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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이 시대의 괴물 '탐욕'
조회수 | 2,434
작성일 | 07.08.02
긴 장마가 끝이 났습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지난 2006년 여름 이맘때 ‘괴물’이라는 영화가 1,300만이나 되는 관객을 모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 괴물은 한강의 오염으로 태어난 돌연변이였습니다. 괴물은 결국 불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그 괴물은 환경파괴의 주범인 인간이 만들어 낸 생명체였습니다. 긴 장마 끝에 경험해 보지 못한 폭염과 예측할 수 없는 폭우를 경험하며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발명품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것은 무엇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편리와 이기를 위하여 마구 쓰고, 버리고, 허무는 이 시대의 괴물, 가장 파괴적인 것은 바로 ‘탐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코헬렛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부정하는 허무주의, 얀세니즘적인 인상을 심어 줍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알아들어야 합니다. 왕조 시대에는 땅, 인간, 하느님의 창조물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 왕의 것으로 여겼습니다. 코헬렛이 쓰여진 기원전 3세기경에는 세금을 과다하게 매겼고 많은 사람들은 빚을 지거나 심지어 노예 살이로 전락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소유로 여겨 골고루 나누고 서로를 섬기며 살았던 씨족 공동체가 왕조(권력)의 등장으로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헬렛의 설교자는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사람,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는 이”(코헬렛 2장21절-23절)들을 향해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2장21절)하며 한탄합니다. 세상의 것(권력, 물질, 명예)이라 해서 모두 무조건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단체 개인이라도 나눔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잊거나 외면하고 사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거짓 가르침과 환상에 현혹되어 살던 콜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는 고대 근동에서 자주 사용되던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린다”(10절)는 표현을 빌려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왜곡되고 변질된 삶을 버리고 본래의 모습, 새로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온갖 욕망(콜로새 3장5절)을 버리고 비워야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콜로새 3장10절). 하느님 앞에서 일으켜 지려거든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콜로새 3장5절).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세상은 초월적 세상, 유토피아, 피안의 세상, 저승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 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늘 일구고 가꾸어 가야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이 담겨있는 루카 복음 12장은 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복음은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는 안중에 없으면서 오히려 형에게 받을 것만을 생각하며 재산의 분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장15절)고 가르칩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장21절)에게 “오늘 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루카12장20절)이라고 경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부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탐욕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고 쌓아둔 부는 사람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생명은 탐욕의 결과로 얻어지는 물질적 소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창고에 몇 년 동안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길 만 하도록 “쌓아둔 재물로 인생을 만끽하더라도 하느님은 그를 비웃으신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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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영식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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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어무(有生於無)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님 사랑 많이 받으십시오. 무더운 여름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전도서 저자는 "세상 만사 모두가 다 헛되다."(전도 1,2)고 전합니다. 히브리어로 '헛되다'는 말에는 숨, 바람, 연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제 2독서에서 세례 때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듯이 옛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답게 새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원천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가 12, 13-21) 말씀입니다. 13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재산 분배자의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하시며 거절하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재판관 역할을 했던 모세(출애 18장 13절 참조)와 자신을 구별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재산이 그 사람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15절)고 하십니다. 이는 돈이 생명의 원천이 아니기 때문에 부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합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고 현세의 가치와 의미를 넘어서서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생명의 축복에 늘 감사하고 기쁘게 살면서 천상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필립 3,8)라고 고백한 사도 바오로처럼 주님 안에서 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은 탐욕을 버림으로써 가능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에서는 "재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 여겨야 한다."(69항)고 말합니다. 이는 '사유재산의 사회적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합법적으로 취득한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타인을 위한 몫'이 있음을 신앙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듣다보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기가 쉽습니다. 탐욕으로 가득 차서 "혼자" 궁리한 결과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만을 위한 죄스런 삶을 빚어낼 뿐입니다. 그가 만일 솔로몬의 훈계를 좇아, 자기를 지으신 분을 기억하고(전도 12,1) 그분과 대화했더라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몸이 있는데 모름지기 보이지 않는 몸이 보이는 몸을 이끌어야 합니다. 유생어무(有生於無), 곧 무릇 있는 것은 없는 것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 몸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알아들으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진실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이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서로 나누고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히브 11,3)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안동교구 김도겸 아론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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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

예전에 방송광고에서 이런 문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참 좋은 말 같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바로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받는 것이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진정으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참된 재물을 사랑하십시오!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은혜롭고 참된 재물을 사랑하십시오!

