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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조회수 | 2,963
작성일 | 07.11.23
어느덧 강산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알록달록 붉게 물들였던 나무들이 이제는 그 화려한 옷을 벗고 서서히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춥고 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는 넉넉함과 따뜻함이 마음 한 구석에 배어 있었는데 이제는 왠지 모르게 허전함과 공허함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을 자연에게 겸허히 내어 놓는 나무를 보면서 겸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교만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공과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연은 늘 겸허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본래의 주인에게 내어 놓을 줄 아는 겸손을 지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는 날이며 또한 본래의 주인인 예수님을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인 ‘주님’으로 생각하며, 그분을 ‘왕’으로 섬기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그래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그러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이의 것까지 욕심을 내고 탐하며 좀처럼 자신의 것을 내어 놓고 나누는데 인색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도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는 삶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그러한 삶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서도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참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화려한 옷을 입거나 으리으리한 궁궐과 같은 보금자리가 없으셨지만 아버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참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통해 참 삶을 볼 줄 아는 자만이 그분을 ‘주님’ 혹은 ‘왕’으로 섬길 수 있고, 겸허히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두 죄수가 그분 양 옆에 있었지만 그분을 왕으로 알아본 죄수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어도 어떤 이는 교만을, 어떤 이는 겸손을 따릅니다. 우리는 바로 후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최종현(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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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다스리는 왕

희생의 왕

문득 예전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오봉선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오봉선사는 중국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된 뒤 타이완으로 건너가 불법을 전합니다. 그의 희생과 실천의 삶에 매료된 타이완 원주민들은 그를 왕 이상으로 떠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그리하여 타이완은 오랜 병폐적인 전통들을 고치게 됩니다.

그런데 오봉선사가 아무리 충고하여도 원주민들이 고치지 않는 악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마다 새해에는 백성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기원하며 산 사람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그 무서운 악습이 고쳐지지 않자, 오봉선사는 어느 해 백성들에게 새해의 제물로 쓸 산 사람을 자신이 직접 마련해 보겠다고 제안합니다. 늘 산 사람의 제물 마련이 어려웠던 백성들은 선사의 배려에 크게 기뻐합니다.

오봉선사는 백성에게 어느 어느 날 어느 곳에 빨간 보자기를 눌러 쓰고 앉아 있는 이가 있으니 절대 보자기를 벗기지 말고 그의 목을 쳐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제사를 드리는 날 백성들은 선사의 말대로 그를 잡아 목을 친 뒤 제물로 바쳐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빨간 보자기를 벗겨보니 제물이 된 사람은 다름 아닌 오봉선사였습니다. 백성들은 통곡을 합니다. 이후 타이완 섬에서는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무섭고 끔찍한 풍습이 없어지고 해마다 오봉선사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죽은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이야기인데,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까닭은, 오봉선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꼭 빼어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실패한 삶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다른 이들을 행복에로 이끌어 주었던 경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반면,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고 영웅시하며 치켜세우는 삶을 살았던 이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픈 죽음과 그 뒤에 아픈 희생이 따랐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삶은 분명 세상의 눈에는 실패한 것으로 비칠지 모릅니다. 그러나 2천 년이 넘도록 예수님의 지상 삶을 실패로 단정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전 존재를 바치시어 인간 사랑으로 사셨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세속적인 성공의 왕이 아니라 희생과 사랑의 왕이신 분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예수님의 지상 삶은 단 한 사람의 행복과 풍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두고 세상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은 참다운 온 세상 사랑의 왕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게 마련입니다. 그 단적인 예를 보여 주는 것이 오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있는 두 죄수입니다. 한 명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다른 한 명은 부정합니다. 죽어가는 마당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비아냥거립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 39).

그러나 다른 죄수는 진정한 뉘우침 속에 예수님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간절한 청을 드립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온 우주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판단 대상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세속 권력의 왕이신 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신 천상의 왕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가엾은 인간을 위해 오늘 당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인간 사랑에 눈물을 흘리시는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구원이요, 희망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의 주님으로 인정한 죄수는 예수님께 최초로 구원의 확답을 받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 43).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 지상에서 그 낙원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낙원을 자신들만의 이기적인 낙원으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바쳐 세상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된 왕의 참된 신하이기 때문입니다.

배광하 신부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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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대림제4주일 "천사의 아룀"

이스라엘의 작은 고을 나자렛으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난다. 그러고는 이제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 하여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 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28~31) 라고 하였다. ‘처녀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은총인가?’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 이 이야기 에 마리아는 그 뜻을 헤아린다. 그러고는 “보 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 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고 당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만약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천사의 아 룀’을 은총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 리는 이 사건을 저주라고 생각하고 그 아룀을 부정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은총과 하느님께서 생각 하시는 은총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의 신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맹목적인 순명이 아닌 당신의 삶을 통해 이 사건을 순명의 정신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우리 역시 신앙의 삶을 살아가지만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순명과 겸손의 삶을 봉헌하지 못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모님의 예수 잉태 에 대하여 “예수를 몸으로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셨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역시 신앙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어야 한다. 성탄은 우리가 마음속에 주님께 대한 순명과 겸손을 통한 ‘받아들임’이 있을 때에 다가옴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우리는 탄생하실 예수님을 어디에 모실 것인 가? 성모님은 당신의 순명과 겸손으로 아기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이셨는데, 과연 우리 는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을 맞이하고 있는가? 우리가 탄생할 아기 예 수님을 신앙의 정신과 삶으로 맞이하지 않는 다면 이번 성탄에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신앙의 눈이 없는 사람 에게 주님은 보이질 않으며, 십자가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의 탄생은 의미가 없 을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복 된 일이며 은총의 선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은총의 선물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 총의 선물이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을 곰곰이 묵상하여야 한다. 이러한 용기를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겸손과 순명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성모님께서 은총을 왜 가득히 받으셨 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천사의 아 룀’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남은 대림 시기는 내 신앙으로 만든 삶의 자리에 아기 예수님의 쉼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춘천교구 최혁순 요셉 신부>
  |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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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해마다 맞지만,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교황 비오 11세 교황께서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는 마음으로 ‘온 세상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대히 기리는 축제’ 를 기리고자 하였습니다. 그 후 교황 바오로 6세에 와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이 명칭을 통해 우리는 지상과 교회의 구분 없이 모두 다스리는 왕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세속주의와 민족주의의 사상이 발생하면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이 꺼져가는 안타까운 마음을 다시 하느님에게 돌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는지, 아니면 세상의 것을 중심으로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먼저 추구 하며 살았는지, 또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나의 마음에 먼저 두고 있었는지, 세상의 것을 먼저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세상의 흐름속에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 옆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원받은 죄인처럼 항상 내 자신의 잘못을 먼저 깊이 뉘우치고,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 기도를 통해 더욱 더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은혜로운이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그리스도 왕 대축일’ 을 지내는 오늘,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를 묵상하면서,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인 오늘을 잘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 춘천교구 윤장호 시몬 신부 : 2016년 11월 20일
  |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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