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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불나방”
조회수 | 2,640
작성일 | 07.08.02
“내가 죽거든 땅에 묻을 때 손을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리스 알렉산더 대제의 이 유명한 유언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임을 절감한 그의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라는 ‘희망가’의 가사 역시 부귀영화가 삶의 최고 가치가 아님을 깨달은 사람의 고백일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오늘 독서에서 나오는 세상적 가치 추구의 덧없음과 복음에서 “ …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더 많이 갖는 것만을 목표로 살았기에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 했으며, 자신이 만족할 만큼 갖지 못할 경우 삶을 한탄하고 불행하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조급증과 이기심과 적당주의가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질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들이 오늘 예수님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후회하게 될 때는 이미 죽음의 문턱일 때가 많습니다. 재물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며, 그것이 내 소유라 하더라도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바로 밝고 화려한 부유함의 불꽃을 향해 ‘불나방’처럼 덤벼들다 죽어갈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는 물질이 주는 안락과 쾌락의 기쁨이 마치 영원한 것인양, 그리고 자신이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여긴 나머지 그 재물 창고에만 불을 밝혔던 것입니다. 밝은 빛을 비출 때 빛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속의 것은 보이지 않듯이,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생명의 빛 너머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알렉산더의 유언이나 희망가의 가사를 우리가 알고 있다 해도 또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 가슴에 심어진다 해도, 부(富)가 주는 만족감을 떨쳐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저 화려한 빛을 향해 덤벼들다 바로 그 빛 아래 떨어져 죽어가는 어리석은 불나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 앞에 겉으로 화려한 부자이기 보다 소박하지만 내면의 부자가 되기를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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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교구성경봉사자 호보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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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의 모습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 1,2). 이 말씀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반향되고 있다. ‘헛되다’(hebhel)라는 단어가 전도서에 22번이 나온다. 그 본래 의미는 ‘수증기’, ‘숨’을 의미하여 폐에서 콧구멍과 입에 이르자마자 없어지는 ‘숨’처럼 단기적이고 단명한 모든 것을 말한다.

제1독서: 전도 1,2; 2,21-23: 헛되고 헛되다

인간에게 확실한 보증이 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제1독서는 말한다. 돈이라는 것도 인간에게 확실한 보증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일에 대한 수고와 걱정과 불안에 대해 돈이 과연 무엇을 보상해줄 수 있는가 라고!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21절). 그러므로 돈을 쌓기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복음에 나오는 부자처럼 보통 두 가지 위험에 부딪히게 된다. 갑자기 닥치는 죽음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에 자기의 재화를 누릴 수가 없고, 자신의 고뇌를 행복과 평온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 즉 부자가 된 그는 이제 그렇게 애써 모은 재화를 지키기 위해 밤에도 마음을 죄어 걱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1독서의 내용은 세상의 것들의 ‘일시성’과 잠정성을 알게 함으로써 인간을 고통과 실망 속에 떨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부’(富)에 들어가게 한다. 이렇게 ‘복된 가난한 이들’에 이르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복음: 루카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오늘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의 ‘재화’ 앞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재산분배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즉 첫째로 인간은 그 내부로부터 이기주의라는 악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기주의를 치료함으로써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고 폐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유산의 공평한 ‘심판자’처럼 행동하려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를 요청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 필요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가르침은 재화와는 관계가 없는 인격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관한 것이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15절). 많은 사람이 그들이 갖고있는 ‘재산이 자신들의 생명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정 반대의 의미이다. 소중하게 여긴 그 재화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생명을 잃게 한다. 즉 애덕과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열지 못하게 하고, 재화를 쌓는 일에만 몰두하여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21절)이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부자의 이기심은 자기 자신을 망치는 것이 되고, 스스로 자신을 자신이 지은 감옥에 가두는 결과를 내는 것이다. 여기서 그 자신 안에는 다른 사람은 전혀 존재할 수 없고 그의 재산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은 그에게 허무를 안겨주는 모습이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20절). 생명과 재산이 그에게는 동일한 것이었기 때문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지혜롭고 능력이 있어 보였던 그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고 있다. 성서에서 ‘어리석다’는 개념은 하느님을 모르는 체하고(시편 14,1) 잘못된 근거에 자신의 신뢰심을 두는 사람으로 하느님을 거부한 후 스스로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이 부자는 아둔하고 앞을 내다볼 줄 모르고 전혀 가진 것이 없는 ‘어리석고 가난한 자’이다. 즉 자신이 죽는 순간에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을 전혀 갖지 못한 자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21절).

제2독서: 골로 3,1-5.9-11: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묵시록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3,17). 이 세상에서 재화와 재물에 집착하여 거기에 매여 노예가 되는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선성과 사랑에 대해 신뢰심을 가질 것을 권고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하며 애쓰지 말라. 그런 것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가 12,29-31).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 세상의 재화나 재물에 매여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으로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 재물이나 재화에 집착하고 거기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우상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재물이나 재화의 노예가 아니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 재물이 그것을 만드신 주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사용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2-3절).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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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보험은?

자동차 보험이 만기가 되어 지난 월말에 새로 보험료를 냈다. 사회에는 수많은 보험 상품이 있고, 자동차 보험 같은 경우는 법으로 규정할 만큼 운전자들에겐 필수다. 더구나 유사시에 그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보험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물론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생명의 안전까지 보장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사시의 부담을 효과적으로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참으로 생명을 보장받는 뭐 그런 보험 없을까?

