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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초대
조회수 | 77
작성일 | 19.08.27
[전주]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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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인이 있었다. 그 도인은 부자의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그 도인은 남루한 옷차림새로 부잣집에 갔다. 그러나 그 도인은 부잣집의 문간에서 출입을 거부 당했다. 들어가고저 다시 말해도 소용 없었다. 그 도인은 되돌아와서 좋은 옷을 차려입고 말쑥한 모습으로 부잣집에 다시 갔다. 그 때에는 그 도인을 그 부잣집의 문간에서 들여보내주었다. 도인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도인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옷에 가져가 붓는 것이었다. 그 때 그 부자가 도인에게 왜 음식을 옷에 쏟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 도인은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니고 이 옷을 초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 옷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렇다. 그 부자는 결국 인격체인 사람을 초대한 것이 아니고, 옷이나 직책을 초대한 셈이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이들을 초대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에게서 인격을 뺀다면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 중에 가난뱅이, 부자, 지위가 높은 사람, 지위가 낮은 사람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격체이다. 이 인격체라는 면에서 보면 사람은 모두 똑같고 고귀하다. 그런데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미 보답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중요하다거나, 보다 더 효과적인 일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미 대접을 받았다.

그러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이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높고 낮음을 없애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여기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에 속한다. 계급이나, 차별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압력이고 고통이며 슬픔이 되는가? 계급이나 차별은 그 자체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며, 어떤 일을 하는데 효과적인 방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류 사회에서 초기로 부터 점차 이 계급과 차별이 발전해왔다.

어느 한 편의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별과 계급이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사회의 여러 학문에서도, 많은 반성 후에, 이제는 화합형의 공동체가 일을 수행하는데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효과적인 것, 비효과적인 것을 떠나 단호하게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또한 보답하실 것을 보증하신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보상이며, 거저주시는 한없는 은총과 상충되지 않는 보상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보상과 은총은 상충되는 개념일 것이나, 하느님께는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한없이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시며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하고 오늘 분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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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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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낮추고 또 더 낮추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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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팝니다. 지으려는 건물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깊이 땅을 팝니다. 그래야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여 건물의 하중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곧 성덕을 쌓아서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체를 영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성덕이라는 건물을 쌓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올라갈 정도로 높이 우리의 성덕을 쌓기 위해서는 겸손이라는 삶의 기초는 그 만큼 더 낮아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아무리 높이려고 해봐도 우리는 한낱 미천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느님보다 더 높을 수 없는데 높다고 생각하며 높은 것처럼 살아가는 교만을 부리면 우리는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없는 단어는 교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나를 얼마나 낮추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나를 알리지 못하면, 바보 취급 당하고 어리숙하다고 핀잔을 듣는 세상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드러내는 것, 나를 높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서품을 받은지 7개월이 지난 지금, 제단 앞에 엎드려 겸손함의 은총을 청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영광을 위해 목숨 바치고, 나를 드러내는데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을 돌아봅니다. 모두가 높아지려하는 세상을 거슬러서 낮아지려하는 삶, 그 삶을 살아갈 때 먼훗날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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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두성균 바오로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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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높아질수록 더욱 낮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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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우리는 좁은 문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서두르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교만하고 의기양양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경고를 되풀이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겸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제시해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눈에 드러나는 허영보다는 온유하고 겸손한 당신의 삶을 배울 것을 주문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이 손님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앉힐 때, 그 주인에게 창피를 겪지 않도록 더 높은 자리보다는 더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자리가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앉을 수 없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탐하기도 합니다. 또한 대부분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를 추구합니다. 그렇다보니 겸손보다는 교만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살펴봤으면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과연 겸손한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만한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정답은 우리 각자만이 알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이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따라 살기를 추구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분명히 기억하고 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제1독서 말씀 가운데,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는 말씀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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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경훈 사도 요한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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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욕망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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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자신을 알리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더 잘 알리려고 하다보니 겸손을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잔치에 초대받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맨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가르쳐줍니다. 또 누구나 다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까지도 말해줍니다. 이 말씀은 잘 알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실천을 잘 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더 갖고 싶고 더 오르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욕구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높고 귀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은 더 높은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가 있다면 그처럼 자신을 지치고 피곤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욕망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도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드러나게 누가 보아도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얻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줄을 서고 기회가 되기만 한다면 그것을 잘 이용해서 윗자리에 오르기를 즐겨합니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내어 놓지 않고 잘 포장해서 마치 그러한 일이 다른 이들을 위한 일인 것처럼 공익적인 소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때로는 자신도 속아 넘어갈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생겨서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너는 네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가?” 하고. 만약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자신에게도 또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닌 지나친 욕망의 탐욕이 포장된 모습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바라는 마음처럼 보이지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은 욕망으로 다른 사람까지 생각하는 마음은 소망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은 외적 겸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겸손한 사람이 가진 소망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오묘함을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내가 윗자리에 앉지 않아서 비어 있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낀다면 행복이겠지요. 그러나 저 자리는 원래 나의 자리인데 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잔치 집에 앉아 있다면 결코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신 매일의 잔치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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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어느 사제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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