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69.2%
[원주] 재산의 소유와 분배
조회수 | 2,349
작성일 | 07.08.02
바둑의 묘미 가운데 하나가 수순의 묘입니다. 똑같은 자리를 둔다 하여도 순서가 바뀌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수순의 묘입니다. 아마추어 7~8급인 저의 바둑실력으로는 그 차이를 전부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만 해설을 들으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 인생도 바둑과 같은 수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뀜으로써 우리 인생을 볼품없이 만드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소유와 나눔, 목적과 수단, 영혼과 육신 등으로 표현되는 인생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서로 대조되는 특징을 가진 가치들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탐욕에 의해 우선순위가 바뀔 때 우리 인생은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미래와는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재산의 소유와 분배 그리고 소유와 생명과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전반부는 유산에 대한 문제입니다. 유산문제에 대한 판단을 원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판단을 거부하면서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소유와 생명이 관계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먼저 예수님은 세속적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재산이나 권력 등 세속적 가치마저도 신앙과 연결하는 우리, 재산의 유무와 성공의 정도를 축복의 잣대로 선택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분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이 이야기는 소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탐욕에서 찾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는 소유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준과 논리를 가지고 있고, 또 물질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 기준대로 판단합니다. 아마 복음의 질문자가 예수님께 기대했던 바도 분명한 기준과 판결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예수님은 어떤 기준이나 당위를 제시하지 않고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 하여라』라는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나 판단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탐욕에 대한 경계」가 소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점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유의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점은 소유는 행복을 담보하지는 못합니다만 현재의 상태를 증폭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즉, 지금 행복하다면 소유는 행복을 증폭시키고, 지금 불행하다면 소유는 불행을 가중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상태가 소유보다 중요하기에 우리는 정신적 부가 더 중요하다는 점과, 탐욕 없는 마음이 있을 때만이 소유와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예화입니다. 엄청난 수확을 얻은 부자는 그것을 즐기려 합니다만 그러나 부자는 그날 죽음을 맞이하기에 그러한 행동이 어리석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사람처럼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예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선 생명이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생명이 있을 때 물질이 의미를 가지기에 소유보다는 생명을 지향함이 인생의 올바른 순서라는 뜻입니다. 소유에 우선순위를 두면서도 영원한 생명에는 무관심한 우리, 탐욕에 빠져 소유를 위해 삶과 생명마저 희생하는 우리에게 생명과 물질의 올바른 순서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이 예화는 인생은 우리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부자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지도를 가지고 미래를 계획합니다만 그 계획은 죽음으로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소유가 나의 미래를 보증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않습니다. 지금은 나의 능력범위안에 있는 일을 다만 할 뿐이요, 미래는 미래의 구원과 행복을 주관하는 그분께 의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미래의 행복은 소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아마 부자는 자신의 소유가 행복한 미래를 보증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고, 사실 이러한 부자의 모습은 보통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부자를 비웃으면서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하늘에 보물을 쌓지 않는 사람」,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마르 10, 21절 참조). 그러기에 이 이야기는 미래의 행복은 「소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면 소유에 의지하기 보다는 탐욕의 절제와 함께 나눔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이 한 주 나의 탐욕과 곡식 창고를 점검하면서 내가 잘못 실천하고 있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반성해 보는 한 주간의 삶이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623   [마산] 잃은 자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3] 2454
622   [부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9] 2487
621   [대구] 아버지의 마음  [3] 2393
620   [원주] 머리의 논리보다 가슴의 논리로 살자  [3] 2688
619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2] 117
618   [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2] 2155
617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93
616   [광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2735
615   [제주] 화해와 용서  83
614   [전주]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1] 104
613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4] 1903
612   [수도회] 제자됨의 길  [4] 2443
611   [수원] 제자들의 선택  [5] 2345
610   [인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7] 2506
609   [서울]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내려놓아야 할 것들  [9] 2729
608   [마산] 적극적인 포기  [4] 2600
607   [대구] 동행  [3] 2412
606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511
605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122
604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74
603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118
602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510
601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75
600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412
599   [전주] 신앙생활  130
598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78
597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72
596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9] 2381
595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90
594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47
593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98
592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43
591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57
590   [대구] 예수님을 생각함으로써 낮춤을 배우자  [7] 2252
589   [수도회] 낮은 자리 높은 자리  [5] 1983
588   [서울] 겸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  [8] 2606
587   [부산] 초대와 윗자리  [7] 2315
586   [안동] 낮아지고 내어줌  [3] 2248
585   [광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자  [2] 2831
584   [전주] 초대  [3] 90
[1][2][3][4] 5 [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