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3.6%
[춘천] 가장 끝자리에서 그분을 만납니다
조회수 | 2,740
작성일 | 07.08.31
마음의 초대

------------------------------------------------------------------------------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님은 평생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엠마우스’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쳐 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엠마우스 공동체에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 13)

하신 명령의 삶을 충실히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삶은 소외된 이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더 큰마음의 초대로 사셨습니다. 그 같은 마음을 보이는 신부님의 글이 있습니다.

“나는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엠마우스 동료들의 양로원이나 파리 외곽에 위치한 고층건물 10층에서 지낸다. 거기서는 파리 전체가 기막히게 내려다보인다.

창문 아래로는 수도로 들어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는데, 저녁이면 도로 양쪽 방향으로 수천 개의 불빛을 볼 수 있다. 밤이면 나는 창문 앞에서 수도 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얼마나 많은 흐느낌과 행복과 어린아이들의 미소와 병든 이들의 비탄과 사랑하는 이들의 기쁨과 고독한 자들의 슬픔이 뒤얽혀 있는가!’

그 후로는 그 열린 창문 앞에 홀로 있을 때면 미사를 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인간들의 모든 기쁨과 모든 고통을 그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이다. 또한 그 유리창은 내 성당의 중앙 홀이기도 하다. 내 앞에는 내 모든 형제들이 있으며, 그들을 위해 나는 성체성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직접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을 내 가정에 초대하여 돌보거나 함께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마음만은 그들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 할 수 없는지, 그 같은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의 초대가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초대나, 봉사를 가장한 자기 위안과 만족은 그리 오래가는 사랑의 초대가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끝자리에 내려와 눈물과 탄식의 밥을 먹는 이웃들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초대받은 바리사이 집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십니다. 그리고 부유한 이들이 아닌 버림받은 이들을 초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아베 피에르 신부님도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진정 사랑으로 초대할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을 사랑의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 같은 초대가 있었던 사람들이 훗날 하느님 나라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

겸손의 초대

-----------------------------------------------------
우리는 가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갖추어야 할 윤리나 우정, 사랑이 동물만도 못하기에 나오는 심한 꾸지람, 질책이라 생각합니다.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고래들이 거동이 불편한 동료 고래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부상을 당한 동료 고래를 떠받치고 물위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나, 어미의 주검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끝내 숨을 거둔 어린 침팬지의 모습, 신선한 물과 풀을 찾아 늘 이동하는 코끼리들도 자기 어미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늘 잊지 않고 들러 한참 동안 그 뼈를 굴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 다친 동료 코끼리 곁에 함께 있는 모습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답고 숙연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행동이 반드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처럼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이해타산적인 계산이나 하고 심지어는 잔머리 굴리기 일쑤이며, 교만함이 가득 찬 인간적인 생각이 동물에게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초대하기에 앞서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1)

교우 집으로 초대되어 식사 대접을 받을 때, 어떤 집에서는 마음 편히 먹고 나오는데, 어떤 집에서는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탈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 자기의 과시나 보이기 위한 초대에 응했을 때 당하게 되는 상처는 너무도 클 것이 분명합니다.

순수한 마음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랑과 겸손의 초대를 가난한 이들은 기뻐하며, 그 기쁨이 하늘까지 닿는 것이며, 그렇게 초대한 사람 역시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보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4)

우리는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지상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가져야 할 희망입니다.

----------------------------------------------------------------------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451 23.6%
[춘천] 어머니에게 사랑받는 비법

