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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신앙생활
조회수 | 116
작성일 | 19.09.07
[전주]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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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이 말씀은 "끝까지(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지금 말하는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에서 멈춘다면, 또는 신앙생활을 불성실하게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은 사람(안 믿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목적지에 도착할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출발하지도 마라."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기 싫으면 받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구원'이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받으면 살고(영원한 생명을 얻고),못 받으면 죽는(영원히 멸망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탑'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사다리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 사다리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걸어서 올라가는 사다리입니다. 생명을 얻고 싶다면 사다리를 잘 만들어야 하고, 끝까지 잘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처음에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서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했을 때, 천사는 하느님의 뜻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윽박지르지 않았고, 마리아가 응답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루카 1,38).마리아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또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무슨 손익 계산 같은 것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천사는 마리아가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루카 1,29)충분히 기다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상황은 마리아가 "저는 자신 없습니다. 못하겠습니다. 다른 처녀를 찾아보십시오." 라고 대답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물론 그랬다면 처음부터 선택을 받지도 않았겠지만...)어떻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마리아가 말한 것은, 탑을 세우는 공사를 마칠 만한 충분한 경비가 있음을 확신하고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생애는 그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서 훌륭한 탑을 세운 것과 같습니다.(마침 9월 8일은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계속해서 나오는 임금의 비유도 같은 뜻입니다."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루카 14,31-32)."

지금 이 상황은, 싸우다가 전멸 당하든지, 아니면 항복해서 신하로 들어가든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어떤 임금, 다른 임금'이라는 표현은 그냥 비유를 위한 표현일 뿐이고, 인간이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만 명, 이만 명'이라는 군대의 수에도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만 명이 이만 명과 맞서 싸워서 이길 수도 있습니다.(몇 백 명의 군대로 수만 명의 군대를 이긴 전쟁도 있었으니...) 지금 예수님 말씀의 뜻은"인간은 하느님과 맞서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이길 수 없으니 그 분을 주님으로 섬기고 생명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씀은 하느님을 안 믿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표현을 조금 바꿔서 생각해야 합니다."인간이 하느님을 이길 수 없으니,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생명을 얻어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전쟁 상황으로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들의 적이 아니라 보호자이시고, 구원자이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하느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인생의 주인(주님)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라고 하면서 하느님(예수님)의 보호와 구원을 거부하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고, 그런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느님(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면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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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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