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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하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
조회수 | 25
작성일 | 17.08.13
[인천] 하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 겸손과 단순 그리고 신뢰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는 이를 가리켜 ‘영적 어린이의 길’이라고 했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영성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삶을 산 분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성녀는 오늘 복음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하느님 앞에 가장 작은 자가 되기 위하여 어린이의 길을 택했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했으며 모든 일을 하느님께 의탁했다. 성녀가 깨달은 진리는, 성화의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는 것이지 인간 편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 인간은 어린이와 같이 작은 채로 남아 있으면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걱정하지 않듯이 모든 것을 선하신 주님께 내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예수님의 팔’이라는 상징적 용어를 쓰며 성화시키시는 하느님께 대해 자신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를 하늘까지 들어올려 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성녀는 자신을 낮추는 이러한 겸손을 바탕으로 어린이가 부모 앞에서 단순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듯이 하느님 앞에서 그러하고자 했다. 그래서 성녀는 겸손이나 희생 혹은 애덕과 같은 덕행의 실천에 있어서도 어떤 계획이나 방법을 따로 세우거나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행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아주 작은 기회나 사소한 것들 안에서 단순하고도 자연스럽게 실천했다. 또한 성녀의 생활은 모든 것이 하느님께 대한 자녀다운 신뢰로 넘쳐 있었다. 성녀는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겼으며, 설사 고통을 통해야 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했다. 더군다나 성녀는 자기 힘이 닿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충분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함·무능력함·작음·허물이나 미천함을 느낄수록 무한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자신의 전존재를 맡기고 더욱더 신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 인천교구 김흥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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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람이 지혜로운 이를 찾아와 묻습니다.

“당신은 훌륭한데 저는 왜 그렇지 못할까요?”

그러자 지혜로운 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데리고 자기 집 앞의 뜰로 나갔습니다. 뜰에는 크고 울창한 나무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 앞에 한동안 나무만 쳐다보고 있던 지혜로운 이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이 나무들을 잘 보시오. 이 나무는 크고 저 나무는 작지요. 그러나 두 나무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더라 ‘봐라, 난 커서 훌륭해.’라든가 작은 나무가 큰 나무더러 ‘난 키가 작어서 열등감을 느껴.’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지요.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아름답습니다. 큰 나무는 구름에 가깝게 있어 좋고, 작은 나무는 땅에 가깝게 있어 좋은 것이지요.”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오직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생명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지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우리 인간들이 축소시킬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특히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그 가치를 축소시킬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이들이 예수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지요. 왜냐하면 당시에 어린이들은 미천한 존재이며 율법을 준수할 능력이 없는 이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약하고 성숙되지 않은 아이들을 돌볼 만큼 예수님께서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막습니다.

제자들이 외적인 힘으로 예수님께 다가오는 어린이들을 막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 다가오는 사람들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신앙인으로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성당에 나오는데 꺼리는 마음을 갖게끔 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막는 또 하나의 잘못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떤 이도 배척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공부도 못하고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당신을 바라보면서 당신 앞에 나아오려는 사람을 기쁘게 받아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모든 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주님께서 약속하신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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