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66.8%
[대전] 이제부터는 하늘에 저축하라.
조회수 | 2,477
작성일 | 07.08.03
아주 큰 부자가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앞장서서 천국을 안내하고 부자가 살게 될 집을 찾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바라보며 부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역시 천국은 다르군. 아, 여기서 살게 되다니 정말 좋구나.' 그런데 천사는 으리으리한 저택들을 계속 지나쳐 가기만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자는 더 좋은 집을 기대하며 천사를 따라갔지요. 천사와 부자는 다음 마을로 들어섰는데 이 마을에는 약 50평, 100평이 넘는 최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여기도 살만은 하겠군.' 부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집을 찾고 있는데 이번에도 천사는 그 마을을 휙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저만큼 달동네가 나왔습니다. '설마 저 곳은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가는 부자에게 천사는 달동네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세워진 어느 쓰러져가는 판잣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당신이 살 집입니다." 화가 치민 부자가 따졌습니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저는 지상에서 살 때에도 호화주택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아니 천국에 와서 이렇게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서 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자 천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네요. 당신이 지상에 살면서 보내준 건축 자재로 지은 집이 바로 이 집이니까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우리 모두는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끼고 모아서 자식을 교육시키고 저축을 하는가 하면 남은 인생을 위해서 보험까지도 들지요. 더군다나 요새는 수명이 늘어나 국가 차원의 노후대책을 요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끔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얼마나 준비해 놓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더 중요합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라는 '희망가'의 가사 역시 부귀영화가 삶의 최고 가치가 아님을 깨달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도 "...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세상에 더 큰 희망을 두면서 살아가는 신자 여러분들은 정작 하늘나라에 얼마나 저축을 해 놓으셨는지요? 이제부터는 하늘나라에 저축을 합시다.(평화신문 오늘자 이기양 신부의 글 인용). 아멘. 감사합니다.

----------------------------------------------------------------------

대전교구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
450 66.8%
탐욕을 경계하여라.


오늘 제1독서의 저자는“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라며 인생에
대한 강한 부정과 함께 철저한 허무주의를 통하여 인생무상을 솔직히 제기하고 고백함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그 해답을 얻으려 하고 있다.

또한 제2독서에서는“탐욕을 죽이십시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5.11)라며 세례를 통하여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린 그리스도인으로서 새 인간답게 부활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
려 있지 않다.”(루카 12,15)라고 말씀하시며 재산 분배나 재물보다 형제애의 고귀함을 가르치고 재물욕이 모든 불행과 멸망의 근원임을 깨우쳐 준다. 아울러 재물이 생명을 위한 보장성 보험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옛날 고향 이웃 동네에 두 형제가 형 소유의 방죽(작은 저수지) 밑에서 나란히 농사
를 짓고 있었다. 논바닥이 갈라질 만큼 가뭄이 심한 어느 여름에 동생이 형에게 방죽
의 물 좀 달라고 애원하였다. 형은‘방죽의 물은 줄 수 없다. 차라리 우리 집 광(창고)
에 가서 쌀이나 몇 가마 가지고 가라.’며 거절하였다. 인색함과 탐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역사는 탐욕에 빠진 멸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익명의 무수한 사
람들이 베푼 따뜻한 인정의 손길로 공동체를 빛낸 역사이기도 하다. 재물욕, 소유욕은 욕심만큼 결국 인간의 삶을 훼손시킨다. 탐욕에서의 탈피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든 종교의 원리이며 인성교육의 기초이다.

오늘 성경 말씀들은 하나같이 재물욕에서의 탈피, 재물보다 더 크고 귀중한 가치, 인
생의 궁극적 목적을 깨닫게 한다. 부유함보다는 가난함과 나눔, 절제가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 재물을 축적하다가 건강을 잃고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죽음 다음에도 기억되는 또 다른 죽음 곧 아름다운 부활의 죽음이 우리에겐 있다. 그것은 자선과 나눔의 삶이다.

