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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조회수 | 2,349
작성일 | 07.09.08
오늘 복음은 '버림과 따름'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버리고 누굴 따른단 말입니까? 우선 버림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봅시다. 스승과 제자가 산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옷이 흠뻑 젖었다. 산골짜기도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골짜기 건너편에는 한 여인이 내를 건너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여인도 비를 맞아 옷이 몸에 들러붙어 속살이 보였다. 스승은 그녀를 업고 무사히 건넜다. 두 사람은 말없이 젖은 산길을 걸어갔다. 제자는 스승 눈치를 살피면서 이렇게 물었다. “평소의 가르침과 달리 어떻게 외간 여인네를 업어 주십니까?" 스승은 한참 길을 가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벌써 그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느냐? 이제 내려놓아라!"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1-2). 그때 아브람의 나이 75세였다. 버려야 채워 주시고, 내려놓아야 하느님이 주신다.

어느 분의 말씀이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심지어 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뼈 속을 비워야 한다. 그 위에 다시 비상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역시 천상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의 비상은 자신을 수없이 버리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세상 것으로 가득 찬 뚱뚱한 상태로는 날아서 하늘나라에 오를 수 없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혈육이나 자신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언어에서 “미워하다”는 단어는 "덜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당신을 따르게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혈육과 자신을 미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최우선순위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번엔 따름의 이야기를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짊어지다’는 ‘십자가를 소중한 보물로 알고 품에 안고 따라야 한다’로 번역이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십자가가 마지막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천국 문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보물로 바뀌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탑과 전쟁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먼저 탑을 세우는 일입니다. 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경비, 즉 돈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설계가 완벽하고 기술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돈 없이는 탑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전쟁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적보다 우세한 병력이 필요합니다. 뛰어난 전략을 갖고 있다 해도 이를 수행할 병사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탑을 완성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병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절대적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앞자리에 모실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놔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마르 1,16-20). 게다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레위라는 세관원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자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루카 5,27-28).

그러나 내려놓지 못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마음을 힘들게 만듭니다. 특히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습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마음이 가는 것만 보이고, 마음이 가는 쪽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됩니다. 제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다른 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가득 찬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학력, 더 나아가 교만함, 질투심, 욕심 등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 성 요한 카시아노는 세 가지 포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물질 즉 부요함과 재산에서의 포기를 통한 자유, 두 번째는 옛 삶의 포기를 통하여 악행과 병든 영혼의 치유, 세 번째는 미래적 희망을 관조하고 보이는 각종 유혹에서 우리의 정신을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을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각자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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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얻는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려왔다. 그런데 예의의 기본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근본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면 형식만이 남게 되고 결국 허례요 허식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군중들이요, 오늘 복음을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사실 나 자신도 남들에게는 신앙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말로만 하는 신앙인이 아닌 듯 싶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질책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버릴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내가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에 예수님보다는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비우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데 이것만은 안 된다고 우기면서 버리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결단을 요구하신다. '너는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 나를 따르려면 너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거라.'

아마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군중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정작 하느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마음은 없고 형식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 마음가짐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바로 나라고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그리고 내 십자가는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아야 하겠다.

