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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조회수 | 104
작성일 | 19.07.23
[원주]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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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느님 신뢰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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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성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실제 생활에서 말같이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생활이 쉽지 않은 까닭은 시간적 이유 때문입니다. 바쁨과 게으름이 혼합된 형태입니다만 급하고 필요한 일들을 하다보면 기도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고, 또 시간이 주어지면 게으름과 피곤함이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기도 자체에 맛들이기보다는 기도의 결과에 주목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남성들이 더 심하다고 합니다. 남녀의 대화를 비교하면 남자들은 목적 지향적인데 비해 여성들은 과정 지향적입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대화하고자 할 때는 어떤 정보를 주거나 할 말이 있을 때인데 비해 여성들은 관계를 위해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없을 때도 대화를 위한 대화를 즐깁니다. 기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로 기도에 맛 들이는 사람들이 왜 여성들이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든 분명한 사실은 기도의 의미는 과정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기성찰, 그리고 성찰을 통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볼 수 있음이 기도의 중요한 부분인데 인간의 욕심은 결과라는 그럴듯한 유혹에 넘어가 결과를 가지고 기도의 선악을 판단하고, 기도마저도 비용과 효과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재단하면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을 때는 기도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기도에 쉽게 실망하는 이유는 기도의 내용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또 어떤 내용은 너무 불가능한 욕심이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후 자신에게 물어보면 내가 무엇을 기도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의식한다하더라도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완전무결한 상태인 극단적인 이상형만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천국보다 더 행복한 삶을 꿈꾸고 감히 예수님도 꿈꾸지 못한 완전한 사랑의 사람을 우리는 기도를 통해 염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적은 달성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에 그러한 목적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허황된 목적의 추구는 삶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좀 더 현실적이고 인간의 조건에 맞는 목표를 기도 안에서 구하지 않는다면 기도를 또 하나의 정신적 유희로 만들거나 아니면 기도에 실망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 실패의 요인은 조급함과 성급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청하는 것은 즉각 이루어져야 하고 한번 기도하면 그 효과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조급성이 항구한 기도를 방해하는 원인이요, 이것이 모든 기도 실패의 근저에 뿌리박고 있는 요소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조급함은 우리가 기도를 위해 넘어서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인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이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욕심과 감정을 다스릴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전반부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고 후반부는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인데 오늘은 후반부를 같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 밤중이라는 상황 때문에 순순히 빵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하더라도 거듭거듭 청하면 들어준다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내용도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면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비유의 교훈자도 첫 번째 부탁이 거부당했을 때 여러 가지 느낌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치사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분노의 감정으로 오기로 청하거나 아니면 그 일을 가슴에 새기고 기회가 오면 그대로 갚아 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다스리고 계속 청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친구가 들어 줄 것」이라는 친구에 대한 믿음입니다. 친구가 한 밤중이라는 상황이 주는 모든 어려움과 몸의 게으름과 이기심을 이겨내고 나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이라는 친구의 호의를 믿었기에 간청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친구에 대한 신뢰가 굽히지 않는 항구함과 인내의 간청을 낳는 씨앗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이 비유는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때 인간은 한 두 번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신뢰에 바탕을 둔 욕심과 본능적인 감정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간청의 기도야말로 우리를 기도에 맛들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이 친구의 비유가 주는 교훈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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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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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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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구하여서 받고, 찾아서 얻고, 두드려서 열린 경험이 있는 사람을 보기란 참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를 하면서도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의문도 갑니다. 이런 의문 속에서 하는 기도는 끊어지기 마련이고, 심지어는 하느님의 존재까지도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인가?

기도를 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도록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시작이 어떠하든 기도는 우리 자신한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기도하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께 다가갈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를 당신과의 만남의 장으로 초대합니다.

둘째로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우리를 초대하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나와 하느님과의 인격전인 만남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인 만남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마음을 사심(私心) 없이 온전히 하느님께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는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욕심일 뿐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것입니다. 즉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이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마음을 두드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구태여 원하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오직 하느님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더욱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자연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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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고은락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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