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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놓으십시오
조회수 | 1,448
작성일 | 10.01.23
그리스도의 사명이 뭘까요? 하느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당신의 사명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없어서, 밥이 없어서, 옷이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잡힌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힘이 없어서, 죄가 많아서, 두려움이 많아서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줍니다.

눈먼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깨우침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이웃의 마음을 알게 하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합니다.

억압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힘없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일자리가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힘 있는 사람들의 말에 강요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게 사랑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킵니다.

이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날에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선포됩니다. 구원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명이 완성됩니다.

이스라엘의 사명이 뭘까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제 에즈라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율법서를 처음으로 낭독했습니다. 백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에즈라는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느헤 8,8-10)

그렇다면 안식일이 뭡니까? 주님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날이요, 가난한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날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사명이 뭘까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에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이도 당신이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이도 당신이십니다. 우리를 보게 하는 이도 당신이시고, 우리를 억압에서 풀어주는 이도 당신뿐이십니다. 당신 외에는 다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습니다. 우리를 이끌 수 있는 이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바보라고 손짓해도 당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 손용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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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고통 중에 함께하시는 주님

얼마 전 신문에서 ‘하느님께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묻고 싶은가?’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자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왜 세상에 고통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고,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질문은 “하느님, 이 세상에서 제 소명(사명)은 무엇입니까?”였습니다. 사실 이 두 질문은 저도 하느님께 가장 묻고 싶은 질문들입니다.

분명 세상에는 수많은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고통과 억압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그 고통은 시계를 잃어버린 것처럼 사소한 일일 수도 있고, 얼마 전 프랑스에서의 테러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참혹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고통의 바다에 그냥 내던져 놓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와 고통에서의 해방자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고통을 주는 요소들을 제거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 신음하는 우리에게 참 구원과 해방을 선포해주시는 분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어떻게 앞으로 사실 것인지를 공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는 한,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도록 합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유대인이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독방에서 죽음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태양이 보이지 않더라도 태양을 믿습니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저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 군종교구 홍헌표 베드로 신부
▥ 2016년 1월 24일
  |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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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한 아이돌 가수 그룹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자주 봅니다. 그 그룹은 현재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는 노래와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그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관된 태도였습니다. 그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룹의 가수가 한 말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면 성별이나 나이, 종교나 인종을 떠나서 함께 기도해줍니다. 서로 다투지 말자고 하면 마찬가지로 사이가 안 좋은 사람끼리라도 화해를 합니다. 그들은 그 그룹의 팬이기 때문에 그 그룹가수들의 생각과 말대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른다고 하는 것은 말 만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1독서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이들은 오랜 유배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자신들의 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이들은 성벽을 재건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느님 없이 하는 행동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즈라 사제는 모든 이들 앞에서 그들에게 율법서를 읽어줍니다. 이 말씀을 듣고 누군가는 기뻐하였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백성들은 몸만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제 온 마음이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이후에 성전을 재건하는 등 하느님의 백성이 하는 모든 일에는 사랑이 담기게 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으로 가셔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받아서 성경을 봉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듣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주일 복음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의심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하느님 자체이신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서의 말씀은 모든 이스라엘사람이 마음으로 되새기고 있던 구절인데, 이는 하느님백성에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가져올 메시아가 오리라고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난 순간부터 하느님의 이말씀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1독서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직 예수님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정신을 삶으로써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정신도 전혀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먹는 양식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거는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1독서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도 있고, 복음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며 산다면,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말씀은 이미 우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랑의 실천으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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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안영근 다니엘 신부 - 2019년 1월 27일
  |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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