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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
조회수 | 2,681
작성일 | 07.06.28
우리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르면서 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흉내내고 배운다. 살아가는 태도도 배운다. 그러면서 닮아간다. 우리는 항상 누구를 혹은 무엇을 빠르면서 모방하고 닮아간다. 정신도 가치관도 그렇게 따르고 배우고 닮아가면서 형성된다.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따를 것인가에 따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것이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를 혹은 무엇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결정도 어렵지만 그 결정에 끝까지 성실하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따른다는 일에서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 한 결정과 약속에 철저한 만큼 자기를 만들어 간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또 다른 이루어야 할 일이나 계획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따르는 것에 있어 성실하지 못하게 만들고 따르겠다는 결정을 이행하는 것을 피하거나 미루게 만든다. 따른다는 것은 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새로운 행동 양식 혹은 삶의 양식을 필요로 한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로 했다. 엘리야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났다. 엘리야를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포기했다. 엘리야를 따르는 것에 철저히 스스로를 얽매여 놓았다. 이것은 엘리사의 삶이 되었고 그의 모든 것이 되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다.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고 따르고자 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 결정을 이행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얼마나 철저히 얽매여 좋을 것인가는 우리 자유의 실현이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씀 하신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이웃의 종이 되라고 말씀 하신다. 자유는 스스로 무엇인가에 철저히 얽매이기 위해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할 때 가능하고 실현된다. 그래서 삶은 때론 곤혹스럽다. 그러나 무엇의 노예가 되는가, 무엇에 얽매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가는 바로 자기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관습이나 배워진 이념의 논리를 따르면서 편안함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약속이행이 우리의 고향이며 쉴곳이고 행복한 보금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것은 다른 것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고 다른 것은 닮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안에서 자신과 그리스도 아닌 것을 포기할 때 실현된다. 늘 부끄럽다. 많은 세월을 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 세월만큼 예수님을 닮지 못해서. 그러나 부끄러움이 그리스도를 다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더욱 성실할 수 있는 은총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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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김하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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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것들을 요구하고 계신다.

먼저 한 사람이 스스로 예수님을 따라나서며 자신있게 말한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그의 말투로 보아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어디든지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일이 어떤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신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호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앞장 서 가시는 그분이 머리 둘 곳조차 없듯이 그분을 따라나서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의식주조차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이다. "나를 따라라"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도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한 가지 남아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탁한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너무나 당연한 부탁이다. 아니 부탁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태도는 단호하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예수님을 따라나서기로 결심한 세 번째 사람도 인간으로서 당연한 부탁을 예수님에게 드린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다시 예수님은 잘라서 말하신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참으로 매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씀들이요, 요구들이다.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보여주시던 예수님의 다정함과 연민의 모습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예수님은 왜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단호함을 보여주시는 것일까.

예수님이 오늘 보여주시는 단호함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긴장 관계 안에서 이해된다. 오늘, 예수님은 가까운 장래가 아니라 당장 이 자리에서의 결단을 요구하며, 지금 당장 그 결단을 실행하라고 촉구하신다. 예수님에게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점점 자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하느님 나라를 살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에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것도 예수님을 따르라는 부르심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호하시다.

그 말씀들 안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아직도 무엇인가 자꾸 여지를 남겨 두고자 한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해야 할 인간적인 일들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인답게 행하라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위한 노력을 항상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자꾸 자꾸 미룸으로서 부실한 삶으로 내 삶을 방치해 두지 말라는 것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아멘

김민규 신부
  |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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