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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기도하며 하느님과 싸우고 그분을 만납니다.
조회수 | 601
작성일 | 16.07.23
[청주] 기도하며 하느님과 싸우고 그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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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합니다. 앓는 이를 위해, 구직을 위해, 가정의 평화를 위해, 풍성한 수확을 위해 또 모든 위험에서 구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의심합니다. 가장 긴급하고 절박한 청원을 드릴 때 주님은 어째서 침묵하실 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도 중에 하느님과 논쟁을 벌이 기도하고 그분의 처사에 원망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예레 15,18). 기도가 종종 하느님과의 싸움이 됩니다. 야곱이 야뽁강에서 밤을 새우며 치렀던 그 씨름이(창세 32,23-33) 오늘도 우리에게 계속됩니다.

이번 주일, 교회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소돔에 사는 주민을 위해,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그곳에 사는 의인들을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시라고 청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하느님의 넓은 마음, 그분의 자비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를 더 잘 깨닫게 됩니다. 나중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백성을 살리기 위해 의인의 숫자를 더 감할 생각을 합니다. 만일 그 도시에 단 한 명의 의인이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를 보아 악인을 벌하지 않으실 것인가를 묻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마다 쏘다니며 살펴보고 알아보아라.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는지 광장마다 찾아보아라”(예레 5,1). 사실 우리는 예언자들이 찾던 유일한 의인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음을 믿어 고백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일곱 번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오늘처럼 제자들에게 당신의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를 포함하여 그분은 정말 많이 기도하셨습니다(3,21; 5,16; 6,12; 9,18; 11,1; 22,41-46). 이런 모든 정황은 예수님의 온 생애가 기도로 뒤덮여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친구에게 빵을 꾸 어 달라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5-8절). 이 비유는 기도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바쳐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하느님께서는 꾸준히 기도하 는 사람의 청만 들어주시기 때문이라고 알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보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로 하느님을 바꾸려 하지 말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바꾸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주님의 빛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마음을 지니기 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시간 동안 기도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에 닿을 수 있게 하려고 바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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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 2016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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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은 넓고 깊고 높은 사랑입니다. 때로는 품으시고 때로는 침묵하시며 기다리시고 마침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이시간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과의 만남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도 양보하는 힘, 견줄 바 없는 특권, 하늘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며 믿음은 열쇠를 돌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며 세상의 기둥이고, 지혜의 창고이며 영혼의 힘입니다. 낙심의 치료제이며 슬퍼하는 사람들의 위로이며 의로운 사람들의 승리입니다. 하늘의 삶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매 순간 기도하며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희망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저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제자는 지금까지 기도를 안 하고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회당의 집회와 가정의 부모로부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유다의 아이들치고 그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당시의 율법교사들은 기도에 대하여 매우 자상한 규칙과 절차를 만들어서 어린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기도하는 생활에 젖어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까요?

자기들이 하는 방법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방법이 분명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기도가 아니라 삶으로, 전인격적으로 아버지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 기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입으로 수없이 외우는 것으로 족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주기도문을 외운다면 기도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루카11,2)하고 기도하는 방법을 모범으로 보여 주신 것이지 그 기도문을 외우고 있으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뼈대가 되시고 거기에다 살을 붙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행동은 주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길 청해야 하고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 고 청하되 거기에 걸 맞는 삶의 태도는 우리의 몫이란 말입니다. 사실 “기도의 목적은 많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 그리고 의지의 실천에 있습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기도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길 때 기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잘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기도하면서 배웁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피아노를 자꾸 쳐야 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예수님께서도 한밤중에 기도하시고 때로는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그리고 음식을 잡수실 겨를도 없이 활동하시면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건방진 삶을 사는 것인지요?

우리는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로 정의합니다. 대화는 일방적이 통보가 아니라 주고받는 것입니다. 서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한다는 것이 기도문을 외우는데 급급해 하고 자기의 바람을 청하는데 그치고 맙니다. 주님의 뜻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욕심이 앞서고 떼를 쓰며, 침묵하시는 주님께 투덜대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거지처럼 달라고만 하고, 때로는 흥정하고 심지어 협박하기도 합니다. 대화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의 소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만남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회복이요 만남입니다.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11,9-10). 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청하지도 않고 받길 원하고, 찾지도 않고 얻길 기대하며 두드리지도 않으면서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혹 청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면 야고보서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4,1-4). 사실 이럴 때는 구한대로 응답되지 않는 것이 더 고마운 응답입니다.

기도할 때는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고, 믿고 사랑하십시오. 주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요한14,12).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이미 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1요한5,14)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느끼지 못해도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고 인내하면서 갈구해야합니다. 벗을 찾아가 귀찮게 해서라도 빵을 얻어내듯 우리도 참고 기다리며 매달려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게 되는 상황 안에서 아브라함이 간절한 청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냅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도 우리에게는 한없이 약하십니다.

