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3.6%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조회수 | 2,485
작성일 | 07.09.08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신학교 입학피정 때, 피정의 집 현관에서 처음 저를 맞이한 문구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제 마음 한 구석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들어가기 전, 정말 세상 한가운데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런 사랑을 하면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살 성인’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때는 그렇게 순수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위해서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기 보다는 더 많은 피조물을 덮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은 저에게 신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 결심했던 첫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동안 버리기 보다는 더 자주 타협을 했습니다. 이 현실 세계라는 땅에 발딛고 살아가기에 이런 저런 것들이 필요하고, 또 어떤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정한 제 길을 걸어가면서 그 길이 마치 예수님의 길인 냥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합니다. 그저 모든 것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됨의 길입니다.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데, 망설이고 주섬거리는 것은 아직 저에게 다가오는 십자가를 짊어지지 못하는 저의 약함 때문일 것입니다.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저의 욕심 때문입니다.

다시 첫 마음을 떠올리면서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말입니다. 그 길에 여러분도 함께 동행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바로 참 인간의 길이며 참 하느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정을 향함에 있어, 단순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단순함과 용기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청하며, 오늘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그 길이 비록 어려움과 십자가로 다가올지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꺼이 걸어갔으면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 34-35)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다보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일으켜 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각자에게 다가왔던 그 첫 마음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기꺼이 기쁘게 예수님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벗어버리는 참 신앙인, 참 인간, 참 제자 그리고 참 하느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의정부교구 배존희 스테파노 신부
451 23.6%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의미

우리 인간은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이 좋은 것이기에 그 사랑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이고, 믿음이 소중한 것이기에 서로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나눔이 좋은 것이기에 나의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은 늘 그렇게 좋은 것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얻고자 하는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구나 얻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일까요? 그것을 얻는 길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더 가져야 하는데, 내가 왜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합니까? 나도 잘났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까? 나만 잘 살면 되지 다른 사람이야 잘 살던 못 살던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지 왜 그런 험난한 길을 일부러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없이 많은 의문이 나를 붙잡고, 당장의 이익이 나를 갈등하게 하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려는 내 의지를 꺾어 놓는 수많은 유혹이 나를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런 유혹에 빠져버린다면 우리에게 좋은 것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과 항구한 용기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실상 다른 이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만을 버거워합니다. 자신의 십자가가 남들보다 더 무겁다고 투정을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지고 있는 십자가란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을 향한 나의 어떤 노력과 선택은 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란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양보를 하는 것도,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다른 이를 위해서 내 것을 나누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준동 마르띠노 신부
  | 09.03
451 23.6%
[의정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노력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의 재산, 가족 그리고 건강과 생명일 것입니다. 그동안 모아온 물질적 결실이자 미래를 보장해주는 재산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또한 나 자신을 있게 하고 사랑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하는 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이 무척 당혹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용하시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워하다.’라는 아람어 동사는 실제로 미워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덜 사랑한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나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뜻으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그보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오늘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현세에서의 성공과 그에 따른 행복만은 아닐 것입니다. 현세를 넘어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행복이 우리의 최종 목적입니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특별히 기억하는 순교자들께서 삶의 모범으로 이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수단과 과정은 ‘덜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수단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재산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도구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가족도 심지어 자신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각자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계획 하에 매진해야겠습니다. 마치 탑을 세우기 위해 계산을 하고, 전쟁에서 파멸되지 않기 위해서 상황을 헤아리는 것처럼 말이죠.

주님께서는 참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더 좋은 것을 차지하는 영광이 있기 위해서는 덜 좋은 것을 포기하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깁시다. 더 큰 영광을 위해 지금의 아픔을 감내하는 용기를 순교자성월을 시작하며 주님께 겸손되이 청합니다.

▮ 의정부교구 이종경 비오 신부 2016년 9월 4일
  | 09.0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623   [마산] 잃은 자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3] 2443
622   [부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9] 2461
621   [대구] 아버지의 마음  [3] 2380
620   [원주] 머리의 논리보다 가슴의 논리로 살자  [3] 2649
619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2] 98
618   [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2] 2119
617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73
616   [광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2715
615   [제주] 화해와 용서  65
614   [전주]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1] 82
613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4] 1894
612   [수도회] 제자됨의 길  [4] 2432
611   [수원] 제자들의 선택  [5] 2327
610   [인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7] 2488
609   [서울]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내려놓아야 할 것들  [9] 2717
608   [마산] 적극적인 포기  [4] 2577
607   [대구] 동행  [3] 2397
606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486
605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68
604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49
603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83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485
601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54
600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393
599   [전주] 신앙생활  116
598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61
597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48
596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9] 2362
595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80
594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19
593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58
592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18
591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26
590   [대구] 예수님을 생각함으로써 낮춤을 배우자  [7] 2234
589   [수도회] 낮은 자리 높은 자리  [5] 1963
588   [서울] 겸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  [8] 2579
587   [부산] 초대와 윗자리  [7] 2289
586   [안동] 낮아지고 내어줌  [3] 2231
585   [광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자  [2] 2791
584   [전주] 초대  [3] 77
[1][2][3][4] 5 [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