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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참된 자선
조회수 | 685
작성일 | 15.12.11
[대전] 참된 자선

자선은 베푸는 생활입니다. 남모르게 베풀 때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됩니다. 요한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라고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런데도 ‘베풀라고’ 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질을 생각합니다. 있어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물질이 자선을 좌우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라도 중심은 마음입니다.

어떤 가정주부가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동네에 구멍가게를 내고 정직하고 친절하게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손님이 많아지고 물건이 딸리게 되어 이제는 트럭으로 들여놓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팔아야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여 바쁘게 물건을 팔고 있는 부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건너편 가게는 이제 곧 문을 닫아야 한다는군.”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물건을 트럭으로 주문하지 않았고, 파는 물건도 줄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물건은 우리 집에 없고 건너편 가게에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 후 시간이 많아져서 부인은 자기가 좋아하던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인이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남긴 소설가 미우라입니다.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욕심이 나를 바쁘게 하는 것은 아닌지...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자가 되라’, ‘꼴찌가 되라’,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들은 ‘더’라는 욕심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더 많이’라는 욕구에 병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병을 치유하는 약은 ‘희생’과 ‘자선’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Roma 교회를 위하여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에게 호소한 설교를 보면 이러한 희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토 9,6-8)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바치는 행동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봅시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취하신 행동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숙연한 그 시간에 예수님은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내 계약의 피다.” 당신 몸을 내놓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분의 몸을먹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에게 먹을 것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먹을 것으로 내어 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살아남게 되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게 된 것에, 고통을 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고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섬김을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발을 씻어주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도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대전교구 지경준 시몬 신부 - 2015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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