“탐욕에 빠지지 말라는 말은 너 자신을 사랑으로 채우라는 뜻이다. 가난한 자의 뒤
주가 안전한 창고로다.”(아우구스티노) “죽음의 동반자는 재물이 아니라 덕이니라.”(암브로시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루카 12,15.20)

나기순 루도비코 신부
  | 07.31
450 66.8%
[대전] 행복하고 부유한 삶

오늘 복음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할 수 있는지를 비유를 통해 보여 준다. 우선 유산 상속 문제로 다툼이 있는 형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한 자식들 간의 다툼은 예나 지 금이나 흔한 일이다. 상속은 해도 문제고 하지 않아도 문제라서 지혜와 분별이 필요한데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필요한 곳에 유익하게 기부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어서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데 이야기를 통해서나 경험으로 볼 때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삶의 주도권이 생명과 소유를 허락하신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가 혼자 계획하고 결정한다. 비유에도 그것을 ‘속으로 생각(혼자 궁리하다 : 공동번역)’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과 의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재물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살아가면서 재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재물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고 수단일 뿐이다. 또 재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고 재물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재물이 많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도 많고 본받을 만한 모범적 신앙을 사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물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그에 대 욕심은 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평가하여 욕심 부리고 집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1디모 6,9-10) 그 외에 욕심을 합리화하여 누가 봐도 욕심인데 자기는 욕심이 아니라고 한다든지 모든 것을 이해관계로만 바라본다.

재물은 성실하게 일해서 벌고 절약해서 모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면 재물을 비롯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참 행복과 자유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그 해답은 오늘 복음 뒤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에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헤아려 살려고 노력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항상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무엇이 더 중요 하고 덜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미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감사와 만족은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와 매이지 않는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헤아려 살려고 노력하면 필요한 것은 덤으로 주신다는 말씀이나 이미 받은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해야한다는 말씀은 모두 다 아는 것이지만, 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부디 잘 실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재산으로 삼고 사는 가운데 참으로 부요한 삶, 참으로 행복 한 삶을 살길 바란다.

▮ 대전교구 최석영 이냐시오 신부 2016년 7월 31일
  | 07.2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619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484
618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67
617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46
616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79
615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483
614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54
613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393
612   [전주] 신앙생활  115
611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61
610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47
609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9] 2362
608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80
607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17
606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54
605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16
604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20
603   [대구] 예수님을 생각함으로써 낮춤을 배우자  [7] 2233
602   [수도회] 낮은 자리 높은 자리  [5] 1962
601   [서울] 겸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  [8] 2578
600   [부산] 초대와 윗자리  [7] 2287
599   [안동] 낮아지고 내어줌  [3] 2230
598   [광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자  [2] 2783
597   [전주] 초대  [3] 77
596   [제주] 주님의 작은 몽당연필  88
595   [원주] 겸손한 사람  [3] 2694
594   [군종] 겸손의 덕  [2] 95
593   [의정부] 참된 희망은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음을...  [3] 78
592   [춘천] 가장 끝자리에서 그분을 만납니다  [2] 2737
591   [대전] 자신을 낮추는 복된 사람들  [3] 111
590   (녹) 연중 제22주일 독서와 복음 (높이면 낮아-낮추면 높아짐)  [5] 2029
589   [수도회] 영혼의 다이어트  [2] 2130
588   [수원] 가보니 참 좋더라!  [5] 2216
587   [서울] 좁은 문으로, 파이팅!  [7] 2674
586   [인천] 구원의 좁은 문  [9] 2679
585   [마산] 하늘나라엔 어떤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6] 2345
584   [대구] 힘써 좁은 문으로 들어가자  [4] 2482
583   [부산] 그리스도 신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6] 2577
582   [안동] 돈 - 최고의 유혹,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  [4] 2375
581   [광주] 문(門)이 있습니다!  [1] 2573
580   [전주] 구원을 향한 선택  [2] 87
[1][2][3][4] 5 [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