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홀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22.4%
[제주/부산]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다
조회수 | 57
작성일 | 17.08.13
[제주]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다

미사가 끝나면 제의방은 어린이들로 북적거립니다. 제가 사탕을 나누어주기 때문이지요. 그 꼬마 아이들이 “신부님! 사랑해요” 하면서 제 볼에 뽀뽀를 할 때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어색해서 제의방에 들어오기를 머뭇거리는 친구의 손을 이끌며 “제 친구예요” 하고 소개하는 아이도 있고, “동생 것도 하나 주세요” 하며 집에 있는 동생 몫까지 받아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성체를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제게도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제가 퇴장하자마자 달려와 안기는 그 아이들을 보면 하늘 나라가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차지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미사 중에 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좋아라 하면서 방긋 웃는 아이들, 엄마 손 잡고 봉헌하러 왔다가 제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아이들, 제가 다른 아이들만 안아주고 자기에게는 신경 써주지 않는다며 기다리다 울어버리는 아이들…. 저 역시도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사탕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다 주고 싶은데, 주님 보시기에는 오죽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제주교구 임문철 신부
450 22.4%
어린 자녀들을 자주 축복 해 주십니까? 저는 미사때 마다 부모와 함께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영성체 대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해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을 떠 올리면서 정성껏 복을 빌어줍니다. 주일 미사 때에는 아예 유아실로 이동하여 어린이 중심으로 축복해주고 그 부모들에게 영성체해 줍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축복받는 어린이들의 자세가 변해갑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고래고래 고함치고 놀던 철없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시간만 되면 거짓말처럼 한 줄로 서서 축복을 기다립니다. 단 몇 초를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축복을 통해 그 꼬맹이들도 무엇인가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축복받는 어린이들이 진지해지니까 복을 빌어주는 저 역시 온 정성으로 아이의 건강과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늘 귀챦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축복을 청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서서 어른들을 나무랍니다. 제자들이야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예수님 본인은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나하나 어린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물론 이 아이들도 예외없이 세상이 주는 시련에 언젠가는 대면하겠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더 굳세고 지혜롭게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갈것이라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에서 보면, 하늘나라에 가기 쉬운 사람과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가기가 좀 쉬운것 같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기보다 더 어렵다고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보다는 덜 배운 사람이 가기가 좀 쉬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결국 어른보다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하늘나라에 가기가 쉽다는 얘기입니다.

저희 성당에 참 조용한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가 떠드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도무지 볼 수가 없습니다. 미사 시간에도 단 한번 장난치는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가 떠들지 않으니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혹시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쓸데없는 마음까지 듭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커갈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야합니다. 때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바보로 만들곤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와 어린이들을 매우 친숙한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어릴때는 말잘듣고 성당에도 잘다녔는데, 중학교 가더니 성당에도 나오지 않고 가자고 해도 말도 듣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말꺼내기도 무섭습니다.' 하며 안타까와하는 부모님들의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하느님도 우리들을 보시며 그런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지난 5월 동창신부 8명이 이스라엘과 터어키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다른 일행없이 우리 신부 8명만 여행했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참 좋았겠네요'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저희들도 1년에 한번씩 원장모임을 하는데 참 힘들어요. 가장 힘든 것은 모여있는 사람 모두가 원장이라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은 어떠셨는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참 좋았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 저의 대답은 늘 '예'라는 한마디로 족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원장님의 물음에는 그냥 '예"라고 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예'라고만 대답하면 '나는 바보입니다'라는 말과 똑 같기 때문입니다.

신부들끼리만 여행을 하다보니 크게 신경쓸 일도 없고 또 간섭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서로다른 의견들이 생겨납니다.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에 대개는 신부 중심으로 모든 일들이 정리가 됩니다. 그런데 8명 모두가 신부이다 보니 어느 신부 중심으로 정리가 되어야할지 나도 힘들고 상대도 힘듭니다. 8명중 저 혼자만 신부였으면, 답답할 것 하나도 없이 신자들이 알아서 저의 뜻에 맞추어 주었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가 신부입니다. 원장님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뜻에 맞추는 나라입니다. 계속해서 내 뜻에 모든 것을 맞추라고 하면 그 나라는 점점 더 가까이가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가 어린이와 가까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린이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가르치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르치는 어른보다 가르침 받는 어린이가 그 나라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하십니다.

▮ 부산교구 차성현 암브로시오 신부
  | 08.13
450 22.4%
[부산] 깨끗한 빈손의 진리

갈릴래아에서 공동체설교(마태 18장)를 마치신 예수께서는 요르단강 건너편 유다지방으로 옮겨가셨다. 이제 예수님의 발걸음은 예루살렘으로, 당신을 잡아 심문하고 사형선고를 내릴 백성의 원로와 대사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까지의 활동기간을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라고 했다.

