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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모으는 데보다 잘 쓰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조회수 | 97
작성일 | 19.08.02
[청주] 모으는 데보다 잘 쓰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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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도 가능한대로 많이 모으기를 원합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당연히 더 많은 안정과 만족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입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그러나 안정과 만족은 재물을 모아 소유하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모아 소유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 사용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결코 얻어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물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모으는 데에만 온 마음을 쏟을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마도 애써 모은 재물을 내버리듯 써 없애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잘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똑같은 만 원을 사용했으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그냥 내버린 듯한 느낌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십만 원을 사용한 듯한 느낌입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듯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재물의 사용에 대한 “가치판단기준”이 흔들리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재물의 사용이 자기 자신에게 다시 더 큰 이익으로 되돌아올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재물을 잘 사용했다고 판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가치판단기준으로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루가 12, 21).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만사 헛된 일로 끝나버렸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재물 사용에 대한 가치판단기준을 하느님께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이유는 사람들은 바로 그 길을 통해서만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나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무조건 교회에 기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물론 탁월한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그 뿐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당신 자신과 똑같이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마태 25, 40). 그들은 베풀어주어도 되돌려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본다면 베풀어준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결국 하느님께로부터 입니다. 그 근원을 따져도 그렇고 현실을 따져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재물에 대해 올바로 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러한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느님을 위해 그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 결코 인색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인색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일 것이고 결국 그가 쌓아올려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말짱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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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홍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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