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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
조회수 | 2,154
작성일 | 07.08.0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들 작은 양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32-­48)

묵상

조카의 대부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또 길을 가던 대학생이 이야기 중에 친구를 한 대 쳤는데 맞은 사람이 넘어지면서 뇌를 다치는 바람에 숨졌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나갔던 사람을 시신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사고 순간에서 5분만, 아니 단 1초 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사고를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서쪽으로 달려가서 지는 해를 붙들어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루카 12,39)

만약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안다면, 그래서 내게 단 하루 24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분도 있겠지요. 이 세상을 떠날 사람은 남아 있는 가족이 너무 상심하지 않도록 해주고, 남아 있는 가족은 떠날 사람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해주면서 서로에 대한 용서와 사랑,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관계가 ‘만약’이라는 가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관계 면에서 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40ㄱ)

그런데 집주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올까요? 김수환 추기경은 ‘새벽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이웃 사람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일 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무지막지한 직장 상관의 모습으로, 일을 제대로 못해 애를 먹이는 동료의 모습으로, 지성·감성·의지·외모·부까지 다 갖추어 질투 나게 하는 잘난 사람의 모습으로, 출근길에 마구 끼어드는 얄미운 운전자의 모습으로, 마주쳐도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이웃 사람의 모습으로, 불친절한 점원의 모습으로, 피곤한 아내(남편)의 모습으로, 말썽 피우는 자식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볼 눈이 있다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오시는 주인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 만났던 한 자매님의 나눔이 떠오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저녁, 기도모임에 참석한 뒤 고속도로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답니다. 비는 이미 그쳤지만 시멘트 계단은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한 멕시칸 노숙자가 15달러만 주면 어디 가서 잠을 잘 수 있겠다며 구걸을 했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는 50달러짜리 지폐가 한 장 있었지만 그 돈은 꼭 쓸 데가 있어 줄 수가 없고, 잔돈은 하나도 없어 난감해하다가 내려오던 교우들에게 그 사정을 말했답니다. 3명이 5달러씩 내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5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는데, 교우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서둘러 가버렸답니다. 자매님은 순간 화가 났답니다. 기도모임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는 미사예물 20달러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자매님은 그만 앞뒤 생각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노숙자 손에 50달러를 꼭 쥐어주면서 ‘이런 대접받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오늘 밤 따뜻한 곳에 가서 쉬라.’고 사과했답니다. 노숙자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그에게 억지로 돈을 쥐어주고는 차를 타기 위해 황망히 물기 젖은 마당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얼마 안 가 바닥에서 100달러 지폐를 주운 자매님은 그것마저 그 사람한테 주기 위해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더군요. 그날 그 자매님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노숙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ㄱ)

어떤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일까요?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2독서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히브 11,8) 아브라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라한테서 약속의 아들 이사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후에 그는 기쁨의 아들, 약속의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믿음이, 기다림이 최고의 시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을 즉각적인 순종으로 통과했습니다.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히브 11,9)에서 보듯 아브라함의 삶의 자세는 언제나 하느님의 부르심과 요구에 즉시 응답할 태세를 갖춘 준비된 자의 모습입니다. 그의 순종은 하느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듯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즉시 문을 열어드립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ㄱ)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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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 12,32~48)

<복음 선포의 중심에 선 환자>

아주 특별한 본당이 있었습니다. 신자들의 영성생활은 너나 할 것 없이 출중했습니다. 그 누구도 불평불만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그 본당에 잠시 일손을 도와주러 간 손님 사제가 그런 ‘특별한 분위기’에 의아해하자, 주임신부님은 한 여교우 집을 방문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본당의 특별한 분위기는 모두 그녀 덕분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 여교우를 처음 대면한 사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은 보통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설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통증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통증이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애로움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여교우는 사제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제가 겪고 있는 슬픔과 병을 통해서 저를 구원해주시는 하느님께 충분히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하느님의 구속 사업에 협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를 방문하고 나온 그 사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병을 앓고 있는 이 교우가 제 강론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복음 선포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제는 바로 헤링 신부님입니다. 그 역시 생의 거의 대부분을 병고와의 투쟁에 몸 바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끔찍한 고통을 굳건한 신앙으로 잘 극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큰 수술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한번은 수술 후 생사여부가 불투명한 대수술을 목전에 두고도 평온한 얼굴인 헤링 신부님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가 있습니까?”

식도암 수술이었기에, 그는 말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조그마한 서판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순전히 은총 덕분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계속 은총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면 이 행복은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베른하르트 헤링 저, ‘나는 네 눈물을 보았다’, 가톨릭 출판사 참조)

언제 하느님께서 데려가실지 전혀 예측 못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굳건한 신앙을 간직한 채,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분명히 그분들은 자신들의 병고로, 자신들의 생활로, 자신들의 얼굴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특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대단한 것을 준비하라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에 충실 하라는 말씀이겠지요. 고통이 있는 사람은 그 고통 잘 견뎌내는 일이겠습니다.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은 그 슬픔을 잘 이겨내는 일이겠습니다. 십자가가 무거운 사람은 그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고 가는 일이겠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항상 감사드리는 일이겠습니다. 그것이 구원받는 일입니다. 그것이 치유되는 길입니다.

오늘 힘겹게 살아가시는 분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총이 역경을 뒤따른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고통의 육중한 짐이 없이는 절대로 은총의 정상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는 은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느님 본성에 긴밀히 참여할 수 있고, 하느님 자녀의 영광과 영혼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물의 분량은 노고의 분량에 비례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십자가 아니고는 천국에 오를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세상 떠나는 마지막 날 하고 싶은 바로 그 말 한 마디를 오늘 표현하며 살아가십시오.”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최고예요,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꽃이 되어 새가 되어(나태주)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이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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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루카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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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물론 틀린 이해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볼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개인에게 찾아올 삶의 마지막, 즉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도둑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도둑이 언제 들어올지 안다면 도둑에게 어처구니 없이 당할 일이 없을 것이라 하신다.

간단한 논리다.
하지만 그 간단한 이치를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이 한 달이던 일 년이던 십 년이던 정해진 시간에 끝난다고 해보자.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다.
당연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매 순간이 될 것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역시 피곤한 일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죽음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들의 일이라고 몰아가려 한다.
자신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고 죽음은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미사에 들어가기 전, 제의실(祭衣室)에서 의식적으로 제의를 입으며 기도한다.
“이 미사가 제 삶의 마지막 미사이듯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는 영원한 삶을 믿는다.
그렇다면, 그 믿음에 합당한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가장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된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을 덧없고 의미 없는 일에 쓸 이유가 없어진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영원한 삶을 믿는 이들답게 이 삶을 아름답게 살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메시지다.
이러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현세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는다.

<하늘호수 마리아>제공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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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믿음을 사랑하는 신앙인)

가장 중요한 준비는 주님을 맞이하는 믿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믿음입니다. 종들에게 맡긴 것은 믿음입니다. 종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이와 같이 종처럼 늘 깨어있는 것이며 늘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짐과 결심은 언제나 종의 본분입니다.

믿음이 깊은 종은 언제나 기쁨으로 주인을 기다립니다. 믿음이 깊으면 주인이 더디 오드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더 믿어주시는 꿋꿋한 믿음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믿는 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믿음직한 종의 모습을 꿈꾸어봅니다. 믿음을 사랑하는 준비하고 깨어있는 신앙인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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