마태오복음은 대체로 마르코복음 10장을 따르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19,1-20,34)를 엮었다. 여기에는 마태오의 독자적인 사료로 보이는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생활’(19,10-12)에 대한 가르침과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20,1-16)가 첨가되어 있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논쟁을 벌인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신 내용이다. 마태오는 마르코복음(10,13-16)을 그대로 따르면서 두 부분을 삭제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와서 예수께 축복을 요청하자 제자들이 먼저 이들을 나무랐다고 한다.(13절)

마르코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14절) 하고 말씀하시기 전에 화를 내셨다고 했는데, 마태오는 ‘화를 냈다’는 부분을 삭제하였다. 마태오는 화를 낸다는 것이 예수님의 성정(性情)에 어울리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마르코복음에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5절) 라는 말씀도 마태오는 뺐다. 그 이유는 마태오가 이 말씀을 이미 공동체설교의 첫 번째 규범(18,3)에 삽입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가진 것 없는 이들과 보잘 것없는 이들을 찾아 나서시고 그들을 가까이하신다. 이런 부류에 물론 어린아이들도 속한다. 어린아이들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모자라고 불완전하며, 부모와 선생 등 그 사회의 성인(成人)들에게 전적으로 의탁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미성인(未成人)들이고 미성년자(未成年者)들이다.

어린아이들의 표본은 배움과 수용의 자세에 있다. 예수께서 축복을 청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오려던 어른들을 제자들이 나무란 것에 화를 내셨다면(마르 10,14), 제자들로 하여금 어린아이들의 표본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기대면 기대수록 다른 것을 믿거나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느님 나라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믿음과 수용 외에 어떤 것도 이를 받을 수 없다. 바로 어린아이들의 가진 것 없는 빈손과 설레며 기대하는 마음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태도이다. 이 태도의 상징인 이마(머리) 위에 예수께서는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15절)

가톨릭교회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어린아이들의 머리 위에 내리신 축복에 힘입어 유아세례와 첫영성체 신학을 정립하였다. 아이들이 비록 자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고 자신의 지력과 능력으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하여 그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의 머리 위에 예수님의 축복이 깃들여 있고, 그래서 그들이 오히려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한 때는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어른들도 늘 어린아이처럼 배움과 수용의 태도를 가진다면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14절)이 된다. 아이들의 미숙한 신앙 뒤에 어른들의 강한 신앙이 후견(後見)으로 자리하고 있음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의 깨끗한 빈손과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을 상업수단으로 삼거나 거기에 아무 것이나 가져다 주려는 어른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 08.13
450 22.4%
어느 여성학자가 말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청중은 수녀님들이었다”고. 이곳저곳 강연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수녀님들이 가장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잘 웃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신부님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내 강연이 정말 재미있어서 그런지, 예의로 그런지…” 하면서 말입니다. 저도 체험한 바 있습니다. 지난 봄 우연히 몇 분 수녀님들과 함께 피정을 했는데 정말 즐거웠습니다. 벚꽃이 바람에 눈처럼 휘날리고, 신록은 눈부시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묵상을 방해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에서 피정을 했는데 수녀님들은 그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해주더군요. 무릎을 구부리고 보아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풀꽃들을 보며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수녀님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는 듯했습니다.

수녀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지금껏 제가 경험한 바로는 수녀님들이 가장 어린이와 같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회에서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성서에서 어린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상징한다지요. 세속의 눈으로 보면 수녀님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지요. 그러나 저는 자기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수녀님들이 어린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였습니다.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이 저희 집을 빚보증으로 날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한동안 어린이 미사에만 참석했습니다. 시끄러운 어린이 미사가 어른들의 조용한 교중미사보다 분심이 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느낄 때였지요. 며칠 전 우연히 들르게 된 정릉 성모의 집 공부방에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오늘 복음 구절이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수도회 원장 수녀직을 마친 후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과 한 동네에 살면서 그들을 돌보는 수녀님은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새로 느끼고 배운다고요. 주님, 저도 어린이처럼 주님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 임영숙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남동 성당)
  | 08.13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738   [수도회] 배운 대로 살지 못해 죄송해요  [1] 403
1737   [대구]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399
1736   [서울/인천] 참 자유인의 길  [3] 430
1735   (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1] 2411
1734   [수도회] 까마귀 검다 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4] 671
1733   [대구/부산/청주/수원] 식사 전에 손을 씻는다는 것.  [5] 592
1732   [서울/인천] 금메달 사과  [5] 578
1731   (녹)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2] 2255
1730   [청주/수원] 마음을 바꾸어라  [2] 331
1729   [인천/서울] 기적이란?  [2] 278
1728   [수도회]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7] 298
1727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2] 2151
1726   [서울/인천] 귀 기우려 듣는다는 것  [3] 529
1725   [수도회] 오히려 행복하다.  [1] 377
1724   [대구/부산] 행복한 사람입니까?  [2] 481
1723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2] 1952
1722   [수도회]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교회  [1] 470
1721   [대구/부산/청주]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2] 487
1720   [서울/인천] 진실을 말한다는 것  [5] 488
1719   (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2] 2115
1 [2][3][4][5][6][7][8][9][10]..[87]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7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