장난감 가게에서나, 대형마켓에서 어린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한번 잘 관찰해 보십시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것,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을 양손에 잔뜩 쥡니다. 그리고 더 좋아 보이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쥐고 있던 것을 그 자리에서 즉시 놓아버리고 새로운 것을 움켜쥡니다. 어린이에게 있어 더 좋은 것이란 더 맛있어 보이는 것, 더 예뻐 보이는 것, 더 신기해 보이는 것, 더 커 보이는 것 등등 일 것입니다. 어린이는 미련 없이 먼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더 좋은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린이처럼 결단력을 가지고 선택을 할 용기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손으로 재물을 움켜쥔다면 많이 움켜 쥘 수 있고 지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것 - 구원은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지 않으면 구원은 얻을 수 없습니다. 내 손만 비우면 거저 주어질 구원을, 손을 비우지 못하여 받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입니까? 한 손은 재물을 나누는 손이 되고, 또 다른 한 손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손이 되기를 바랍시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기 위해선, 하늘에 보화를 쌓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 비움이 필요 합니다. 이 비움은 재화에 대한 비움이요, 탐욕에 대한 비움이요, 우상 숭배에 대한 비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쌓아야 할 것들은 ‘신앙과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는 신앙과 사랑이 쌓여 있습니다.”(제2독서기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우리 신앙의 시작이요 목적입니다.’ 사랑의 나눔이 바로 하느님 앞에 쌓아야 할 하늘나라의 재화입니다. 신앙을 지탱해 줄 두려움과 인내심을 키우며,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기위해 너그러움과 자제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부유하기 위해선 참된 재물에 대한 깊은 인식과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김춘수 이냐시오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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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탐욕’을 조심하는 삶

흔히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를 이렇게 나눕니다.재물에 대한 욕구인 물욕과, 성에 대한 욕구인 성욕과, 먹는 것에 대한 욕구인 식욕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 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늘 부족해서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지나친 욕심이 문제인 것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우고 싶어 하는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도가 지나친 욕심’, ‘탐욕’에 대해서 경계령을 내리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크고 작은 사소한 다툼부터 나라 간의 분쟁까지도 따지고 보면, ‘도가 지나친 욕심’,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철없는 꼬마들의 다툼에서부터 국제사회의 분쟁까지도 늘 더 많이 가지려고, 항상 더 위에 자리하려고 하는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영원한 생명’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음을 비유를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가진 것이 풍족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너무나 많은 곡식을 추수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곡식을 보관을 하지?’하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금 있는 곡식 창고를 허물고 더 큰 곡식보관창고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쌓아놓은 재산으로 여생을 편하게 먹고 쉬고 즐기면서 보낼 행복한 인생설계를 세웠습니다. 하느님께서 ‘오늘 밤에 그 부자의 목숨을 되찾아 가면, 그 모은 재산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도가 지나친 물질에 대한 욕심’, ‘탐욕’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늘리고자하는 행동이 당신을 따르는 데에 절대적으로 위험한 것이고,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필요이상으로 소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간의 생각은 그릇된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생명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선물입니다. 생명은 지상의 재물이나, 넘치는 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안배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본래의 주인을 잊어버리고 행동할 때 ‘도가 지나친 욕심’, ‘탐욕’이 생겨납니다. ‘탐욕’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고,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노력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봅시다. 나 자신 안에는 필요이상을 소유하고자하는 ‘도가 지나친 욕심’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루를 보내면서 나의 마음이 가장 많이 가 있는 곳은 어디이고 무엇입니까? 나 자신은 오늘 하루의 삶 안에서 무엇을 더 가지려고 하고, 무엇을 더 채우려고 노력합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지나친 욕심으로부터 해방된 자, 욕심으로부터 참으로 자유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제49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도다. 죽을 때면 아무 것도 지니고 갈 수 없으며 영화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리라.”

<안동교구 신동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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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야 할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연중 제18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듣게 되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먼저 1독서의 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식과 지혜와 재주를 가지고 태양 아래서 애쓰는 것”도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라고 외칩니다. 그렇게 된 배경을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탐욕”이라는 두 글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강하게 경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탐욕’으로 치달리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인간의 최종적인 ‘희망’인 ‘행복’마저 마치 탐욕으로 얼룩져서 탐욕이 탐욕인 줄도 모르고 마지막 희망으로 착각하면서 한 세상을 보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탐욕의 끝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보면 금방 해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탐욕은 질투에서 나옵니다. 질투는 분노에서 나오고, 분노는 교만에서 나오며, 교만은 겸손함과 자비심을 저버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나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결국 타인에 대한 겸손함과 자비심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오만불손함(교만)’으로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한 탐욕을 ‘참된 행복’이라 생각하면서 끝없는 탐욕의 구렁텅이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희망’과 ‘탐욕’을 구분하지 못하고, ‘참된 행복’과 ‘세상의 재물’을 구별하지 못한 결과가 곧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준엄하신 판결로 끝이 나게 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무엇을 희망하여 살아갑니까?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내리신 그 준엄한 판결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내리지 않을까 무척 걱정되고 근심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사도 바오로께서는 2독서에서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위의 것’이란 인간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의 것’이며, 동시에 참 하느님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탐욕으로 인간의 최종적인 희망이 곧 하느님이심을 잊어버리고, 또 희망이신 분만이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탐욕과 탐욕으로 인한 재물과 재물만이 희망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이러한 어리석음이 결국 자신의 헛된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써 모은 재물을 모두 날려버리고 재물도 고스란히 남의 손에 넘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참된 행복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을 겉으로만 믿는 척하고, 실제로는 허무하고도 허무한 부귀영화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만이 참된 행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희망하며 살아가고, 또한 애써 모은 재물일지라도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나에게 잘못한 이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자비심과 더불어 겸손함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생명에 기꺼이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세상의 무엇 무엇이 좋다고 하여도 모두 부질없다는 것이 오늘 복음과 독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부질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모두 ‘참된 희망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살아가는 그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안동교구 신대원 요셉 신부 2016년 7월 31일
  |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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