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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도의 본질은 우리가 듣는 데 있습니다.
조회수 | 1,947
작성일 | 07.07.28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매일 기도 중 중요한 것은 아침9시 이전과 오후9시 되기 전에 하는 쉐마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조, 만과와 같은 것인데 기도 시간이 되면 자기가 어디에 있든지 경건한 태도로 쉐마를 꼭 바칩니다.

그 외에도 유대인들은 세세한 사건이나 사물을 접할 때마다 일정한 기도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도가 형식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뜻 있는 랍비들은 “의무를 빨리 끝내려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 겸손한 자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행위이다”라는 비판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기도할 때 빈말만 잔뜩 늘어놓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기도의 본질은 우리가 듣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의 타이르심을 잠잠히 듣고 있는 자녀의 태도가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릅니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이라도 아버지가 시키시면 무엇이나 받아들이겠다는 순수한 마음과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요구만 앞세우고 관철시키려 하거나 내가 요구해도 하느님은 들어 주시지 않더라는 식의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장소를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결국은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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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전주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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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한 번씩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만으로는 시설을 운영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원하는데 없으시면 후원 좀 해주시죠!” 혹은 “우리 기관에 이게 필요한데 좀 도와주시죠!”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어렵게 부탁했는데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달라고 청하는 일이 선뜻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말을 하는데 용기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날 위해서 후원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요, 날 위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때부턴 용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거절을 당해도 소심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되더군요. 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에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거듭 청합니다. 그냥 청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상대로 마치 협상하듯 하느님께 청합니다. 아브라함이 감히 하느님을 상대로 협상하듯이 청할 수 있었던 이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하느님과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공명심으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 때문에 함께 멸망하게 된 소돔의 의인들을 위해 아브라함은 간절히 기도했고, 그 아브라함의 기도를 선하신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그 끝에 친구에게 찾아가 빵을 청하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자신과 가족이 배가 고프다고 밤에 찾아가 빵을 청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밤에 찾아가 빵을 청했습니다. 왜냐하면 밤길을 걸어와서 피곤하고 허기진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염치와 부끄럼을 무릅쓰고 빵을 가진 다른 친구를 찾았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더 소신 있게, 더 끈질기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부탁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기보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위하기보다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거듭거듭 청하고 또 청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여기신다면, 기도의 지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대구대교구 김구노 신부>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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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것인가?

예비자 교리를 할 때 예비자들에게 “기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면, 대다수가 자기 소원을 신께 비는 거라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들고 고달프니까 복을 받아 편하고 행복 하게 살려는 모든 인간들의 소망이 바로 ‘기도란 신께 소원을 비는 것’이라는 정의로 드러납니다. 기도란 과연 소원을 청하는 것인가요?

오늘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당신이 아니라, 하느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소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빛나고,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러고 나서 우리 개개인 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마침내 천국으로 구원해 주소서… 이런 뜻입니다. 결국 개개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느님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개인의 소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져야 천하의 만민들에게 구원과 은총이 골고루 돌아가기 때 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내 소원이 이루어지길 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저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 니다. 결국 기도란 하느님과 내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고 세상이 하느님 뜻대로 돌아가도록 하느님을 찬미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기도를 드릴 것인가? “하느님! 사랑합니다. 비천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가 당 신이 주신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고 가서 마침내 당신 나라에 들게 하소서. 그때까지 제가 믿음과 사랑과 순종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대구대교구 김교산 알체리오 신부 : 2016년 7월 24일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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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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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루 살아갈 힘을 주는 양식, 이 양식을 하루만 청할 것이 아니라 매일 청하라고 하십니다. 이 양식은 밥만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라.’고 하신 것에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 그렇게 알려 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 그런 걱정은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마태 6,31-32; 루카 12,29-30) 다른 민족이 애써 찾는 양식이 아닌 다른 ‘일용할 양식’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양식이 아닌, 예수님께서 청하라고 하시는 그 일용할 양식은 오늘 하루 아버지의 나라를 드러내게 하는데 필요한 은총, 오늘 하루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은총, 오늘 하루 사랑하도록 힘을 주는 은총, 오늘 하루 용서하도록 힘을 주는 은총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총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구하기 위하여 끝까지 매달립니다. 자신이 아니라 소돔의 사람들을 위해서(물론 조카 롯이 거기에 살고 있었지만) 그렇게 매달립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한밤중에 빵을 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자신이 배고프면 그냥 잘 수 있지만, 친구의 배고픔을 위해서는 끝까지 매달립니다. 그리고 필요한 빵을 얻기 위해 사람이 사람에게 줄곧 매달리듯이 하느님 아버지께 끝까지 매달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매일 아침 하느님 아버지께 매달려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하는 양식을 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랑하는데 필요한, 용서하는 데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자녀인 우리가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양식을 주신다고 약속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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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승재 알로이시오 신부 : 2019년 7월 28일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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