--------------------------------------------------------

말로는 누구에게고 져본 적이 없는 성격이 대단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말발이 아주 센 초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 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습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며느리를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집살이를 시켰습니다. 생으로 트집을 잡고 일부러 모욕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냐?” 하고 트집을 잡았지만 며느리는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시어머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 시어머니는 공연히 며느리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도리어 웃으며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봐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해요, 어머니.” 매사에 이런 식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대꾸라도 해야 큰소리를 치며 나무라겠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뭐라고 한마디 하면 그저 시어머니 발밑으로 기어 들어가니 불안하고 피곤한 것은 오히려 시어머니 쪽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저쪽에서 내려가면 이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쪽 에서 내려가면 반대로 저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내려가는 사람 이 결국은 이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올라가려고 하니까 서로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나중에 시어머니가 그랬답니다. “너에게 졌으니 집안 모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시어머니는 권위와 힘으로 며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며느리가 겸손으로 내려가니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겸손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 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은 낮습니다. 오늘 1독서 집회서에서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에게 사랑받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사랑받는 비법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겸손의 미덕을 배우는 길입니다. 서로가 싸우고 충돌하고 미워하고 상처받는 이유는 내가 더 낮아지지 못하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고, 더 높아지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 ‘낮은 자로 임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며 성령의 은총을 청해봅시다.

---------------------------------------------------------

춘천교구 김근오 베드로 신부
2016년 8월 28일
  | 08.27
451 23.6%
[춘천] 뽑혀져 버려야 할 충치

-----------------------------------------------------

살아가면서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치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치과에 갈 때마다 정말 튼튼한 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복 중에 하나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윙~'하고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들릴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단 음식을 덜 먹을 걸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유독 어렸을 때는 사탕, 설탕과 같은 달달한 음식에 대한 유혹을 끊어버리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입안에 넣었을 때의 그 달콤함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다보니 충치가 생겨 결국 뽑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액을 들여 임플란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살면서 이처럼 달콤함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언젠가는 충치가 되어 뽑아 버려야하는 지경에 이르는데도 말입니다. 그 달콤함의 유혹을 끊는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우받고, 존경받는 것은 달콤함 그 자체입니다. 제가 신부라는 이유로 아이부터 연세 드신 어르신까지 허리를 굽혀 인사하시고 식사 때면 제가 꼭 수저를 들어야만 다들 식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신자분들은 쇠공기와 쇠그릇으로 식사를 하시지만 제 수저와 밥그릇은 늘 사기그릇으로 준비해 놓으십니다. 정말 그럴 때마다 송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일상처럼 되어 버린 이런 모든 것들이 어쩌면 누군가의 실수로 잘 되어가지 않을 때는 저도 모르게 속상하고 기분이 나빠지려고 합니다. 어느새 제 마음속에 교만이라는 것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또 하나의 그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충치가 되어 뽑혀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섬김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겸손과 섬김의 삶으 곧 지혜로운 삶이기도 하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오르려 다른 이들을 밟고 오르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반대임을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폄하하면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목적이 되력고 할 때는 결국 뽑혀져 버리는 '충치'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존경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해 줄 때 얻어지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14,11)

--------------------------------------------------

춘천교구 최종현 미카엘 신부
  | 08.2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623   [마산] 잃은 자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3] 2443
622   [부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9] 2461
621   [대구] 아버지의 마음  [3] 2380
620   [원주] 머리의 논리보다 가슴의 논리로 살자  [3] 2649
619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2] 98
618   [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2] 2119
617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73
616   [광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2715
615   [제주] 화해와 용서  65
614   [전주]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1] 82
613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4] 1894
612   [수도회] 제자됨의 길  [4] 2432
611   [수원] 제자들의 선택  [5] 2327
610   [인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7] 2488
609   [서울]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내려놓아야 할 것들  [9] 2717
608   [마산] 적극적인 포기  [4] 2577
607   [대구] 동행  [3] 2397
606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486
605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68
604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49
603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83
602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485
601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54
600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393
599   [전주] 신앙생활  116
598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61
597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48
596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9] 2362
595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80
594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19
593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58
592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18
591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26
590   [대구] 예수님을 생각함으로써 낮춤을 배우자  [7] 2234
589   [수도회] 낮은 자리 높은 자리  [5] 1963
588   [서울] 겸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  [8] 2579
587   [부산] 초대와 윗자리  [7] 2289
586   [안동] 낮아지고 내어줌  [3] 2231
585   [광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자  [2] 2791
584   [전주] 초대  [3] 77
[1][2][3][4] 5 [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