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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조회수 | 112
작성일 | 19.06.29
[광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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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선택하셔서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 소명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결단과 희생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결단, 자기를 죽여야 하는 희생, 그리고 땀흘리며 수고하며 걸어가는 기나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1독서에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엘리사를 후계자로 부르는 장면이 아주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때 겨릿소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곁을 지나면서 겉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걸쳐 주자 엘리사는 지체없이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 달려 갔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벗어 걸쳐 준다는 것은, 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예언자의 직분과 권한과 그 능력을 전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사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의 인사가 필요했습니다. 인사 없이 떠날 수는 없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서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먼저 황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굽습니다.

황소를 죽이고 쟁기를 부순 것은 다시는 그 일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작별의 인사를 전하게 되니, 중도에서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본 인에게 커다란 수치요 죽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처럼 철저히 준비를 하고 스승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대단히 큰 영광이지만, 그러나 용기있게 따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독서와는 대조적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 사람이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이처럼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첫번째 사람은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하고 간청했지만 그러나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적극적으로 따라가겠다는 것을 거절하십니다. 이처럼 부르심은 인간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 당신의 뜻에 의해서 불리워집니다. 여기서 부름을 받는 이의 자세는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확실하고도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결단과 수락입니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또 어디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 길이 사막일 수도 있고 가시밭이나 자갈밭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르시니까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 가는 우리의 자세요 응답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끊고 죽이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황소를 죽이고 쟁기를 부쉈듯이, 그리고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버렸듯이 자기 것을 포기하고 끊어 버리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자기가 묶여 있거나 매달려 있으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무거우면 못 따라갑니다. 재물이 많아도 안되고 인정이 많아도 안됩니다.

셋째는, 뒤를 돌아다봐서는 안됩니다. 뒤를 돌아다보면 10년 동안 열심하게 걸었던 공로도 다 물거품이 됩니다. 아무리 앞을 보고 십 년이나 백 년을 걸어갔어도 뒤를 돌아다보면 바로 한 발짝 거리 에 파계가 있습니다. 십 년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래서 나흘 거리를 사십 년 걸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로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길은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또 아무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하고 땀흘리며 고생하는 자만이 주님의 뜻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도구로서 올바르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교황주일입니다. 교황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참으로 훌륭하신 교황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교회로서도 실로 새 시대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많은 기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소명을 가지고 성실히 봉사함으로써 교회가 진정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존경과 애정으로 교황님께 축복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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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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