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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기도하는 사람
조회수 | 2,043
작성일 | 07.07.27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 제 17주일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제1독서에서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내용을 듣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에서 구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조건으로 하느님은 죄 없는 사람 50명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50명이 아니라 10명의 의인이라도 되겠습니까? 하고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아브라함의 '신앙심' 깊은 기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과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청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다섯 가지 청원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느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청원이고, 후반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빚, 우리의 유혹 등 우리 삶에 관한 삶의 청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벗의 청을 들어주는 비유말씀을 통해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린다.'며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도록 하십니다. "어느 아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대신 주겠습니까?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습니까? 그대들이 악해도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진대,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청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루가 11장 11-13절)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인줄 알면서도 '현실을 외면한 기도, 행동 없이 말만 늘어놓는 기도, 나 대신 해결해 달라고만 하는 기도, 남의 목소리를 흉내만 내는 기도를 바칩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위선자가 됩니다.'(정호경 신부의 농민교리서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신앙심 깊은 기도를 바쳐야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무엇보다 먼저 「①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②아버지의 사랑과 정의가 나타나고, ③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온전한 삶을 살게 하고, ④우리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고, ⑤예수님의 길을 가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게 해 주시도록」청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요즈음 국민들은 살아가기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신행정 수도를 건설한답시고 홍보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주님의 기도에서 보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 첫째 자리에 놓이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청하겠습니까? 취제크 신부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라는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 최대의 목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나깨나 음식 생각뿐이었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서슴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온 지 한 주일이 지나고 나서 숨을 좀 돌리게 되자 나는 매일 밤 먹을 것을 더 얻기 위해 일을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부엌으로 가서 서너 시간, 길 때는 새벽까지 대여섯 시간을 부엌 바닥을 닦고, 주전자와 죽통을 씻고 냄비를 닦았다. 그리고 나면 빵 한 덩어리와 죽 한 그릇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진실로 국민이나 지도자나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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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도겸 아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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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 법칙

‘2080법칙’을 아십니까?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말한 것으로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 비롯됐다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어떤 일의 종사자 중 20%가 업무성과의 80%를 책임진다는 법칙으로 나라로 보면 국민소득의 80%는 20%의 인구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2080법칙입니다.

2080법칙은 벌들의 세계에서도 통용이 된다고 합니다. 어느 양봉업자가 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실제로 일하는 벌들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무위도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양봉업자가 더 많은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 놀고먹는 80% 벌들을 모두 죽였답니다. 그러면 모두들 열심히 일해서 4배 더 꿀이 생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벌통을 조사해 보니 모두들 열심히 일할 줄 알았는데 남은 20% 벌들 중에 다시 2080법칙 생겨서 80%는 무위도식을 하더랍니다.

이 법칙은 인간 사회에도 통용됩니다. 어느 사회든지 열심히 일하는 20%만 있으면 그 사회는 유지가 됩니다. 놀고먹는 사람이 80%가 되더라도 20%라는 선만 무너지지 않으면 어느 사회든지 존립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네 사람은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80법칙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20%가 아니라 10명이 없어 유황과 불의 재앙으로 멸망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우리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상황이 재연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생태계를 지키고 땅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은 20% 이하로 줄어드는데, 화석 연료와 냉장고, 냉·난방기를 무절제하게 사용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편리주의에 빠져 생명을 죽기고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80% 이상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대류와 해양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어 추위라는 재앙이 내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인류 멸망의 날이 머지않아 닥칠 것입니다.

