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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마르타의 손’에 ‘마리아의 마음’이 밀려선 안 된다.
조회수 | 535
작성일 | 16.07.15
[대전] ‘마르타의 손’에 ‘마리아의 마음’이 밀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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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군종신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입니다. 전방 부대에 발령받아 가보니 우선 성당이 없었습니다. 교회건물에 사무실만 목사님과 같이 쓰고 있으니 전혀 우리 정서가 아닙니다. 그리곤 하루 종일 장교들과 병사들을 만나러 이리저리 고물 찦차 가지고 뛰어다닙니다. 두 번이나 뒤집어져 죽을 뻔했습니다. 저녁에는 장교들과 술을 먹으러 다닙니다. 높은 사람들과 미리미리 잘 사귀어놔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천주교 신부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독도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혼자서 매일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국기강하식 때 모두가 서있었는데 그때 잽싸게 삼종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렇게 하여 점차 정체성을 살려나갔습니다. 그야말로 ‘마르타의 손’에 ‘마리아의 마음’이 밀렸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르타는 누구입니까? 여러 가지 분주한 일들과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타처럼 많은 것을 걱정하고 분주하게 지냅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바쁘게 뛰어다니는 요즘, 우리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일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너무 바빠서 성당에 갈 시간이 없다", "일이 많아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뒤로 미룹니다.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잠자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칭찬하십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의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풀이나 나무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온전하지 못하면 보이는 잎과 나무는 시들고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내적 충실이 없는 상태에서 외적 상황에만 집중한다면 안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매이듯 활동과 관상은 함께 해야 합니다. 자칫 실천에만 집중하게 되면 혁명가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또 기도에만 몰두하면 개인신앙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두 여인의 일상을 통해서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조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이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브라질의 인권운동가이신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님께서는 "현 시대에는 '마르타의 손'과 '마리아의 마음'이 모두 요청되는 시대이기에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특히 주일학교 교사회, 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성경 공부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젊은이들이 어느 한 순간 냉담자로 변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런 이들의 특징은 거의 같습니다.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그 활동을 지지해 줄 신앙생활(기도나 성경 공부 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행 통장에 돈을 넣고 뺍니다. 그런데 입금은 안 하고 출금만 한다면 머지않아 통장은 바닥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활동과 봉사도 중요하지만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마르타의 큰 손이 마리아의 작은 마음을 밀어냅니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나오라고 전화오고, TV연속극도 봐야하고, 웬 할 일이 그리 많고 웬 숙제가 그리도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는 밀려선 안 됩니다. 우리 교우 분들도 모임 등으로 성당에 오면서 아래층으로 그냥 내려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성당에 들어가 잠시라고 인사드림이 중요합니다. 영적독서, 성체조배, 성경읽기, 개인기도 등 할 일이 많습니다. 활동과 관상의 조화가 중요함을 다시 일깨워 드립니다. 그러나 ‘선 기도 후 활동’입니다. ‘마르타의 손’보다는 ‘마리아의 마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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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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