어떤 아가씨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느님, 제발 신랑감을 보내주세요! 제가 혼기가 꽉 찼습니다. 제발!” 그러나 도대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찾아가 하느님께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사정을 얘기하였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말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는 응답이 잘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 아가씨는 기도의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하느님, 우리 엄마가 딸을 시집을 보내야 된다고 안달을 하십니다. 제발 사윗감을 보내주세요!” 과연 우리는 어떤 유형으로 기도하는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영혼의 숨결, 호흡’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항구하게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혹시 “잘못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 잘못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숨은 한꺼번에 쉬고 안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꾸준히 고르게 쉬어야 합니다. 기도는 일정하게 해야 합니다. 하루의 좋은 시간을 하느님을 위한 시간으로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자투리 시간을 내놓지 말고, 시간 뿐 아니라 공간도 내 놓으십시오. 나를 위한 공간 꾸미기에 급급해 하지 말고 기도할 장소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구하는 이 앞에서 결코 등을 돌리시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않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청하십시오. 옛 말에도 “울어야 젖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누울 자리를 보아가며 다리를 뻗어라” 라는 말도 있습니다. 형편과 결과를 생각하며 일을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보시기에 청하는 대로 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급해 하며 답답해하여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못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청하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릅니다.’(로마8,26) 그래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영적으로 채워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리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믿으십시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습니다. 다만 잠시 늦춰질 뿐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기도를 ‘심장과 심장의 만남’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저에게 이야기 하고 저는 그분께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심장의 고요함 안에서 말씀하시고 우리는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다음에 우리 심장이 충만해진 채 우리가 말하고 그분은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다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없다면 영혼은 죽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순결한 심장을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심장을 정화합니다. 그리고 순결한 심장만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게 됩니다.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제 뜻을 접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성 알폰스).

우리가 많은 경우 우리의 바람을 청하고 있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의 원의를 먼저 알고 계십니다. 묵시록을 보면 주님께서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그분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청원에 대한 응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모든 기도는 주 하느님께서 듣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가 미약하다고 생각될 때에도 여전히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민수14,28). 그러므로 열매 맺는 기도를 할 수 있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은 우리가 아뢰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가 미처 구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종들이 내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주님의 귀한 선물로 만족하게 하소서.
먼저 주님의 나라를 구할 때,
주님께서 모든 좋은 것으로 더하시리라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6년 7월 24일
  |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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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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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는 신앙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단골메뉴입니다. 그런데 맛도 느끼고, 소화도 잘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도"는 마땅히 바칠 기도가 없을 때 먹는 양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기도의 기본 정신과 내용을 담고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생(生)의 요약이며,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는” ‘아름다운 기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하느님 자녀들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인류공동체를 위한 기도입니다. 내 처지와 원의를 담아보지만, 아버지의 뜻과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기도이며, 일상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것을 바라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전례상으로 보면, 구세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평화를 빌어주고, 영성체를 통한 나눔과 일치를 준비시키며, 그러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정리해보면, “주님의 기도”는 온 인류가 일상의 삶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하느님 나라로 향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 청하고, 동시에 우리도 주님의 분부대로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자녀들의 기도요, 천상 교리와 천상 가치를 총망라한 종합 이유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네 기도가 개인적, 이기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어찌 제대로 맛을 느끼고 소화를 시킬 수 있겠습니까? 생활고(苦)로 자살소식이 빈번하고, 정치문제로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전쟁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갈 때, 강대국의 횡포로 어린 생명들이 꺼져갈 때, 장애인이 불편한 심신(心身)을 호소할 때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바치셨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기도를 잘 먹고 잘 소화시켰다면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그분의 자비로움을 간절히 청했을 것입니다. (1독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죄없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 계셨습니까?

(2독서) 여러분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시고...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셨고...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리셨”(골로 2,13-14)기에 영적인 자유인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더 이상 구속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어떤 것에 구속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영적인 자유인은 비록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원리와 지식들이 더 맛있어 보인다해도, 그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만일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소화불량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개인적*합리적*논리적*이성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천상 가치(하느님 나라와 복음, 나눔과 일치, 사랑과 용서, 순명과 겸손, 청빈과 정결)들이 퇴색되거나 사라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천상의 것에 맛들이기 위해, 여러분은 늘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주님의 기도’대로 살아가십시오. 복음의 정신으로 구하고 청하고 두드리는 여러분은, 분명 하느님의 뜻을 받고,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것이며,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열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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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한지수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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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얻지 못할 기도응답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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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주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이러한 말씀들로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악령을 몰아낼 수 있도록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9,29)고 하셨고,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11,2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을 얻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들 중의 하나는 기도를 일방적인 청원으로 바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브라함 성조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였을 때, 그 내용은 지속적인 대화였습니다. 사실 기도와 응답은 일방적인 청원과 베풂이 아닌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도를 바친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들만 가득 늘어놓고, 이미 받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성조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기도하였어도 결국은 바라는 응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응답을 받는 일이 마치 하늘의 별따기와 비슷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청원의 내용을 잘못 선택한 경우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선을 청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는 아버지가 없고,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모든 청원에 대해 언제나 곧이곧대로 응답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8,26) 사람은 자신이 바치는 기도의 내용에 대해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며, 잘못된 지향과 목적으로 바치는 기도는 응답을 받기 어렵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처지의 우리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 한 가지를 내려주셨습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이어 ‘벗을 맞아 빵을 꾸어보려는 어떤 사람의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기도의 응답을 얻기 쉽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끈질기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정화되고 단련되어서 점차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이 마침내 얻게 되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께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늦은 응답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바치는 기도의 지향과 목적과 방법이 하느님 앞에 합당한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스스로 의로운 기도를 바치면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을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인들이 얻지 못할 기도 응답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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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홍진 베드로 신부 : 2019년 7월 28일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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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   [대구] 힘써 좁은 문으로 들어가자  [4] 2482
583   [부산] 그리스도 신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6] 2578
582   [안동] 돈 - 최고의 유혹,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  [4] 2376
581   [광주] 문(門)이 있습니다!  [1] 2574
580   [전주] 구원을 향한 선택  [2]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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