김광호 신부
  |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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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워야 산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 이야기입니다. 록펠러는 소년 시절 그 나이 또래 친구와는 달리 몸집도 크고 매우 튼튼하였습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자신이 어른이 된 후에 튼튼한 몸을 바탕으로 큰 부자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불과 43살에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지배하게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즈음 그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서 지독한 피부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은 바싹 야위어만 갔습니다. 1주일에 몇 백만 달러씩 벌어들이는 그의 수입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몇 조각의 비스켓과 물로 식사를 해야 했고 돈 벌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항상 경호원과 동행해야 했습니다. 록펠러는 언제나 무엇엔가 쫓기는 듯 밤이면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 속에 헤매었습니다. 억만장자 록펠러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최고의 의사들이 록펠러를 진찰한 결과 1년 이상을살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록펠러는 절망 속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막대한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록펠러재단’을 설립해서 많은 자선 단체와 의학계를 지원 하였습니다 그러자 록펠러의 생활은 이전의 건강한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잠도 잘 자게 되고 음식도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온 것입니다. 삶의 기쁨을 깨달은 그는 최고의 의사들이 1년만 살 수 있다는 진단과는 다르게 98세의 장수를 누렸습니다. 우리도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근심 걱정 초조 긴장 불안 산더미 같은 세속 일들… 이런 것들이 몸을 망칩다. 저도 회갑을 맞이하다보니 그동안 모아진 쓸데없는 짐들이 많습니다. 옷가지 책 케케묵은 일용품 등등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에 대한사랑으로 달아오르고 그분께 온전히 귀속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빼고 그리스도인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군을 무시하고 고조선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물질을 비우고 그 대신 하느님으로 채워보십시오. 록펠러보다 훨씬 큰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초창기의 순교자들처럼 말입니다.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
  |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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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

오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14,26)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표현은 ‘덜 사랑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를 때는 예수님을 가장 앞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조인 아브라함은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과감히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먼저 네 고향을 떠나라는 것은 이 세상의 재산과 땅의 풍요로움을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친족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삶의 모든 방식, 곧 과거의 습관과 악행에서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현세적인 기억, 집착에서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모범을 본받아 물질적인 포기와 과거의 삶을 거부하고, 하느님 아닌 세상의 것에서 우리의 집착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축복과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할아버지는 사제인 저에게 “하느님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분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생명을 주셨고, 또 젊음과 건강을 주시더니,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거두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젊음을 가져가시더니,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아!”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도 가져가시고, 이제는 건강도 가져가시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생명도 거두어들이실 것이니 하느님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해서 내 것이라고 믿고 있던 것을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되돌려 드리는데, 그것을 억지로 마지못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기꺼이 돌려 드릴 수 있을 때,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교구 김종민 사도 요한 신부>
  |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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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교적 포기 신청서

어느 교우가 작년부터 냉담 하던 중에 이단종교로부터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천주교 교리 중에서 삼위일체, 사랑 많은 하느님이 인간의 잘 잘못을 따져서 영원한 지옥불로 고통을 준다는 가르침, 사람이 죽으면 천당과 지옥, 연옥을 간다는 영혼불멸 사상 등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가르침인 것으로 확신 하게 되었고, 지난 50년 이상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왔으나 이제는 교적을 포기하고 떠나겠다는 글을 보내왔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가르침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50항부터 141항까지 성경과 성전과 유권적 해석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 읽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50년 동안이나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신앙에 확신도 없이 긴 시간을 살아왔던 것이 아마도 쉽게 신앙을 바꿀 수 있는 뿌리 없는 신앙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85항부터 삼위일체 교리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계시와 가르침들이 1065항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교회가 지난 2천년 동안 간직해 온 소중한 신앙의 고백이다. 사도신경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라고 신경을 마무리하고 있지 어디에도 영혼불멸 사상이 없다.

가톨릭을 비판하고,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는 집단의 논리에 넘어가서 소중한 가톨릭 신앙의 유산을 저버린 것이다.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6항)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85항) 밖으로는 가톨릭을 거부하는 교회와 세력들이 성경 공부나 봉사활동 등의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접근하고 있고,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생각과 가르침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들에서도 신앙의 가치를 상대화시키고 우리의 신앙을 어지럽히는 내용들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조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결단이 필요한 내용들이다.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확실한 앎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열심히 자신의 신앙을 공부해야 한다. 책을 읽고, 기회가 되는 대로 배우자. 신앙인은 또한 세상이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 했던 것이다. 세상 논리가 편하고 그것이 옳고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이 불편하다면 혹시 나는 그리스도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 대전교구 박경석 알로이시오 신부 2016년 9월 4일
  |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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