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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님을 따르려면...
조회수 | 2,602
작성일 | 07.06.29
오늘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교황 주일입니다. 교황님께서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 터 이어온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백 성을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로부터 이 어온 265번째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영육간의 건강 을 위하여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오래 동안 다툼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 자들을 방해하였고 상처까지 입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로 가신 것은 유다인으로서는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우정과 사랑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이들을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냉대하였습니다. 민족적인 감정과 편협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화가 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인간적인 마음을 꾸짖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증오나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정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제자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즉시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과거에 매여 있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 방학을 하기 전에 9일기도를 바쳤습니다. 마침 늘 학기말시험과 겹치는 때라서 기도가 더 절실했습니다. 마침기도로 불렀던 O Jesu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방학 중에도 세속과 마귀와 육신의 간교한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봄 없이 성실하게 불러주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밭을 가는 사람이 자꾸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고서는 밭이랑을 곧게 갈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드리고, 우리의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며, 오늘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성실히 따라야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각자의 사명인 쟁기를 잡고 똑바로, 올바로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

대구대교구 한명석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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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마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밖에 없고, 시간은 우리를 내일로 향하게 합니다.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회상할 수 있으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걷고 살아가야 하는 방향과 이유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선 우리에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이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죽음과 희생제물이 되시기로 결정하신 것을 의미하기에 아주 엄숙하고도 고통스러운 특별한 순간을 뜻합니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어조로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하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을 따름에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는 환상을 버릴 것과, 미래를 향한 결단, 세상의 소중한 것들마저 버릴 각오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시며 하느님 나라 선포의 중대성과 시급함, 그리고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사명과 따름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계십니다.

성서에 보듯이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12,1) 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뒤를 돌아봄 없이 길을 떠난 아브라함, 오늘 1독서에서 엘리야의 부름에 자신이 간직하던 소중한 것도 버리고 따라나선 엘리사,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 라고 하시며 한 생을 바치신 성모님,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매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를 부르셨고,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을 원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매일 새로운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분명히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주일 미사를 지키는데도 하루에 열두 번 더 머뭇거리는 것이 우리들인데 우리가 복음에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선포가 그 무엇보다 앞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며, 그렇기에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의 확고한 자세와 세상의 모든 사물과 가장 소중한 것들마저도 끊어 버릴 수 있는 분명하고도 자유로운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갖기란 쉽지만 신앙인이 되는 것은 어려운 법입니다. 신앙인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늘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결단 속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우리는 뒤를 돌아 봄 없이 인류 구원을 위한 주님을 따르는 오늘의 사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 시성복 바오로 신부
  |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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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님 마음, 교황님 마음, 목자의 마음

가장만큼 한 가정에 대한 책임이 큰 이도 없고, 주임신부만큼 그 본당을 걱정하는 이도 없듯이, 교황님께서 지고 계신 짐을 그 누가 알까요? 그래서 세상과 교회를 두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교황님은 구하고 계십니다. 최근 세 분 교황님들의 모습에서 이를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순례하는 교황님이라는 별칭대로 세상 곳곳의 지역교회를 방문하며 그 땅에 축복하고 기도해주셨습니다. 또한 용서의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교회의 근본정신과 정통성을 인식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셨고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새 교황님은 복음의 근본성이라는 뿌리에로, 검소한 삶에로, 인류에 대한 크나큰 관심, 또한 모든 종교들에 대한 크나큰 관심에로 돌아가자고 하시는 원의를 교황명 ‘프란치스코’에 담아놓으신 듯 연일 새로움과 신선함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스승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없애버리며 벌을 내리려는 두 제자의 단죄에 그러지 말라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마음, 그러시며 비켜 가시는 그 모습에 기다리는 자비, 인내와 사랑이 전해오는 예수님의 마 음, 당신을 따르고자 큰 용기를 내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뒤돌아봄 없이 따르라는 단호함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마음(루카9,51-62)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콘클라베 직전 추기경단 회의 중에 했던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교황님)의 담화를 요약한 편지의 일부는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마음, 교황님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복음화는 사도적인 열정을 내포합니다. 복음화는 교회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뛰쳐나오는 용기의 의미 또한 교회 안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더 변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의미로도 그러합니다. : 죄의 신비가 있는 변방, 고통과 불의의 변방, 무지와 종교적 무관심의 변방, 사고의 변방, 모든 형태의 불행이 존재하는 변방. … 차기 교황님은 이러한 분이길 희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묵상과 성체조배를 통해 교회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실존적인 변방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복음화의 부드럽고도 흥겨운 기쁨’을 살아가는 풍성한 어머니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길 바랍니다.”(2013년 3월 28일 Osservatore Romano에서)

교회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면서도 ‘시대’의 상황에 따라 늘 새롭게 변화해 온 가톨릭교회는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교회’입니다. 그 가운데 교황님들의 언행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 마음, 목자의 마음을 잘 드러내줍니다.

<대구대교구 구자균 다미아노 신부>
  |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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