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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구하면 얻고, 두드리면 열린다
조회수 | 2,137
작성일 | 07.07.28
구하면 얻고, 두드리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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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간에 맺고 있는 관계성안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 자체를 관계성의 총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간에 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서로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해로운 관계일 수도 있다.

인간이 맺는 이러한 관계성에는 나에게 완전하게 득만 되는 관계성도 없고, 나에게 완전하게 해만 되는 관계성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물론 자기에게 득이 되고 삶의 보탬이 되는 관계성을 원하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원의는 가끔 정반대의 결과를 갖게도 한다. 원하지 않는 관계성도 어느 때에는 외부적인 조건이나 사회의 관습상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우리는 사회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만나게 된다..

이제 부모가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고 살아있는 부모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고, 자기의 형제가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형제관계를 단절시키거나 무효화시킬 수도 없다. 또한 이웃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저 사람은 내 이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실제적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서로가 만나지 않음으로써 관계성을 무시한 채로 살아갈 수는 있다. 또한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체면 생각말고 청하라.

그렇다해도 사회의 통념상으로 인정되는 형식상의 관계성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는 사회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동일한 형태를 취하도록 강요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관계성이 좋게되거나 관계성이 나빠지는 것은 전적으로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의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기도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신다. 기도는 청하는 자의 입장에서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항구하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나 이해하기에 그렇게 쉬운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친구가 어려운 가운데 청하는 간단한 청을 거절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청을 하는 태도는 좀 이상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쌍방통행식 기도가 돼야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두드리면 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항구성을 강조하신다. 이러한 항구성은 기도하는 자의 태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서, 기도를 할 때에는 한두 번 조심스럽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오늘 곤경 중에 있는 자가 친구에게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탁을 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과 같이 계속해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 중에 어느 한쪽에게만 일방적으로 득이 되는 관계가 없는 것같이, 일방적으로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 경우에도,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청을 드리는 하느님도 생각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무조건적이고 예의에 어긋나게 보이는 기도도, 사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하신 하느님은 이미 우리가 청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끝에 나오는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최종 목적은 인간의 구원에 있으므로, 인간이 청하는 것 중에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결정적인 사항은 하느님께서 다른 것으로 대체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노력에 속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청하면, 나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한다. 좋은 관계성은 쌍방 통행일 때에 최선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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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신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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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든 기도의 모범이 되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기도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다하여 '주님의 기도'로 불리며, 기도 중의 으뜸 기도입니다.

2000년 콘솔라따 선교수도회 사순 묵상집에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특별한 묵상의 글을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당신이 다만 세상의 것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기주의 속에서 혼자 떨어져 살고 있다면 '우리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매일 아들로 처신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과 물질적인 성취를 혼동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뜻을 고통스러울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약도 없이, 집도 없이, 직장도 미래도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형제에 대한 한을 품고 있다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죄를 계속 지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단호하게 악을 반대하는 편에 서지 않는다면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기도'의 말씀들을 진지하게 생활하고 있지 않는다면 '아멘'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기도를 앵무새 마냥 다 외운다고, 수백 번 기도한다고 하여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대전교구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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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느님! 당황하셨어요?

요즘, 유행어 중에 하나가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라는 말이랍니다.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개그인데,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고객이 순순히 따라줘야 일이되는데, 고객으로부터 뜻하지 않는 대답이 튀어나올 때, 본인의 당황스러움을 오히려 고객에게 “당황하셨어요?” 라고 말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당황스러운 사람은 정작 고객이 아닌 본인이고, 그 원인 역시 본인으로부터비롯되었는데도 거꾸로 상대방에게 당황했냐고 묻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참으로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위대한 신비를 믿고 거행하며, 또한 살아계신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의 많은 기도를 드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마음단단히 먹고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였지만, 응답이 없거나 오히려 기도 내용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낙담을 하게 되고, 기도의 맛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모든 기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를 손수 일러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친구의 간청과부자지간의 사랑을 예로 들면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루카 11,9)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해 이렇게만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분명, 내가 원하고 바라는 소원이 하늘에서 꼭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뜻으로 드리는 주술적인 주문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말 그대로 가장 완전한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기도 그 자체가 곧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를 통해내가 이루는 것이 아닌,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기를간절히 원하고 기다리는 쪽은 기도드리는 내가 아닌, 오히려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이심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답답하다면, 혹시 “하느님! 당황하셨어요?” 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에게물어보면 어떨까요?

<대전교구 최상순 신부>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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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기도생활이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 감사하며 찬미하는 것이다.

1) 하느님은 살아계신 아버지 하느님이시며 그분께 우리는 기도드린다. 제1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의 중재 기도에 대한 내용이 아브라함과 하느님과의 대화형식을 통해 나온다. 하느님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없애 버리기로 하 신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죄 속에 있고 서로 죄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죄의 온상, 전염병이 퍼지듯이 확산되는 죄의 뿌리를 없애시고자 결심하신다. 그런데 “그 속에 의인들과 무죄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죄인들과 함께 멸망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발생한다.

독서 안에서 아브라함은 끝까지 이 질문을 하느님께 하며 거래하듯 대화를 한다. “의인이 오십 명 사십 명 더 나아가 열 명이라도 있으면 멸하시겠습니 까?” 마치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거래하는 대화같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의인이든 죄인이든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마치 가족을 끌어안고 버티는 아버지같은 아브라함의 절실함과 그 마음을 알면서도 결정할 수 밖에 없는 하느님의 아픔과 애환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마지막 장면은 하느님이 자리를 피하신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된다.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멸망을 미리 통고하며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재앙을 피하도록 도와주는 길뿐이다.

2)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그분의 중재 안에서 기도한다. 예수님 시대의 세상에도 구약 시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복잡한 세상이었다. 죄와 차별과 폭력과 고통 속에서 벽을 세우고 있었고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약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솟아오르는 시기였다. 이때 하느님이신 예수님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하시고 병자와 방황하는 사람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치유와 용기를 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면서 당신 생명을 내어주시며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보여 주셨다.

3) 정열적으로 반복해서 포기하지 않고 하는 기도는 이루어진다. 잠자는 사람이 문차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깨어 문을 열어줄 만큼, 집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혹시 문이 부서질까봐 열어줄 만큼 세차게 적극적으로 하느님이 아시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께 구하고 있는 한 확실하게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실 것이고 그러기에 이미 기도를 통 하여 간구하고 있는 중에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미 얻었음을 확신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으며,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현재 우리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 대전교구 정준섭 요셉 신부 : 2016년 7월 24일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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