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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자
조회수 | 2,791
작성일 | 07.08.31
어떤 피정에서 강사 신부님이 “삼척이 어디에 있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강원도”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은 “틀렸다. 삼척은 여러분들 마음 안에 있다.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이 세 가지가 바로 삼척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예화라 생각된다. 요즘 매스컴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학위 자격에 관한 내용이다. 다니지도 않았던 대학을 다녔다고 주장하고, 받지도 않은 학위를 받았다고, 자신의 경력을 속인 학력위조가 드러나 이것이 일파만파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실력보다도 어떤 대학을 다녔고, 어떤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는 학벌 위주의 세태가 문제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다니지도 않은 대학을 다녔다고 하고, 취득하지 않은 학위를 땄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 역시도 큰 잘못이다.

거짓으로 시작된 토대위에 쌓인 탑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면 금방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 생각된다. 자기 Pr시대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오늘의 세태에서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말씀처럼 생각된다. 정말 그럴까? 겸손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겸손은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겸손은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렇다. 참된 겸손은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고, 그래서 부족한 것은 채우도록 노력하고, 잘하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도록 향상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위만 쳐다보며 살아가지만, 그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높이 올라 갈수록 떨어질 위험,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을 위험, 결정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겸손을 의미하는 라틴어는 흙에서 왔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안아주고,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그 불순물들을 정화시켜 만물을 성장시켜주는 흙처럼 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흙처럼 사셨고,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보여주시며 우리들 역시도 그렇게 살도록 요청하셨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우리도 섬기는 삶,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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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박래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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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계신 하느님

“겸손하여라.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받으리라”

오늘 제1독서(집회3, 17-19: 28-29)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이 많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당신의 오묘함을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이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만한 자의 불행에는 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또 오만한 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도 겸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억울해도 내려가고 손해가 나도 낮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바로 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겸손을 ‘후밀리따스’(humilitas)라고 합니다. 이 말은 ‘후무스’(Humus)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후무스는 흙, 즉 땅이라는 말입니다. 땅은 모든 것을 다 안아줍니다.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온갖 잡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땅은 그 불순물들을 모두 정화시키면서 만물을 성장시켜줍니다. 마치 하느님 같습니다!

노자는 또 물을 최고의 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물은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올라가려고도 하지 않으며 기회만 닿으면 내려갑니다. 그리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모양이 되고 네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또 네모꼴 모양이 됩니다. 그러면서 물은 만물을 키우며 생의 기운을 줍니다. 물도 꼭 하느님과 같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턱도 없이 ‘밑지는 장사(?)’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저마다 올라가려고 합니다. 어떤 세상인지 가만히 있으면 당하고 손해봅니다. 자기 분수보다 더 확대하여 선전도 해야하고 젠체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팔리며 그래야 알아줍니다. 세상이 그처럼 사악해졌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올라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언제고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다 스스로 헛디뎌 떨어지기도 하지만 옆에서 기어이 붙들고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올라가면 멀미나고 피곤합니다. 그리고 내려가면 손해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 올라가는 길입니다.

제가 있던 본당에 두 자매가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한 자매는 너무 똑똑합니다. 본당신부가 한마디 하면 세마디, 네마디를 합니다. 자기 주관이 너무 세서 누구의 말도 안들어갑니다. 그런데 다른 자매는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예”요, 저렇게 해도 “예”합니다. 그리고 정히 할말이 있으면 끝에 가서 살짝 한 마디만 붙입니다.

그런데 묘합니다. 똑똑한 자매만 만나게 되면 피곤합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뭔 부탁이라도 들어오면 기어이 거절하고 싶습니다. 자기는 이쪽 말을 안 들어주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자매만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하고 신이 납니다. 그리고 그쪽에선 뭔 부탁이 없어도 항상 그녀를 돕기 위해서 제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옛날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기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똑똑한 체 하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이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죄인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진정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볍씨를 파종하기 전에 먼저 소금물에 담급니다. 그러면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볍씨는 아래로 가라앉지만 쓸모도 없는 쭉정이 볍씨는 위로 뜨게 됩니다. 그래서 농부는 볍씨를 고른 다음에 좋은 것만 모판에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시험해 보면 가벼운 사람은 위로 뜨게 마련이며 무거운 사람은 또 아래로 내려앉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밑으로 볼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올라가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못 보고 닫혀진 세상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부끄러워도 내려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자들이 하느님을 참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이야말로 모든 덕의 어머니이고 또 하느님 앞에 첫째가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겸손한 자는 절대로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밥먹듯 하는 일이 넘어지고 떨어지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한 자 되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바로 낮은 곳에 계십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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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자리? 끝자리?

예수님 시대에는 잔치 집에서 어디가 윗자리였을까요? 사람들을 초대한 집주인의 바로 옆 자리이거나, 식탁의 머리 부분, 아니면 긴 식탁의 중간 자리였다고 합니다. 오늘날과 별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식사에 초대 받아 온 사람들이, 서로 윗자리를 골라서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얼핏 들으면, 윗자리에 잘못 앉았다가 끝자리로 물러나게 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끝자리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 윗자리가 비게 되면 그 대 가서 윗자리를 차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처세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윗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하신 말씀의 의도는 이러흡니다.

우리 인생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면서, 사람 관계를 파괴시켜 버리는 '교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사람관계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는 '겸손의 새 옷'을 입고 참 기쁨과 참 행복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닙니다. 윗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끝자리에 앉을 수도 있습니다.문제는 '너는 나보다 못해, 나는 너보다 뭐든지 낫다'는 사람관계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교만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14,11) 예수님 말씀처럼, 타인 앞에서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보다 낫다'하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지 절대로 높아질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감춰둔 채, 남이 잘못한 것은 들추어 이야기꺼리로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슬쩍 높이는 사람도 결코 높아질 수 없습니다. 교만함을 감춰둔 채 겉으로 겸손한 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누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면, 그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철모르는 어린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음을 먼저 드러내 보이는 겸손의 덕이 특히 오늘날 대세입니다. 어느 누가 겸손으로 무장한 사람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끼. 감히 누가 그런 사람을 끝자리에 앉게 하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에서든지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겸손함입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면 교만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과 늘 가까이 있는 것은 사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함이 없이는 윗자리에 오를 수도 없지만, 올랐다 하더라도 오른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진정으로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줌으로써 우리가 함께 높아지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배행기 모세 신부
  |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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