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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하느님의 힘이 함께
조회수 | 103
작성일 | 19.02.01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안타까운 모습들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시험, 대학 입시와 연관 있는 것엔 큰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도, 식견을 넓히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과제들이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면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사로서 또 사제로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부수적인 것들, 돈이나 상급학교 진학에 더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수님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고는 합니다.

오늘 제1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들려주십니다. 예언자란 누구입니까? 예언자란 ‘하느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는 자’(예레 1,17참조)입니다. 그런데 그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려주십니다. 세상은 예언자와 맞서서 싸울겁니다(예레 1,18 참조). 하지만 그래도 예언자로 선택을 받은 자가 그 소명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 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사람들은 왜 예언자의 선포를 거부하고 그들과 맞서려고 합니까? 예언자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지금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싫어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변화보다는 자신들의 편협함에 갇혀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에 머물러 있기만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던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예언자적 소명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고 한들 과연 그들이 그 선포를 받아들였겠습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지닌 기준과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해하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함께 자란 ‘예언자’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적개심을 품고 그를 배척하게 된 겁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당당하십니다(루카 4,30 참조). 인간이 아무리 힘이 센들 하느님의 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선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만난 예레미야 예언자는 수도 없이 자신의 소명을 거부했던 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힘이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도 자신의 소명을 완수합니다. 그리곤 세상에 참다운 희망을 선포합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소명을 떠올리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하느님께서 비춰 주시는 한 줄기의 희망이 분명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느님의 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만나면서 나라는 존재가 달려야만 하는 그 길을 완주할 수 있게 만드는 하느님의 힘을 우린 그렇게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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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양선규 요셉 신부 : 2019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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