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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고통과 역경을 통한 진정한 부활 신앙
조회수 | 2,064
작성일 | 07.04.21
오늘 또다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이 몇 번째로 당신을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두 번씩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도 제자들의 마음은 차갑기만 합니다. 아직도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고기를 잡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그들의 스승이었다면 뒤통수라도 한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우둔한 사람들아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였는가’ 하며 말입니다.
  
그럼 오늘 복음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중심이 되어 7명의 사도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들의 직업으로 복귀를 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걸려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3년간 일을 하지 않아서 고기 잡는 솜씨가 녹슬어버린 것일까요? 물고기들에 대한 감을 잊어버려서 고기를 못 잡은 것일까요? 아님 고기를 많이 잡아 씨를 말려버려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지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서 그들은 밤새도록 헛수고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고기를 잡지 못하였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풍성한 양의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은 시련이었지만 이 어려움과 피곤함을 통해서 그들은 예수님을 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6세기 일본의 무왕들 중 하나였던 다다오끼 호사카우는 어느 날 당시의 유명한 한 정치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어떤 사람이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능한 사람이란 아카시 만(灣)의 굴과 같은 사람이오.”
그때 정치가는 그 답변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의 참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폐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정치가가 설명했습니다.
“아카시 만은 여러 만 중에서 폭풍우가 가장 심한 곳입니다. 폭풍우 때문에 바닷물의 거센 파도가 서식하는 굴 등을 이리저리 때립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가장 맛이 좋은 굴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능한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탄생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참 신앙이 들어나는 때는 바로 고통의 순간이며, 그 고난과 역경을 통해 보다 강한 믿음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주님의 손길이 나를 이끌어 주시리라는 확신 속에서 그 고난을 극복하려 노력하였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순 제 5주간 목요일 독서에 나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성호(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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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부활의 증인, 회개의 증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사실 제자들은 용기도 없고, 믿음도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였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그들 앞에 나타나시자 유령이 나타난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또 그들의 믿음을 위해 심지어 물고기 한 토막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용기도 없고, 믿음도 부족했던 제자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쳤던 그 겁쟁이들은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 사실을 외면한다면, 이제는 겁쟁이가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의 베드로처럼 제자들은 다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 줄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끝나길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증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단지 예수님의 부활 증인이었다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단지 부활의 증인일 뿐만 아니라 회개의 증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귀를 기울이고, 실제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따라 우리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바로 부활의 증인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회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게 된 우리는 이제 그분을 모르는 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분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다른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 군종교구 이재혁 안드레아 아벨리니 신부 : 2016년 4월 10일
  |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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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생명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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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을 시작하는 첫 주일입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도 부르는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족을 위한 특별한 날들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이제 겨울을 지나 파릇파릇 돋은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생명의 시기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탄생은 바로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이를 기리는 달이 바로 5월이며, 이에 교회에서도 5월 첫 주일을 생명 주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생명! 다들 아시다시피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시어 우리가 육과 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께서 무엇이 아쉽다고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요?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완전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더욱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또 다른 사랑을 필요로 하셨음을, 이 외에는 어떠한 이유도 우리가 이해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그 몫이 돌아오게 됩니다.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점점 더 사랑이 깊어지고 그분께로 다가가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어떻습니까! 귀찮다는 이유로, 또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린 자녀를 굶겨 죽이거나 폭행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자녀들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무참히 살해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급격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마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일들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많은 분들은 한국 사회가 성에 대해 많이 개방되었다고들 하십니다. 그 가운데 사랑에 대한 의미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는 듯합니다. 남녀의 관계가 단순히 육체적인 사랑으로 전락하고 성에 대한 상품화가 가속화되면서 아이들 또한 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랑에 대한 전체적인 의미를 바라보지 못하고, 이면적인 부분이 강조됨에 따라 드라마와 같이 판타스틱적인 요소들만이 쉽게 자극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희생, 인내 이에 따른 가치들이 점점 더 무너지고 있습니다.

강하고 강하던 어머니의 모성애와 높고 높던 아버지의 부성애가 점차 과거의 이야기로 들려지게 됩니다. 이 문제들은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히 교회 안에서도 크나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는지, 그 안에 고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순히 매번 듣던 이야기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한번 모습을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안락함과 쾌락만을 좇고 있진 않은지, 이 생명 주일을 맞이하여 다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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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성빈 라파엘 신부 : 2019년 5월 5일
  |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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