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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조회수 | 96
작성일 | 19.06.29
[군종]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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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매주 미사를 거행하면서 신자들에게 건네며 나누는 저의 질문이자 인사 중 하나입니다. 이 질문성(?) 인사를 통해 제 나름대로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묻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여러분 한 주간 신앙인답게 잘 사셨습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인사를 해 보죠.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여러분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한 주간 신앙인답게 잘 사셨습니까? 김태진 신부의 생활성가 ‘마음을 드높이’의 첫 구절,‘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크고 작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에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니 더 나은 안식과 편안함을 좇는 세상의 시각으로 본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 없고 성가신, 아니 위험천만한(?) 삶이기까지 한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있는 것 마저 다 내어놓고 따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한 서커스 단원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고, 그가 외줄 위에서 부리는 온갖 묘기를 많은 사람이 손에 땀을 쥐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줄타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그의 멋진 묘기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서커스 단원이 사람들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줄타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원자 없으십니까?” 조금 전까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볼 뿐, 누구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 소년이 “나요!”하고 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서커스 단원은 이 소년을 어깨에 태우고 줄을 타고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박수를 그에게 보냈습니다. 줄타기 묘기가 다 끝나고 나중에 사람들은 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겁나지 않았니?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지?” 그러자 그 소년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저 분이 내 아버지거든요!”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아버지가 맞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맞다면, 그 아버지께서 외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그러면서 세상 것들에 아쉬워하며 흔들리는 그런 자녀들이 되지는 결코 않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많은 분들이 행복을 찾아 하느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떠난 진정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론 어렵고 힘들어도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방황하는 많은 냉담 자들에게 참 행복의 삶으로 초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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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용한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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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쟁기를 잡고 뒤만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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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따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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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의 만남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자기부정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따르는 길은 고난과 역경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엘리야는 길을 가다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소를 그냥 두고 달려와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열왕기 상 19,20) 그는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어떤 사람이 그분께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복음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그분을 따르는 길의 험난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삶이 그분을 따르는 길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를 따라라.”(루카 9,59)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 그분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아버지의 장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요.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61)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고백대로 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쟁기에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그분은 그에게 하느님 나라는 차선이 아니라 우선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전부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쟁기를 잡고 자꾸 뒤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고 다음부터 그러겠습니다.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 그러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바쁩니다. 숨 쉴 틈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기면 당신을 꼭 따르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고, 내일은 친지 결혼식이며, 모레는 고모 장례식이라서 미사도 빠집니다. 그리고 제 딸이 손자를 낳아서 꼼짝달싹 못해 주일도 거릅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따르겠습니다. 적당히 주일이나 지키고, 판공 때 대충 고해성사나 보고, 약간의 착한 일을 하면서 지내겠습니다. 그리고 요령도 피워가면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런 우리가 그분을 따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우리가 그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분은 우리에게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고, 그리스도의 자유를 얻으라고 하십니다. 육의 욕망을 채우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육을 위한 사람은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어 파멸할 터이지만, 성령을 위한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 섬겨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때 우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셨던 그분처럼. 그러나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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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손용환 신부
  |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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