중국 13억 인구가 미국과 한국 사람처럼 살면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인해 2030년 안에 이 지구의 생명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환경학자들이 경고합니다. 지금의 기후 변화는 인류 역사상 단연 최고의 위협입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금세기 내에 기온이 최고 5.8도까지 상승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IPCC는 장기간의 혹서, 폭풍, 홍수, 열대병의 온대지역으로의 전파 등의 현상이 증가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로 인해 인간의 건강, 가축, 농작물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금세기에 해수면이 최고 88cm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로 인해 농경지 토양 속으로 해수가 침투하게 되고, 일시적 또는 영구적 범람으로 인하여 전 세계 농업 지대의 30%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남극 내륙빙의 2차 용해, 북극, 그리고 그린란드 빙상 용해가 훨씬 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대양의 염도를 낮추고 그것은 다시 멕시코만류와 같은 해류들의 해양순환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지속되면 겨울에도 온화한 북미와 북유럽은 꽁꽁 얼려버릴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는 냉각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현상이 사막화입니다. 해들리센터(영국 기상관계 기관)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2100년까지 지구의 3분의 1이 사막화될 가능성이 높고, 수백 만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뭄이 22세기로 넘어가면 지구표면 절반 이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특히 가뭄의 급속한 확산은 농업을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구면적의 19%인 3천만평방 킬로미터가 사막화 되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15억 명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아시아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경제 개발 정책으로 인해 심각할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아시아 전체 면적 43억ha 중 17억ha가 이미 사막화로 황폐화되었습니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환경 대란이 일어났을 경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합니까? 2007년 현재 식량 지급률은 겨우 25.3%, 농민의 비율을 인구의 7.15%에 불과 합니다. 과연 이 자급률과 비율로 앞으로 4,800만명이 먹고 살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 맺어서 자동차 팔고 핸드폰 팔아 번 돈으로 값 싼 수입 농산물을 먹으면 되지요.” 그러나 식량대란이 나서 미국도 중국도 자국민에게 먹을 것이 부족 할 텐데 어떻게 다른 나라에 식량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국민의 75%인 3천600만명은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기아로 죽어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제 누가 뭐래도 식량은 안보이며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생존과 안보는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살아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농민의 숫자를 20% 이상으로 유지 시켜야 하고 식량 자급률은 대부분의 선진국들처럼 100% 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천년의 유구한 역사는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프랑스는 농민의 숫자를 전 인구의 24%인 1천400만명으로 계속 유지시키고 있는 것은 기상이변으로 식량위기가 닥칠 것을 알고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공존하여 살도록 하느님이 만든 법칙 바로 2080 법칙입니다. 이제 모두가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도 2080법칙을 지켜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지금 바로 천민자본주의를 버리고 생태적(生態的)이고 농적(農的)인 삶으로의 전환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안동교구 김시영 베드로 신부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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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11,1-13

주님의 기도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루가 복음서 11장 1절에 의하면, 늘 기도하시던 스승의 모습이 제자들의 호기심을 대단히 불러일으킨 듯하다. 그래서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백성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던 세례자 요한이 기도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자기들도 그것을 배우고 싶었을 것이고, 또한 자기들이 따라나선 예수님만이 온갖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스승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에 관한 강의를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기도를 주심으로써, 그들이 기도를 하고 체험하게 하셨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바로 저 유명한 ‘주님의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주님의 기도 - 일곱가지 청원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6,9-13)와 루가(11,2-4) 복음에 나온다. 청원의 수는 서로 다르지만, 큰 차이가 없으며,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기도에 일곱가지 청원이 들어있다고 가르쳐 왔다.

처음 세가지 청원은 영적인 은혜를 위한 것이고, 나중 네가지 청원은 현세의 도움을 위한 것이다. 현세적인 것들도 우리가 장차 누릴 영원한 행복을 위한 준비이므로, 현세의 삶을 위하여 청원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청원은 모두 영생을 위한 것이지, 현세적인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현세적인 것은 모두 구원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구원과 멀리 떨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님의 정신과 일치하여 드리는 이 기도는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자의 기도이다. 인간은 그 약한 본성 때문에 자기가 영원한 세상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고, 이 세상을 잠시 쉬어 가는 주막이 아니라, 본 고향처럼 여겨, 여기에 빠져버리거나 안주하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이 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인생의 본 목적에서 이탈하려는 강한 경향들과 투쟁하는 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분을 이 세상의 주인과 생사의 대권을 지닌 분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불려질 권리가 있거나, 그런 영예를 일을 수 없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고 있다는 사실, 즉 하느님깨서 우리를 세례성사를 통하여 양자로 삼으사, 그리스도의 상속을 함께 나누도록 배려하신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아버지라는 칭호를 묵상할 때,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 그분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이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삶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관대하게 드러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한없는 신뢰와 감사와 경외심으로 그분께 나아갈 수 있으며,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어려운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하느님의 양자 되어

