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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자신을 낮추는 복된 사람들
조회수 | 111
작성일 | 19.08.27
[대전] 자신을 낮추는 복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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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여 이룩한 사회 안에는 문화의 상이성에 기초하여 조금씩 다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간 역사 속에서 형성된 관습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알게 모르게 새로 태어난 사회의 일원을 그 사회에 맞는 사람으로 형성시키는 데에 한 몫을 하게 된다.

우리도 이러한 관습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관습에 기초한 생활습관과 삶의 형태가 사회 안에서 직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모이는 결혼식 같은 잔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모여든 축하객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결혼식에 초청을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지서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 같은 마음에서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참석하다 보니 준비해 가지고 간 축의금을 건네주고는, 결혼식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준비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또 다른 결혼식에 가보기 위하여 바쁘게 떠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혼식도 대부분 주일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꼭 그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일과 같이 사람들이 쉬는 날 결혼식을 올려야만 축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주일과 같은 쉬는 날을 택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므로 봄철이나 가을철과 같이 결혼식이 많이 거행되는 시기에는, 주일에 미사참여자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많게는 몇 십통의 청첩장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자기의 은행계좌번호를 청첩장에 인쇄하여 돌리기도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고유한 관습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체, 형식만이 존재하게 되어, 오히려 사람을 귀찮게 하고, 사람의 잘못된 심성만을 확인시키는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청첩장은 세금 고지서 그러나 나이든 기성세대가 경험한 결혼식 잔치는, 전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먼저 잔치가 계획되면, 친지나 친척들이 모이고, 모여든 친척이나 친지들은 모두가 한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이루어 행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치렀던 것이다. 이 같은 잔치에는 관습에 따른 질서가 있었고, 이러한 질서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따른 역할을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항렬이 높은 친척은, 당연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자리를 차지하며, 중요치 않거나 초대받지 못한 상태에서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주 낮은 자리, 즉 마당이나 또는 마당 귀퉁이에 자리잡고, 잔치에 참석하는 기회를 갖게되었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이 초대받은 혼인잔치는, 우리의 잔치 모습과 매우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혼인잔치에 참석하면 자신의 위치가 확정되지 않거나 또는 순위가 모호할 때는 큰소리도 내고 하면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사람들이 알아주도록 간접직접 시위를 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사람들은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자신의 위치나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낮은 자리에 앉으라"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은 겸손의 기본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더구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하느님께 내세울 만한 것이 조금도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간이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하느님 대전에서 높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 될 것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하느님이 높여주는 복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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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신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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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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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에 맹사성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학문으로 19살에 장원 급제를 하고 20살에는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를 해 그 자긍심이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어느 날 맹사성은 한 고승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 제가 이 고을을 다스리는데 어떤 덕목을 최고로 삼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맹사성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런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인데 이렇게 먼 길을 온 저에게 그 말씀 밖에는 할 말이 없으십니까?" 그 말에 대꾸가 없던 스님이 녹차나 한 잔 하고 갈 것을 권하자 맹사성은 마지못해 다시 앉았습니다. 그런데 찻잔에 녹차를 따르던 스님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찻물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넘친 찻물로 방바닥이 금방 흥건해졌지요. 화가 난 맹사성이 스님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행동이시오? 지금 나를 모욕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한 마디 하는 것이었습니다. "찻잔의 물이 넘쳐서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서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그리 모르십니까?"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시벌개진 맹사성은 그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그만 방문에 머리를 찧고 말았습니다. 그 때 스님이 또 한 마디를 조용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답니다." 이상입니다.

오늘 복음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높은 자리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도 직장에서 승진, 또는 사회적으로 출세를 해야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정당당히 해야 합니다. 요즘 물의를 빚은 전 동국대 교수 신정아 씨는 미술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인재였다고 합니다. 올해 광주 비엔날레 예술 감독을 했고, 제법 유명한 사설 미술관에 큐레이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분이 학력을 위조했습니다. 미국 예일대에서 공부를 했고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단 거짓으로라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보자는 속셈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명예 실추는 말할 것도 없고, 꿈 많은 학생들에게 허탈감과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검찰은 유명 교수들의 학력 검증 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지위에서든지 자신의 본모습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신자의 본모습은 신자로서의 기본인 하느님사랑과 사람사랑에 충실하기 위한 겸손입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는 주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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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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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지금 어디를 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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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되고 나서는 어디를 가든 대부분 윗자리에 앉게 된다. 신부님 오셨다고 윗자리에 번듯하게 상을 차려 놓으니 아랫자리에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 만약 앉는다고 해도 이건 초대한 신자를 오히려 번거롭게 만들기에 아랫자리에 앉는 건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하고 말씀하신다. 우스개 소리지만, 하여간예수님은 한 소리 안하시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시다. 예수님이시니까 듣고 있지 만약 신부가 이런 소리 했다가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윗자리를 좋아한다. 꼭 경쟁에서 이겨서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삶의 수준, 사고의 수준보다 높은 사람과 만나서 차 마시고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마치 그 사람과 같은 수준의 사람인양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수준이 올라간 것 같아서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자리보다 그 사람의 자리가 좋은 것이다. 확대 해석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약 이렇다면 내 자리에 대한 불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가? 무엇을 볼 때 감동하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엇을 보는지 보다 어디를 보는지에 따라 감동의 정도는 달라진다. 등산해 봐서 다들 알 것이다. 아래에서 산정상을 바라볼 때보다 산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더 감동적이다. 즉 사람은 아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은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게 예수님의 시선이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단지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시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즉 우리의 시선은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 나보다 낮은 이들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는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볼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게 좋겠다. 우리 눈의 시선이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영혼의 시선은 늘 행복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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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최용상 바오로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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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신자분이 저 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 신부님! 신자들은 똑똑한 신부님, 강론 잘하는 신부님,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시는 유능한 신부님보다는 겸손하고 마음이 따뜻한 신부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며칠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사제로 살아온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생 때 본당 신부님이나 신학교 신부님들로부터 ‘겸손한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삶은 겸손을 실천하기에는 오히려 어려운 여건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식사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제는 초대받은 식사 자리에서 늘 가운데에 앉게 되고, 식사가 모두 끝나면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항상 듣게 됩니다. 밥을 얻어먹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늘 신자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은 때가 많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주로 내 말을 하면서 지내온 게 사실입니다. 결국 교만한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구나.’하고 쉽게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생각은 틀렸어.’라고 단정하며 내 주장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나를 아끼려는 마음만큼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내 자신 이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있고, 이웃과 다투게 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도 모릅니다.

벨라도 성인께서는 “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은 우리의 허에 날뛰는 교만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가”라 고 말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자신을 밑으로 낮추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위로 자꾸 올라가려고만 하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감추시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남 앞에 나서려고 하며,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당신보다 높이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남을 멸시하며 높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참된 겸손은 착한 사람에게서도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겸손은 점점 자신을 꾸짖고 다스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정말 힘든 덕목인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하신 말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마음 자세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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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한승 라파엘 신부 2016년 8월 28일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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