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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자존감, 정체성, 분별력
조회수 | 93
작성일 | 17.08.29
[수도회] 자존감, 정체성, 분별력

오늘 독서와 복음 묵상 중 문득 떠오른 주제는 ‘자존감과 분별력’입니다. 자존감과 좋은 분별력은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핵심도 자존감 함양에 있습니다. 자존감이 약하면 제대로 분별도 못합니다. 자존감이 좋아야 진정 겸손할 수 있고 제대로 분별할 수 있으며, 비겁하거나 비굴하게, 야비하게 처신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난이나 능력의 유무에 상관없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부모의 삶이 반듯하고 사랑이 많으면 자존감 높은 자녀로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공부는 못해도 자존감이 높으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얼마전 읽은 불편하나 깊이 성찰케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한 미 국무성 관리의 발언이 떠오른다. "북조선은 밉지만 '우리의 존경할만한 적' (our respectful foe)이고, 남한은 곱지만 '우리가 무시하는 동맹' (our despising ally)이다" 이제는 별로 이상히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민족 자존감이 마비된 상태이다.-

국가간은 물론 개인이나 공동체에도 대체로 확인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자존감이 약해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소홀히 함부로 대하면 이웃도 우리를 무시하고 소홀히 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의 보편 진실입니다.

많이 사랑받고 사랑받을 때 절로 높아지는 자존감입니다. 역시 자존감 함양에는 신뢰와 격려, 인정과 존중의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자존감임을 깨닫습니다. 또 자존감은 정체성과 함께 갑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정체성 또렷한 행복한 참 나를 살 수 있고 이어 좋은 주체적 판단의 좋은 분별의 지혜입니다. 사랑-자존감-정체성-분별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어제의 경향신문 사설의 일부를 나눕니다. ‘인성함양도 나라사랑도 의무교육하라는 정부’라는 제하의 사설입니다.

-정부가 이른바 인성교육에 이어 나라사랑교육을 강화하는 이른바 ‘애국교육법’제정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성과 마찬가지로 나라사랑하는 마음도 법으로 진흥되는 게 아니다. 발상자체가 시대 착오적이다. 애국심은 주입과 강요에 의한 획일적 교육이 아니라 민주적 시민교육 과정에서 스스로 배양되도록 하는 것이다.-

날로 피폐해지는 청소년의 인성의 현실을, 날로 희박해지는 청소년의 애국심의 현실을 깨달은 정부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법제정과 교육의 강화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보고 듣고 배우는 삶의 현장이 우선입니다. 정말 많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자존감 높고 행복의 질이 높은 공정과 상식이 지배하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와 학교와 가정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절로 인성은 좋아질 것이고 나라사랑도 커질 것입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자존감으로 하면 예수님과 바오로는 최정상급입니다. 오늘 독서의 바오로 일행과 복음의 주님으로부터 불행을 선고받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충만한 자존감에 분별의 지혜를 겸비한 바오로 일행의 당당함과 의연함과 자유로움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추호의 두려움도 불안도 없습니다. 이들을 대표한 바오로의 고백이 감동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오늘날 사제들의 사목선언서로 택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감동적인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샘솟는 자존감이요 분별의 지혜임을 봅니다. 이와는 대조적인 것이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자존감과 분별력은 바닥을 칩니다.

이들에 결정적으로 결피된 것이 기득권에 안주하다 보니 현장삶의 치열성이 송두리째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꼭 적용하고 싶은 말이 분별력의 결핍을 뜻하는 주객전도主客顚倒, 본말전도本末顚倒요, 자존감의 결핍을 뜻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삶입니다. 하여 주님은 이들을 위선자, 어리석은자라 하며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작은 벌레들을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것이다.”

그대로 분별력 결핍의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어 주님은 이들의 속과 겉이, 안과 밖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위선적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맘,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차 있다.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 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표리부동의 보편적 인간현실입니다. 속이 깨끗하면 저절로 겉도 깨끗해 집니다. 진정 하느님 중심의 자존감 높은 진실한 삶만이 표리부동의 삶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가 자존감과 분별력의 원천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고, 분별력의 지혜를 선사하시며, 표리부동의 위선적 삶을 치유해 주시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참조). 아멘.

▥ 분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 201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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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종교 지도자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우리 종교의 주인이 누군지를 묻고 계십니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인도자로 우리를 제대로 이끄실 수 있으셨습니다. 모든 종교의 모순을 벗겨보면 거기에는 신앙조차 사유화하려는 우리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소유욕이 강할수록 위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하는 겸손함입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정화의 방향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함을 지향했음을 기억합니다.

신앙을 소유하지 않을 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 수 있으며 현존해 계시는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불행과 행복위선과 진실을 가늠하는 기준은소유하지 않음에 있음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201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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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저로 하여금 즉시 프란치스코의 얘기를 연상케 합니다. 출세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프란치스코에게 환시의 주님께서는 종과 주인 중에 누구를 섬기는 것이 더 유익한지 물으십니다.

그런데 종과 주인 중에 누구를 섬기는 것이 더 유익한가와 같이 너무도 자명한 질문에 대답을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이렇게 명백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선택을 요구받을 때 선택을 안 하거나 선택을 미룰 사람도 하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프란치스코의 차이는 우리도 프란치스코처럼 주인과 종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질문을 받았는지 여부와 질문에서 더 나아가 선택을 하였는지 여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습니까? 진정 일생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우리에겐 없습니까? 수도자 중에 이런 질문을 받지 않고 수도생활을 선택한 분도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도 이런 질문을 다 받았을 것입니다. 스치는 생각을 통해서,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을 통해서, 오늘 독서와 복음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주님께서 내게 하신 질문이라고 생각지 않았는지 모르고, 어쩌면 주님의 질문임을 알면서도 듣지 못한 척 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두루뭉술 살아가기도 하고 양다리 걸치며 살아가기도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다른 복음에서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정면으로 하느님의 뜻 따르기를 거부하였다면 나중에 회개하고 제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설 텐데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진지하게 생각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였기에 하느님의 뜻을 거역치 않은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거역하곤 하지요.

또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느님이면서도우리의 주님, 또는 나의 주님이 되지 못하시기도 하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하시는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제가 자주 얘기하는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대놓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존재하신다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실 뿐, 그 하느님을 내 안으로 깊이 모셔 들이지 않기에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시지도 않고 나의 주인님도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계셔도 나의 삶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고 나의 행동이나 실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지 못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인삼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인삼을 먹지 않아 내게 아무런 효능이 없습니다.

왜 먹지 않습니까? 지금 나는 충분히 건강하기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필요 없을 뿐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먹으라고 하니 맛보려고도 않고, 귀찮고 성가시다고만 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생명의 빵과 생명의 말씀을 맛보고 깨닫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 작은형제회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201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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