이는 마치, 집도 절도 없는 불쌍한 소년이, 저명한 가문에 양자로 입적되어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하느님의 양자라는 사실은, 하느님과 우리 개개인의 관계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우리가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왜냐하면 타인들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분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때, 우리와 그들은 모두그분의 사랑 받는 양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상속은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야 하며, 부정적인 측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이나 사회적인 신분 구별을 원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흑백 갈등이 얼마나 심하며, 우리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지역감정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진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그리스도인은, 만인을 차별 없이 대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빈부의 차이나 지역감정, 민족과 피부색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교구 전달수 신부
  |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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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우리가 청할 빵 세 개”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회사의 감독관은 신입사원들에게 빗을 나눠주면서 3일 안으로 스님들에게 빗을 파는 사람만이 입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3일 뒤에 빗을 팔고 회사로 다시 온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는데 감독관은 그들에게 빗을 어떻게 팔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하길, 절에 빗을 팔러갔는데 어떤 스님 한 분이 자꾸만 머리를 긁기에 다가가서 빗을 사용하면 시원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스님은 빗을 사용해보고는 아주 만족해하면서 한 개를 샀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어느 절을 찾아갔는데 거기에는 산도 높고 바람도 많이 불어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다 헝클어진 것을 보고는 주지 스님께 “이 빗을 절 입구에 놔두면 사람들이 머리를 단정히 하고 참배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하자 주지 스님은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인근에 있는 암자까지 모두 합쳐 열 자루를 샀다고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어느 유명한 사찰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에 주지 스님을 찾아가 참배객들이 더욱 단정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찾아오도록 빗을 하나씩 선물로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했고, 이왕이면 그 빗에 ‘적선소’(선을 쌓는 빗)라고 새겨 스님이 직접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빗을 백 자루나 샀고 다음에는 다양하고 예쁜 색깔의 빗을 더 주문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말을 들은 감독관은 세 번째 사람을 크게 칭찬하면서 그를 영업직 사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스님들에게 빗을 판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빗을 팔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가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복음으로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오늘 복음은 그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 역시 필요한데 그 기도는 끈기 있고 간절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과 끈기 있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끈기 있게 기도하는 자세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끈기 있는 기도는 간절함에서 나오는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몇 번 혹은 몇 일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간절한 기도가 아닐 것이고 또 그 기도가 당장 들어지지 않았다고 실망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청을 무조건 들어주기 보다는 자녀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들어주는데 하느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어느 한 사람이 한밤중에 다른 벗을 찾아가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루카 11,5)하고 청했는데 이 빵 세 개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여기서 빵 세 개란 신망애 삼덕을 말한다. 어느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빵 세 개를 청했듯이 우리도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청해야 한다.(갈멜의 산길 중)”

그리고 그 빵을 한밤중에 청한 것은 그 세 가지 덕목을 한 시라도 잊지 말고 끊임없이 청하는 자세를 말씀하신 것으로, 그것이 대낮이든 한밤중이든 상관하지 말고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간절하고 끈기 있는 기도의 자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보면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끈질긴 마음으로 우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운다면 그 향기는 멀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간단없는 기도의 자세를 간직해 봅시다.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루카 11,5)

▮ 안동교구 권상목 세례자요한 신부 : 2016년 7월 24일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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