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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조회수 | 2,133
작성일 | 10.09.10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세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잃었던 양 한 마리,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음과 되찾음’입니다.

주제가 ‘잃음과 되찾음’이라고 해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잃었다가 되찾은 양 한 마리와 은전 한 닢 작은아들은 분명 아닙니다. 진짜 주인공이자 핵심은 양 한 마리를 잃었다 찾아 기뻐하는 양의 주인과 잃었던 은전 한 닢을 찾아 기뻐하는 여주인과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아 기뻐하는 아버지가 바로 그 진짜 주인공입니다.

좀 엉뚱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더 뻔뻔스러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하느님 앞에 나갈만한 위인이 못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비의 하느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그것이 뻔뻔스러운 모습 같아도 하느님만은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기다리고 계셨고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했던 작은 아들과 같은 우리였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또는 아버지 곁에 머물긴 했었지만 정작 아버지의 사랑을 배우기는커녕 자신의 공적을 따지며 작은 아들과 자신을 비교하려드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경쟁적인 큰 아들의 모습을 우리가 지녔었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때론 작은 아들로서 때론 큰 아들로서 하느님 앞에 살아갑니다. 두 아들 어느 하나 아버지 앞에 잘한 것 없고 잘난 것 없는 부족하고 못난 아들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두 아들 어느 하나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 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그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하느님 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들의 진짜 아버지 그 이름하느님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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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진욱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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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론 때 교우분들에게 살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 물론 대답을 듣고자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최고의 관심사를 하느님으로 확고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한 것이고, 오늘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사실 신앙인으로 살면서 하느님을 최고의 관심사로 두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본질인 하느님을 잊고, 자꾸만 비본질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다. 알맹이는 잊고, 껍데기에만 몰두한다. 그러다보니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어둠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본질을 향한 여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 여정에 충실한 것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본질을 향한 여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관심사가 하느님이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그 여정에 충실할 수 없다. 당연한 이치다. 관심사가 하느님이 아닌데 어찌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는 자비의 복음을 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복음이라고 일컫는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최대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다. 우리들을 찾아 나서시고 또한 용서해주시며 품어주시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하느님을 닮아야 할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최고의 관심사로 두기보다는 하느님을 삶의 부록쯤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관심사를 하느님께로 돌리자. 이것이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회개다.

<대전교구 송우진 베드로 신부>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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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예수님을 통해 계시되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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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해 주일복음은 루카가 전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만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 을 전하기 위해 집필한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연중 제24주일 복음은 루카 복음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불평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신의 유산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돌아갈 유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정리하여 원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치는 일을 하다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 집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이들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온 사람을 반기듯 큰 기쁨으로 작은 아들을 맞이합니다. 작은 아들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신지를 깨달으면서 아버지께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인색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작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비유를 복음의 핵심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서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이들에게 ‘작은 아들’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 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선하신 모상을 따라 창조하셨고, 이들을 자비로운 모습으로 맞이하는 분이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시 면서 루카가 전하는 오늘의 복음을 주제로 ‘자비로우신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십 니다. 다음 기도는 ‘자비의 희년 기도’ 중에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 희년 기도를 가슴 깊이 느끼면서 조용히 소리 내어 바쳐 봅시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는 이들도 나약함으로 갈아입고 무지와 잘못에 빠진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바라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만나 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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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최교선 토마스 신부
2016년 9월 11일
  |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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