구약성서의 후기 작품인 전도서는 12장 전체가 교훈적인 내용들이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설교자는 인생의 의미를 꿰뚫은 달변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 1, 2b) 이 강한 어조에는 사족(蛇足)을 붙이기가 껄끄럽다. 세상살이의 부질없는 욕심과 비애를 통렬하게 고백하고 있다. “날마다 낮에는 뼈 아프게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죄어 걱정해 보지만 이 또한 헛된 일”(전도 2, 23)이라고 하니 말이다. 깨달음의 화두(話頭)를 왜 그리도 헛되다고 말했던가!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 체험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정치와 철학, 역사와 문학도 상당히 해박한 인물이다. 사도로서의 본격적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의 신앙과 믿음은 단연 심오한 경지에 올랐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지상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라며(골로 3, 1-2 참조) 골로사이의 신자들이 ‘새 인간’(골로 3, 10b)이 되기를 촉구한다. 이방문화의 영향에서 만연한 그릇된 종교와 사조, 인종과 신분에 따른 빈부와 계층간의 차별, 기우와 우상숭배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참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안에 생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가 12,
15b).

인간의 풍요로운 삶은 소유의 풍족함이나 잉여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탐욕은 인간을 본연의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산을 많이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곤 한다. 우리는 재물이나 소유가 절대적 가치처럼 부상(浮上)된 사회에 살고 있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재물에 대한 걱정이 끊일 날 없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성서는 자신의 노력이나 재물로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루가 12, 16-20;시편 14, 1-3 참조). 재물에 대한 욕심은 자기 영혼을 구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과는 무관하다. 영혼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바로 그것이 ‘헛되고 헛된 일’일 것이다. 생명을 보장받는 삶이란 소유 자체에 대한 집착을 떠나,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그 선물을 이웃과 나누는 실천이다. 이것이 천상의 생활이요, 하느님 안의 생활이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공유(公有)하는 넉넉한 마음과 나눔의 정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생명 보험’을 하느님께 들어야 할 것이다.

수원교구 이상선(요아킴) 신부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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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어떤 부자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의 모습을 통해서 탐욕을 부리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십니다.

이 부자는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자신의 능력과 계획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쳤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애써서 모았던 재산, 자기가 누리기 위해서 모았던 재산은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코헬렛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토록 힘들인 노력과 수고가 허무로 변해버렸습니다. 이처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탐욕의 삶은 그 끝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자신만을 위해서 부를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부를 추구하는 이유는 예화의 부자와 같이 대부분 자신의 삶을 즐기고 누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그런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알기 전이었다면 그렇게 현세에서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땅에 있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위에 있는 것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을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하느님 나라에서 주어질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삶은 이 세상의 재물을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써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입니다.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채우고 쌓는 것보다 비우고 나누는 것을 통해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수고하고 애쓰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서 이 세상에서의 부유함보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윤섭(요한사도)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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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성사를 앞둔 예비신자 마태오 형제는 요즘 삶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자신의 세례명을 ‘마태오’라고 정하고 마태오 사도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성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태오 형제는 젊었을 때부터 돈을 좇는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하였고, 그런 가치관 때문에 신앙은 사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악착같이 노력한 덕분에 젊은 나이에 일찍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고, 좋은 환경에서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열심한 가톨릭 신앙인이었기에 그는 결혼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관면 혼배성사만 받았고, 신앙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돈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습니다. 가족과 가정보다도 돈이 우선이었고, 결국 무리한 사업 경영과 계속되는 술자리로 건강을 해쳤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사업 경영을 할 수 없게 되자, 결국회사는 부도의 위기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마태오 형제는 한순간에 삶의 희망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순간에 마태오 형제의 곁을 지켜준 것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마태오 형제가 모든 것을 잃고 삶을 포기했을 때 아내가 나서서 힘이 되어주었고, 자녀들이 함께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세리의 삶으로 부(富)를 축적한 마태오 사도가 예수님의 부름에 새로운 삶을 체험하였듯이, 마태오 형제도 주님과 가족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으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틀 후 받을 세례성사를 기다리며, 마태오 형제는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음을 새삼 떠올립니다.”

삶의 가치를 재화에 두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정말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물론 재화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위의 사례처럼 재화가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탐욕이 허무(虛無)하다는 것을 체험한 이스라엘의 임금 코헬렛은 제1독서에서 한 나라의 임금이 누렸던 인간적인 부(富)와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삶’임을 후대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코헬2,22-23 참조).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성(本性) 중에 아마도 욕심(慾心)은 누구나 가진 인간의 모습인듯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제1독서에서 우리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중에 탐욕을 우상 숭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콜로 3,5 참조). 그러나 그러한 탐욕은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초대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형의 유산을 좀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어느 군중의 부탁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탐욕의 삶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루카 12,15 참조).그리고 계속되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재화가 아니라, 자기 비움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며, 결단의 삶임을 강조하십니다(루카 12,16-20 참조). 그리고 이 삶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봉헌해야 하는 ‘부유한 삶’임을 강조하십니다(루카 12,21 참조).

오늘 전례 안의 말씀들을 잠시 눈을 감고 묵상하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현재적인 것들이 허무하고 의미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바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출발할 수있는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자기 비움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라는 것에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을 테니까요.

▮ 수원교구 이재현 요셉 신부 2016년 7월 31일
  |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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