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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님을 끌어안기
조회수 | 399
작성일 | 16.07.22
[의정부] 주님을 끌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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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이면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여러 군부대를 다니며 다양한 군대 체험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흔히들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나오면 쉴새없이 많은 말이 난무합니다. 어떨 때는 지겹지도 않나 싶지만 나이드신 어르신들도 군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군대생활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체험보다도 컸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당연히 안될 일인데도 훈련을 받다보면 어느새인가 가능한 일이 되곤합니다. 그런 강렬한 체험이 아마도 남자들은 평생 가져가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커다란 보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너무도 잘 아는 주님의 기도이지요. 너무 흔해서 무의식적으로도 나올 정도니, 뭐 이정도면 한국불교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효대사의 이 짧은 기도가 불교를 대중화하는데 공헌했다고 하네요. 그저 뜻도 모르고 해 재끼는 기도라면 그건 주문을 외는 것이 아닐까요?

기도는 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하루를 지내면서 우리는 수십, 수백번 누군가를 부릅니다. 부모, 자녀, 직장동료, 친구를 부릅니다. ‘부름’은 관계성이 유지되고 일이 성취되는 시작점에 자리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부름’이 없이는 관계가 유지되기도 어렵고, 일을 성취하기도 어렵지요. 기왕 부를 때 예의를 갖춘다면 금상첨화일테지요.

‘불리움‘을 듣고 ’부름‘으로 존재를 의식하게 됩니다. 곧 기도는 관계의 유지와 성취를 위해서 반드시 취해야하는 삶의 지혜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숨도 들숨 날숨이 있고 만사가 들고 남이 있듯이 ‘불리움-부름‘은 삶의 이치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의를 갖추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잘 먹고 살게 해 주세요. 천국가게 해 주세요. 주님과 함께 살고 싶어요. 마음편히 살게 해 주세요. 그같은 순수한 기도가 모두 ‘주님의 기도‘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총7개의 청원기도 중에 전반부 3개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직접 청원이며, 후반부 4개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필요한 육신의 양식과 마음의 평화(영육간 건강)를 청합니다. 완벽한 기도입니다.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군대 이야기처럼, 주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기위한 아브라함의 끈기를 배웠으면 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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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지정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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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참된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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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지금 이 시간에도 온 세상 곳곳에서 당신을 향한 주님의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감히 주님의 기도를 올릴 자격이 없는 저희는 무엇을 기도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입으로 떠들어댑니다. 주님의 기도를 들으실 때마다 오히려 가슴 갈기갈기 찢겨지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

사랑, 희망, 평화, 화해, 일치, 평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 질 오직 하나인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가차 없이 내동댕이치면서도 오히려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시기를 기도하는저희의 위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오직 권력과 재물이 진리요 오직 가진 자의 횡포가 정의인 냉혹한 현실을 즐기면서도 오히려 나눔과 섬김의 당신 나라가 오게 하시기를 기도하는저희의 위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가진 것도 모자라 없는 이에게서 더 빼앗고 한없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날뛰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인양 가장 낮은 사람인양 가장 겸손한 사람인양 매일의 소박한 양식만을 청하는 저희의 위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피의 잔치에 광분하여 보복, 응징, 척결, 살벌한 말장난을 즐기면서 용서 없이 용서를 구하는 저희의 위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생명의 길을 외면하고 죽음의 잔치를 벌여놓고 모두 이 잔치에 함께 하자고 협박하며 죽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저희의 위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 저희의 입에서 주님의 기도가 드려질 때마다 오히려 더욱 쓰린 가슴 쓸어내리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 주님의 기도를 제대로 바칠 수 없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의 입에서, 저희의 마음에서, 저희의 삶에서, 참된 주님의 기도가 울려나도록 이끌어주소서.

저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이름들이 곧 당신의 곱고 거룩한 이름이 되게 하시며, 저희가 정성스러운 마음 씀씀이와 열정적인 몸짓으로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심게 하소서.

당신께서 날마다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선한 벗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듬으며, 저희의 온유한 얼굴과 따스한 눈빛으로 당신의 자비와 용서를 드러내게 하소서.

빛과 어둠, 살림과 죽임, 진실과 거짓을 혼동시키는 유혹의 덫을 걷어 버리고,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참된 기도를 언제나 어디서나 힘차게 드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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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 2016년 7월 24일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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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기도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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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다동의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도를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식사 전 기도’가 전부인 신자분들도 많이 계셔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기도할 것을 강조하면 ‘힘들어서요. 바빠서요.’라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정말 기도가힘들까요? 바쁘면 기도할 수 없을까요?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일상생활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불을 정리하며 바치는 기도’, ‘밥을 풀 때 바치는 기도’, ‘현관문을 나설 때 바치는 기도’ 등 우리가 생활하면서 바칠 수 있는 기도문이 쭉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기도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의 느낌대로 대충 지어보면 이런 식이겠네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도 새
하루와 새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씻을 때, ‘주님, 저의 외모 뿐만 아니라, 저의 죄 또한 깨끗이 씻어 주소서.’ 밥을 풀 때 ‘주님,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영혼의 건강도 생각할 수 있는 은총 주소서.’ 신발을 신을 때, ‘주님 오늘도 저희 발길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기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답은 잘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그러면 왜 친구들, 이웃들과는 잘 대화하면서, 하느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왜 그렇게 힘들어 할까요? 결국, 정작 중요한 마음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시작할것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내 대화의 상대가 어려운 분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편하게 말씀하라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우리가 청하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기도문만 반복해서 바치는 기도가 힘들 때는, 그냥 하느님께 속마음을 친구한테 하듯 편하게 말씀하셔도 좋은 기도가 됩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했어요. 잘했나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이것을 행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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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정호영 요셉 신부 : 2019년 7월 28일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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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기도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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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다동의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도를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식사 전 기도’가 전부인 신자분들도 많이 계셔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기도할 것을 강조하면 ‘힘들어서요. 바빠서요.’라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정말 기도가힘들까요? 바쁘면 기도할 수 없을까요?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일상생활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불을 정리하며 바치는 기도’, ‘밥을 풀 때 바치는 기도’, ‘현관문을 나설 때 바치는 기도’ 등 우리가 생활하면서 바칠 수 있는 기도문이 쭉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기도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의 느낌대로 대충 지어보면 이런 식이겠네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도 새
하루와 새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씻을 때, ‘주님, 저의 외모 뿐만 아니라, 저의 죄 또한 깨끗이 씻어 주소서.’ 밥을 풀 때 ‘주님,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영혼의 건강도 생각할 수 있는 은총 주소서.’ 신발을 신을 때, ‘주님 오늘도 저희 발길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기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답은 잘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그러면 왜 친구들, 이웃들과는 잘 대화하면서, 하느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왜 그렇게 힘들어 할까요? 결국, 정작 중요한 마음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시작할것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내 대화의 상대가 어려운 분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편하게 말씀하라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우리가 청하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기도문만 반복해서 바치는 기도가 힘들 때는, 그냥 하느님께 속마음을 친구한테 하듯 편하게 말씀하셔도 좋은 기도가 됩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했어요. 잘했나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이것을 행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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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정호영 요셉 신부 : 2019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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