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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 부유한 되었으면 합니다.
조회수 | 2,405
작성일 | 07.08.05
어제 새벽 일어나니 몸에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 보입니다. 사실 어제만 물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며칠째 계속해서 모기한테 물리고는 있는데, 문제는 그 모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제 새벽 드디어 제 눈앞에 있는 모기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파리채를 있는 힘껏 내리쳤고, 드디어 모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모기를 잡은 제가 과연 기뻤을까요? 기쁘지 않았을까요?

며칠 동안 잡겠다고 벼른 모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기에서 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어제 새벽 저는 모기한테 네 군데나 물렸습니다. 따라서 저를 문 모기라면 피가 나와야 정상인데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를 물은 모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실망과 함께 저를 문 모기를 잡지 못했다는 분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방 구석구석을 돌면서 모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기는 딱 한번만 문다.”는 언젠가 읽은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제가 피가 나오지 않은 모기를 잡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저를 곧 물을 모기를 미리 잡았다는 것으로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불평불만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우리 성당 중고등부 학생들이 캠프를 간 가평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그렇게 막힐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동해로 휴가 가는 차량들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했지요. ‘뭐 이렇게 휴가 가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던데, 다 거짓이구만?’

가평에서 인천으로 다시 돌아올 때에는 더 길이 막히더군요. 그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 갔다가 이 시간이 돼서야 나오는 거야? 길 막히게…….’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나 역시도 길 막히는데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 많은 차량 중에 하나의 차량이니까요. 그런데 저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편하게 가려는 욕심으로 다른 차들을 판단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버린다면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있기에 나쁜 것만을 생각하고 나쁜 것만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합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재산을 형이 독차지를 했나 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간청은 공명정대한 분배를 원하는 것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탐욕을 보셨습니다. 즉, 공명정대한 분배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는 욕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형제간의 사랑이 더욱 더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비유한 사람의 비유를 통해 지금 이 순간, 재화를 모으는 데에만 신경 쓰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님을, 대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하느님 앞에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임을 말씀해주십니다.

이제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만을 꼭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나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 부유한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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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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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성자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을 우리는 ‘부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많이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성자’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누가 더 존경을 받을까요? 당연히 부자가 아니라, 성자를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지.”라고 말하면서 부지런히 뭔가를 주워 모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표가 ‘소유’인 사람들은 그 소유를 얻었을 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소유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노동을 착취하고 정작 이웃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을 자신의 호주머니와 쾌락을 위해서 허비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소유가 영원히 계속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유는 순간의 기쁨만을 가져다주는 쓸데없는 욕심 덩어리일 뿐입니다. 마치 낚싯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보지 못하고 무는 것처럼,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확률 낮은 도박에 전 재산을 걸어서 쫄딱 망하는 것처럼, 그리고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재산 다 날리고 패가망신 당하는 것처럼, 어떤 소유에 대한 욕심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그런 한 남자가 나옵니다. 군중에서 나온 한 사람이 자기 집 재산 분배에 대해 관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아마 이 사람의 형이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했나 봅니다. 분명히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요. 따라서 이 사람은 공평한 분배를 할 수 있도록 중재를 서달라는 부탁이었지요. 사실 공평한 분배를 해달라는 것,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불공평한 분배를 바로 잡는 것이니 옳은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 사람을 꾸짖는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즉, 이 사람은 공정한 분배에 따른 정의를 외쳤지만, 이 사람 안에는 다른 것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욕심이었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 말씀은 재물이 많다고 반드시 나쁘다는 뜻도 아니고, 재물이 적다고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즉, 재물 자체보다는 재물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온갖 욕심에 젖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경고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말씀을 해주시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진실로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은 재물이나 명예라는 탐욕의 덫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이제는 부자보다는 성자가 되는데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이성만 시몬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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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소유에서 행복으로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다 함께 음미해 보았으면 합니다.

행복에 대한 갈망은 인간에게 주어진 은총이며 행복은 인간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라 말하고 싶습니다. 신앙인 역시 참된 행복, 영원한 행복을 향한 여정을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열심하다는 신앙인 중에도 행복보다는 신앙 자체를 또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만들고 있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참된 행복과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고 우리를 그 길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분의 가르침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세상의 소리, 세상의 논리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소유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시간과 열정뿐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존중돼야 할 사람이나 인간관계까지도 희생시키거나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합리화시키기까지도 합니다.
우리의 관심도 늘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탐욕)에만 있었지 어떻게 더 잘 나누고 사용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를 배우고 실현하려는 데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소유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유가 탐욕으로 되지 않도록 우리는 조심하고 경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행복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얻어지는 것, 샘솟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모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부유한 자, 행복함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천교구 김재수 토마스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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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듯이 그들은 집도 가족도, 자신의 생업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예수님께 두었고,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여러 마을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버린다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직장 없이, 가족을 포기하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인 <코헬렛>에서 말하는 ‘허무’의 의미는 ‘포기’의 뜻이 아닌 부질없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덧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이 우리 행복의 근원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인생을 살며 하루하루 가족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정작 돌봐야 할 나 자신은 잊고 그저 경쟁 속에서 바쁘게 살았던 것이 후회됩니다.’

무엇엔가 집중하고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나’ 자신의 행복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행복은 하느님을 통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더 많은 돈이 있으면 좋겠고, 무엇이든 더 넉넉하면 좋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얻더라도 지금처럼 모자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내려놓다’, ‘버리다’라는 말의 의미는 말 그대로 가족과 재산을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 즉 신앙을 지켜가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의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식별한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입니다.

신앙은 모든 것 안에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의 재산을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모으고 사용할 수 있을까, 나의 가정에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삶으로 옮겨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행복을 향해 가는 매일매일이 지겹고 힘들다면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반복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모두 버리고 내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 내가 만나는 나의 가족과 형제, 자매들의 모습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보고, 기억하고, 깨달아 간다면 우리는 내가 목표로 했던 먼 훗날의 행복을 매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 이러한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는 분명 이러한 행복을 추구하고, 누리며 기쁘게 기도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이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인천교구 유민균 예로니모 신부 2016년 7월 31일
  |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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