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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자기 관리. 자기 성찰
조회수 | 638
작성일 | 16.08.02
[대구] 자기 관리. 자기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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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문가들이 말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대비는 철저한 자기성찰과 자기관리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해 현재의 자신을 제대로 분석하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어떤 방향으로 자기 관리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프로선수나 연예인들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TV 화면에 보이는 짧은 순간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을 투자하여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전문가(Professional)가 될수록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자기관리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비결 중 하나가 자기관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가능한 인생에 있어서 위험한 요소를 멀리 하고, 즐겁고 신나는 삶, 곧 Well-Being을 위해서 많은 것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투자한다. 결국 건강하고 잘 살기 위한 자기관리, 미래를 위한 자신에 대한 투자가 마치 신앙인 것처럼 행세한다.

오늘 복음의 준비하는 종의 모습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한다. 우리 교회 안에는 운동선수, 연예인들의 자기관리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대단히 높은 덕성(德性)으로 자기관리를 해온 수많은 성인과 구도자, 교부들이 있다.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된 삶을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영적수련으로 하느님께 다가갔다. 교회의 이러한 성인들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기도와 항구한 명상이 바로 자기관리의 훌륭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깊은 침묵과 함께하는 기도야말로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대면하게 하고, 감추고 피하고 싶었던 자신을 아프지만 쳐다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자기관리는 바로 기도이고 명상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그리스도인의 자기관리는 없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경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망을 맛볼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하느님 안에서 복된 삶을 위해 위험한 요소를 멀리 하지 않고, 반드시 해야 할 기도에 게으른 경우라면 주인을 맞이할 자격이 없는 불충한 종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일찍부터 먼저 깨우치고 실천해온 신앙의 유산인 영성수련이나 자기성찰이 갈수록 소홀해지고 있는 사이에 교회와 무관한 각종 명상체험, 선원수련, 기수련 등을 통한 자기관리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또한 기업은 일류가 되고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철저한 자기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투명한 기업, 윤리경영이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자기관리에 철저해야만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심각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교회는 세상보다, 기업보다, 더 철저한 자기성찰로 우리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가? 진리의 말씀이 이 시대 안에서 살아있기 위해 우리 모두가 철저한 자기관리를 다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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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최경환(F.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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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약속을 한다. 약속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도 사람들과 약속을 하셨다. 노아에게는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시고, 아브라함에게는 하늘의 별들만큼 많은 후손과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시고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으실 때 백성들은 하느님께 다짐하며 약속했다.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24,7) 하고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표현하였다.

오늘 제1독서로 들은 지혜서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해서 약속을 충실히 지키신다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며 충실해야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계명을 어기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들과 맺은 약속을 완성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 충실한 믿음을 간직하시고, 제자들에게도 충실하라고 이르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얻으려면 항구한 인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깨어 있는 충실한 종처럼, 신앙인들도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실 때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항구하게 희망할 수 있다. 그리고 희망하기에 우리는 그분에게 충실하게 응답할 수 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충실한 믿음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도 충실한 믿음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충실한 응답을 우리들에게 요구하신다.

▮ 대구대교구 박상일 이냐시오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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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겹쳐진 눈 한 개

자비의 희년 로고 중에 예수님께서 아담을 업고 있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모습 중에 서 특별히 저의 시선을 끄는 부분은 ‘세 개의 눈’입니다. 예수님과 아담의 눈을 합치면 네 개가 되어야 하지만, 로고에는 눈이 세 개만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 한 개와 아담의 눈 한 개가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로고는 마치 ‘아담이 어떻게 인류와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하지요. 그래 서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랑의 이중계명이 그 사람 밖에서 그에게 강요하는 명령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비록 완전히 다른 두 존재이지만 자유의지 안에서 서로 일치를 이루었기에 사랑의 계명은 곧 그 사람의 의지입니다. 이 상태가 하느님 나라이고, 이것이 새로운 인류가 청해야 할 청 원기도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만남의 장막 안에서 하느님을 뵈었고, 장막 밖에서 백성의 고충을 들었습니다.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 모세는 백성의 고충과 죄악을 품고 주님 앞으로 나아갔으며, 천상의 빛 안에서 그것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백성 앞에 선 모세는 그렇게 해석된 내용을 들려주었겠지요. 모세 는 환멸을 느낄 수도 있는 그 일, 곧 자신과 백성의 죄를 품고 주님 앞에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 일, 곧 영원히 장막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을 매번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겹쳐진 한 개의 눈’을 지닌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한쪽 눈으로 자신과 세상의 죄를 바라보았고, 다른 한쪽 눈으로 천상의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처럼 우리도 자신과 세상의 그림자를 보며 뉘우치고, 천상의 빛을 보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것이 주일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교류하는 우리의 삶이어야 하는데….

‘깨어 있음’이란 이와 같은 우리의 신원과 역할을 통합시켜 나가는 여정이 아닐까요? 우리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눈과 우리의 눈 한 개가 겹쳐지도록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처럼 바라보도록 초대받았음에 감사드리고, 그렇게 하느님의 눈과 우리의 눈이 겹쳐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봅시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 대구대교구 박비오 신부 2016년 8월 7일
  |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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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주님께 시중 받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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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라는 작가의 희극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삶이요 일상이 되어버린 두 늙은이가 평생을 기다렸으나 ‘고도’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도’는 하느님으로 볼 수 있고, 극중의 유일한 소품은 죽은 나무로서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베케트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생은 불합리하고 하느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이 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고, 그래야 하느님이 오지 않아도 우리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그냥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는 사람처럼
(루카 12,35-36) 깨어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깨어 기다린 종들에게 이제는 역할을 바꾸어 주인이 그들의 시중을 들 것이라고 합니다.주님의 시중을 받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황송하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산 사람들은 주인이 왔을 때 주인의 시중을 받기는커녕 주인의 책임 추궁과 함께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깨어 기다리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깨어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군대에서 군기를 잡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긴장이 풀어지면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격장에 가서 정신을 차리지 않고 긴장이 풀어지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운전할 때도 긴장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거나 졸면서 운전을 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긴장이 풀어지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영적인 긴장이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암으로 투병 중일 때 동아일보기자가 수녀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자가 “암 투병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나요?”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삶에 대한 감사가 더 깊어진 것,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진 것, 사물에 대한 시선이 더 예민해진 것, 그리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기도가 좀 더 새롭고 간절해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수녀님은 암 투병을 하면서 영적으로는 더 긴장하게 되었고, 그래서 감사와 사랑과 기도가 더 깊어진 것입니다.

주님께 시중 받을 날을 기다리며, 우리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영적인 긴장을 유지하도록 합시다. 그것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해 오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이해인 수녀님처럼 영적으로 다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감사가 더 깊어지고 사랑이 더 깊어지고 기도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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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영일 바오로 신부 : 2019년 8월 11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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