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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겸손의 덕
조회수 | 95
작성일 | 19.08.27
[군종] 겸손의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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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8월이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이 되었습니다. ‘가을’하면 어떤 단어나 영상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수놓은 논이 생각납니다. 넓게 펼쳐 있는 평야를 수놓고 있는 황금빛 벼를 보고 있으면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되며 마음 또한 숙연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황금빛 속에는 농부의 구슬땀이 배어있고 일 년 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하면서 묻은 손 떼가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황금빛 논을 이루는 벼를 이용한 속담이 있죠.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입니다. 벼가 고개 숙이고 있는 것 보셨습니까? 벼가 완전히 익게 되면 즉 벼 알이 꽉 차게 되면 무거워지기 때문에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이삭이 땅바닥을 향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이 속담이 가리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이 평생 몸에 익혀야 하는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알수록,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속담에 비추어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단어와 겸손이라는 단어의 연관성입니다. 인간을 영어로 ‘human being’ 혹은 ‘human’ 이라고 표현합니다. 겸손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humilitas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말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라틴어로 humus라는 단어, 우리말로 ‘흙’, 곧 ‘땅’이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인간이 겸손한 이유는 땅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경에도 나오듯이 인간은 흙에서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의 겸손에 대한 말이 나왔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겸손의 덕을 지키며 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우리 마음속에는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마음과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잠재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기 원하는 마음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교만에서 나오며 내가 나를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그 모습에는 진실성이 없고 그 모습 또한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나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고 나 혼자서 높아지려고 한다면 그 모습은 참된 모습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모습입니다. 나 스스로 낮아지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려고 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나를 높여주는 것이 참으로 진실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치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늘 낮은 곳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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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태완(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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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장점이 없다는 것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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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 저는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였습니다.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으로 하는 운동은 뭐든지 다 소질이 없었습니다. 또 언변이 뛰어나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나를 도구로 쓰시고자 부르셨을 텐데 나의 어떤 점이 도구로 쓰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해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뭔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텐데~’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장점이구나!’

신학생 때 고학년이 되어서 공동 침실이 아닌 개인 침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제 방에는 자주 동료들이 들락날락 했습니다. 동료 신학생들은 대침묵 시간에도 규칙을 어기고 종종 제 방에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갔습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우리 반의 절반이 제 방에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친한 동기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동기들이 너무 자주 찾아와서 걱정이다. 논문도 써야 되는데 방해된다고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고민이야.” 내 고민을 듣고 있던 그 동기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네 장점이 뭔지 아니? 네가 다른 동기들 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는 척이나 잘난 척 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낮은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이러한 내 모습을 동료들은 더 좋아했던 것이지요.

경주에서 보좌신부로 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경주는 관광지라서 크고 유명한 호텔이 많습니다. 주임신부님이 경주지역에서 활동도 많이 하시고 지역 유지나 시장, 국회의원들과도 종종 만나실 때 저도 함께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용무가 끝나고 나갈 때는 늘 총지배인이 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크고 유명한 호텔의 총지배인이 하나 같이 다들 키도 150에서 160 정도밖에 안 되고 외모도 그다지 뛰어난 외모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호텔 총지배인이면 그 호텔의 대표 대리자이자 얼굴인데 왜 하나같이 그럴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외모 때문에 오히려 고객들이 편안히 다가갈 수 있기에 유명호텔에서는 총지배인으로 키 작고 평범한 사람들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로 볼 품 없는 외적 기준이 오히려 총지배인의 자리까지 가능케 한것이었습니다.

권위와 능력은 스스로를 내세울 때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인정해 주고 모두가 공감할 때 그 사람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처럼 우리 또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신앙인으로서의 가치는 최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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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종엽 라파엘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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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와서 지내다 보면 교구 본당에서 모습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구체적으로 결정되는 자리입니다. 식사를 하거나 다과를 하더라도 자리를 미리 정해 놓습니다. 자칫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미리 방지하고자 자리까지 정해 놓는 것이 합리적인 모습이라고 판단되지만 저는 그걸 보고 많이 놀랐었습니다. ‘아!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본당에서도 자리를 다 정해 놓고 각기 자기 위치에 맞는 자리를 정해 왔었구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표현처럼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돼야지, 자리의 권위를 내세우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권위에 기대는 태도가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도 취해야 하는 겸손함을 강조하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내가 여기 앉으면, 주변 사람들이 날 위쪽으로 오라고 하겠지?’라는 계산적인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진행됨은 계획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드러나야 하는 일이기에, 높고 낮음의 태도가 나와 주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그 권위는 주어지는 것임을 뒤 말씀을 통해 알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진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어떤 다른 주원인에 의해 내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높고 낮음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내 자리에 맞게 주도적이고 의지적으로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삶이 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내가 그러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비유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겸손은 무조건 자신을 낮추기만 하는 비천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비우는 모습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적 겸손함을 지닌 사람을 보면, 어느 자리에 있든 자신의 욕심이나 이익만을 내세우는 모습보다는 수용해주고 공감해주며 받아주는 모습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과 태도들은 자리의 권위를 넘어서는 공감할 수 있고 호소력 있는 권위임을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혼자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때로는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맞는 모습은 겸손함으로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며 스스로 자신을 낮출 때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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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양신 안드레아 신부
2016년 8월 28일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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