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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참된 부자가 되려면
조회수 | 2,557
작성일 | 07.08.03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가족이 꾸준히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희망합니다. 과거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내 집 하나 장만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면 된다고들 여겼지만 요즘엔 그 정도론 불안하게 여깁니다. 게다가 사회구조가 점차 노령화되어가서인지 저마다 안정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래서인지 시대를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광고에서도-금융관련기관의 광고- ‘자산’이란 단어가 큰 화두처럼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보장자산’이니 ‘자산관리’니 하는 광고 카피를 통해 보험이나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들로 안정된 미래, 행복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당장 노후를 맞이하는 부모님세대 뿐 아니라 아직은 노후를 멀찍이 생각해도 될 젊은 세대까지도 위와 같은 금융상품들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 복음속의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복음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처럼 자신의 몫이 공정하게 배분되기를 바라는 것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게 된 재물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그다지 잘못된 처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 눈엔 두 인물의 그런 모습은 지당하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인물들을 향해 엄중히 꾸짖듯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재화가 가져다주는 탐욕, 재화를 포함한 모든 현세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가 하느님 자녀로서의 본 모습을 잃지는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들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하지만, 교회는 재화가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모든 재화는 인간이 함께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된 모든 재화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맞게 골고루 나누어져야하며,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한 재산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아울러 때로는 쓰고 남은 재화뿐 아니라 자신에게 요긴한 것까지도 나누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역시도 복음말씀대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부자가 되느냐, 하느님 앞에서 부자가 되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2독서의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현세적인 것을 죽이고 “저 위에 있는 것”, 즉 천상의 것을 추구한다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안에 숨겨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금융광고 문구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긴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상생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부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내가 가진 세상의 것들도 천상의 것을 위해 사용하는 지혜로운 참된 부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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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민철(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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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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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현대인의 우상은 돈입니다. 사람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지 않고, 땅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항상 돈을 향해 있습니다. 돈이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람아 보아라. 너는 언제나 나를 움켜쥐고는 나를 너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네가 내 것이다. 나는 아주 쉽게 너를 지배할 수 있다. 우선 너는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한히 값지며 보배로운 존재다. 물이 없으면 한 포기의 풀도 살 수 없듯이, 내가 없으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죽고 만다. 회사도, 정부도, 학교도, 은행도, 교회도.

그렇다고 내게 어떤 신비의 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힘으로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지만, 이상한 사람들과 수없이 만난다. 그들은 나 때문에 서로 인격을 무시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순전히 나 때문에 말이다. 사람들에게 욕망이 없다면, 난 어쩌면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돕는 선한 사람들,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려는 이들과도 만난다. 나의 힘은 사실 무한하단다. 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어라.”

그렇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현명하게 다룬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그러면 사람의 생명은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는가?”(루카 12,20)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는 그분의 말씀이 충격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에게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돈만 모으고 있습니다. 나중에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많은 재산을 쌓아둘 큰 곳간만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당에 나와 하느님을 믿는 사람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노예로 살면서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을 따라 사는 사람은 믿음을 잃게 됩니다. 믿음을 잃으면 영원한 생명도 잃습니다. 귀한 목숨을 받아 태어난 한 번 뿐인 인생을 먹고 사는 일에 매여 허덕이다가 끝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는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모든 게 허무입니까?(코헬렛 2,22-23) 세상살이가 허무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기에 세상살이가 허무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헛된 것에 얽매여 일생을 허비하지 맙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분께 의지하며 사는 것만이 우리의 생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새서 3,1-3.5.11)

탐욕을 버리고 그분만을 위해 사는 것만이 헛된 삶을 복된 삶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을 버리고 돈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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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손용한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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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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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상속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를 거부하시며, 탐욕을 경계할 것을 명하십니다. 이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재산의 부질없음을 말씀하시고, 하느님 앞에서 더 부유해 질 것을 명하십니다. 또한,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도 세상보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것이 부질없기 때문에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유재산은 우리가 알듯이 구약과 신약성경 안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교회 문헌들도 사유재산은 인간 생활에 잘 부합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소유가 회개와 하느님 나라와 구원을 추구함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소유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이들에게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시고, 절대적인 소유권은 하느님께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이다.”(레위 25,23) 재산(소유)의 위험성은 재산의 많고 적음보다 그 재산이 하느님이 아닌 자신만을 신뢰하게 하는지, 이웃에 대한 나눔 없는 냉혹한 축적만을 하는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만민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간혹 신자들에게 가난한 사제가 좋은지, 부자 사제가 좋은지 묻습니다. 그럴 때면 대부분의 신자는 가난한 사제가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어서 부자 배우자가 좋은지 가난한 배우자가 좋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부자 배우자가 좋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신자분들이 가난한 사제를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나누는 사제를 바라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부자인 배우자를 선택한 이유는 나눔보다는 우리 식구부터 챙길 줄 아는 책임감 있는 배우자를 원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인 사제가, 가난한 배우자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제나 배우자는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혹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참된 신앙인은 소유의 노예가 아닌, 소유를 하느님 사랑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때 우리의 소유는 참된 복이 될 것이고, 하느님께 부요해지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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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창현 사무엘 신부 2016년 7월 31일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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