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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리스도의 평화
조회수 | 2,066
작성일 | 07.07.06
오늘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우리 신자 가정에 깃들어 길이길이 머물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진실한 평화는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며 값진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류를 심판하고 책벌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용서와 자비와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찾고 신봉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항상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멀리하며 양심의 생활을 하지 않는 자들은 결코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며 언제나 불안과 초조와 혼미 속에서 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주여,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내셨으니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평안할 수 없사옵나이다”(「고백록」 1장)하고 독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성 바오로가 사도가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라고 말씀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진정 우리의 평화이시며 평화를 주시려 오셨고 또한 평화를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 두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사 중 영성체 전 기도문 중에서 “주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서로 평화의 축복을 나누십시오” “진심으로 축복합니다”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화목과 평화는 신앙생활의 특징이며 신자들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주여 우리 죄를 보지 마시고 오직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성교회로 하여금 화목하여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72인의 제자들을 사방에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 말하자면 희소식을 전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라고까지 하십니다.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하시며 평화는 누구에게나 쉽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십니다.

참다운 평화는 악이 없는 곳에, 죄의 용서를 받은 곳에 깃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류가 화해하고 가까워지고 친밀할 적에 진실한 평화는 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서로 화목하며 원만한 가정생활을 할 적에 평화의 천사는 찾아오는 것이고 기도하는 가정, 나을 동정하며 도울 줄 아는 가정, 양심을 따라 사는 가정에 진정한 평화는 머물게 마련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 역시 오늘 제2독서에서 당시의 신자들에게 참다운 평화를 빌어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대로 살며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이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성 바오로 사도의 여러 편지의 모두(冒頭)를 유심히 보십시오. 어느 편지에든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를 빌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와 은총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소망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은 오늘도 평화의 기쁜 소식을 세계 방방곡곡에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평화와 은총의 선물을 받은 이는 모름지기 이것을 또한 이웃 사람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믿음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해 줌으로써, 죄악을 피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내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듯이 우리 이웃에게 대해서 관심을 갖고 도와줌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평화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이 세상의 궁핍을 모르고 노래부르며 즐거워하는 그런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평화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싹트는 확신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거절과 능욕과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는 가치가 있는 그런 평화입니다.

서울대교구 김정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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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이르는 길

오늘 복음을 들으면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를 열두 명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복음에는 72명의 제자들을 파견하는 내용이 나오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12명이 아니라 많을 때는 72명까지 되었다는 말일까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음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72명의 제자 파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자의 숫자는 대부분 열둘을 언급하고 있는데 루카 복음만이 72제자의 파견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파견 시의 주의사항이 열두 제자나 72제자 모두에게 같다는 내용으로 봐서 일부학자들은 루카가 임의로 재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루카의 근본 의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을 열 두 명의 제자에게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는 70 혹은 72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지요.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이 세상에 퍼져 새 민족을 이룰 때 70인종으로 나열되어 있고(창세10장), 모세를 부를 때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원로 70명을 대동하라고 말씀하셨으며(탈출24,1), 유다의 최고 의회 산헤드린은 7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70인역 그리스 성경에는 창세기 10장의 새 민족을 72인종으로 서술하였고, 원로들 역시 72인으로, 또 세계 안에는 72명의 왕자와 72개의 언어가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에녹3서17,8;18,2-3;30,2) 따라서 72제자라는 표현에서 72의 의미는 숫자적인 의미보다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먼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충분한 준비는커녕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는 부분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10,4)

잘 준비해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으면 그것이 더 좋을 것같이 생각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시지요. 제자들이 오로지 의지해야 할 것은 돈도 지팡이도 식량자루도 아닌 하느님이심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예수님께서는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루카10,7)라는 말씀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뒷바라지해야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 번째,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집에 주님의 평화를 빌어주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10,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로지 복음 선포의 의무만을 주셨을 뿐 결실의 의무까지 지우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루카10,6)

중요한 것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제자들이 빌어주는 평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역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며 살아가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평화에만 집착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과 재물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끝없는 갈증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우리를 참 기쁨과 평화에로 인도하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이시지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7)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남자가 도박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일종의 도박환자였지요. 손에서 화투짝을 놓으면 늘 불안했고 곧 돈을 딸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딸 것 같은 생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이었지요. 차차 건강도, 가정도, 그리고 사업마저도 병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화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뜻대로 안 되었지요. 부인은 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눈물로 호소를 해보기도 하고 이혼을 하자고 협박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도박 자체가 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밤낮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구제불능의 친구가 어느 성령 세미나에 참석해서 그 몹쓸 병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지도 않는 사람이 은혜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묘한 일이었지요. 손에서 화투짝을 떼면 생 자체에 아무 의미를 못 느끼고, 손에 화투가 있어야 살 맛을 느꼈던 사람이 이제 그 헛된 평화에서 벗어나 참된 평화를 찾았던 것이지요. 그는 차츰 건강을 찾고 일할 의욕도 찾았으며, 가정에는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이웃과도 화목하게 되었지요. 믿음이 평화를 가져왔고 평화는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72제자에게 복음 선포의 자세를 가르치시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참 평화를 빌어줄 것을 사명으로 주십니다.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이 복음을 우리는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평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도 복음 선포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말씀과 함께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되겠습니다.

▶ 이기양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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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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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가장 마지막 장의 한 부분입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막 돌아온 유다 민족에게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배를 마치고 고국 땅에로의 귀환은 유다 민족에게 하느님의 승리로 이해되었지만, 막상 돌아와서 마주한 고국 땅의 실상은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져 있었고, 성도 예루살렘은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희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이사 66,12)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순히 이 세상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야말로 이 힘든 세상을 돌파해 가는 참된 열쇠임을 믿고, 그것을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라고 말합니다.

복음 말씀은 일흔두 제자를 선교 파견하시는 대목을 들려줍니다. ‘일흔둘’이라는 숫자는 창세기 ‘노아의 홍수’ 이후 그의 세 아들을 통해 불어난 노아의 자손들의 숫자인데, 이들을 통해 온 세상에 민족들이 갈라져 나갔다고 하여, ‘일흔두 제자의 파견’은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이입니다. 교회가 오늘 복음을 들려주는 까닭은, 우리도 복음 선포의 사도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지친 내 마음에 평화를 구하기 위해 성당에 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힘든 세상을 하느님의 평화로 가꾸기 위해 파견된 사도들입니다.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66,13) 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이사 66,14) 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용기를 길어내야 합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갈라 6,15)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의 외형적인 기준으로 참된 행복을 재단하지 않으며,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갈라 6,15)인 하느님 안에서 거듭 태어나 이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꾼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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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정순택 주교 : 2019년 7월 7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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