연중 제18주일 독서와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  [3] 1789
571   [수도회] 간절한 기도  [6] 2001
570   [청주] 기도하며 하느님과 싸우고 그분을 만납니다.  [3] 597
569   [서울]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  [7] 2303
[1][2][3][4] 5 [6][7][8][9][10]..[20]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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