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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7주일 독서와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조회수 | 872
작성일 | 13.07.26
▥ 제1독서 :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 창세기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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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 콜로새서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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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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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기도가 간절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우리가 원하는 때와 방식이 아니라,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와 방식으로 들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여기며 끈기 있게 기도하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성조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일흔다섯 살이었을 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친자식처럼 키우던 조카 롯을 하느님께서 염두에 두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을 등지고 분가해 버립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종 하가르를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약속을 하신 지 25년이 지난, 아브라함이 백 살이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라를 통하여 이사악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과 때에 자식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철없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청했을 때, 지혜로운 아버지는 적절한 방식과 때를 맞추어 그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뢰 속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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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7월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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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신앙인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소통하며, 자신의 청원을 올리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올바른 대화가 되려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은 오로지 우리에게 필요한 선익을 주시는 분으로,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이나 게으름을 보충할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도 안에서 자신의 온전한 존재로, 살아 계시며 진실하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한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며, 자유로운 인간과 참자유이신 분의 만남입니다. 아브라함의 표현처럼 그분은 절대자이시며, 우리는 그분 앞에서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 삶의 굴곡의 순간들에 함께하시어, 오늘 시편이 노래하듯이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은 응답”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도 청원보다는 응답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드러내신 분에 대한 응답이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바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의식을 성찰하여 하느님과 일치해야 하며, 삶으로 바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될 수 있도록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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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6년 7월 24일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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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곤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아무 답도 없으신 하느님 때문에 절망하곤 합니다. 그런 체험을 가지신 분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얼마나 기도해야 들어주실까요?” 그러면 저는 농담 삼아 이렇게 답하기도 합니다.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든지, 아니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든지 할 겁니다.”

우리는 대개 기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분의 나라가 오시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도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 악에서의 구원을 청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것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입니다. 이렇게 보니 주님의 기도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사실, 무엇을 청하든지 기도의 마지막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 손에 달려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보니 기도 때 많은 말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저는 아버지를 귀찮게 하는 어린아이처럼 바라는 바를 아버지께 청합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무엇을 청하든 언제나 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께서 바라시는 방식으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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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7월 28일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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