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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부산/전주] 하느님은 참 공평하신 분
조회수 | 171
작성일 | 17.09.01
[청주] 하느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각자의 능력―신앙·지성·건강―에 따라서 재능(달란트)을 주십니다.

저는 동기 신부들의 재능을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왜 나는 박모 신부처럼 운동신경이 좋지 않을까? 왜 나는 김모 신부처럼 노래와 악기 다루는 실력이 없을까 하며 제 자신의 부족한 재능에 대하여 하느님께 원망하였습니다. 동기 신부들의 재능을 부러워하다 보니 제 모습만 초라해 보였습니다. 어느날 초라한 제 모습 속에 어떤 재능이 있나 살펴보니 저만의 독특한 재능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키워 나갈 생각은 않고 남이 가진 재능만 부러워하며 사는 일이 많습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십니다. 한 재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신앙과 지성과 건강이 겸비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꼴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능력에 맞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 청주교구 유재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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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미리 준비가 있으면 환난을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시간성에 따라 인간의 세계관을 쉽게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현재 일만 생각하고 현실에 집착된 현실주의자가 있습니다. 둘째는 미래만을 생각하는 꿈에 사는 비 현실주의자, 다른 말로는 이상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미래를 향한 꿈만 생각한 나머지 허황한 생각에 매이며 결국 현실을 등한히 여기든 가 무시하는 그런 유의 사람입니다. 셋째는 과거에만 집착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지향하는 이상을 가졌고 그 미래가 오늘의 현실을 지배하는 미래 지향적 현실주의자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비유는 루가 복음에서도(19, 11-27) 등장합니다. 루가의 대목과는 달리 마태오의 경우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가 맡겨집니다(25, 15). 첫 번째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즉시 잘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종은 달란트를 땅에 숨김으로써 규정을 올바르게 준수했습니다. 이로써 랍비의 법에 의하면 세 번째 종은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번째 종은 가장 안전한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려운 나머지'(25절) 세 번째 종은 달란트를 땅 속에 숨겼습니다. 바로 이 두려움이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 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어리석은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스프링 팍 영양(羚羊)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산에서 수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산양의 일종입니다. 이 양은 이유 없이 집단으로 달리기를 시작하여 나중에는 모두 다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동물학자들은 이 양들이 집단으로 자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집단으로 자살을 하는지 그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가다가 풀밭을 만나 풀을 뜯어먹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짓밟으며 가기 때문에 뒤에 있는 양들은 도무지 풀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뒤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먹기 위해 자꾸 앞으로 나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양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자꾸 뒤에서 민답니다. 앞에 있는 양은 뒤에 있는 양이 미니까 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뛰게 됩니다. 앞에 있는 양이 뛸 때 뒤에 있는 양은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 될 텐데 양의 본능에는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양은 풀도 못 먹고 앞에 가는 양을 따라 같이 뜁니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에 결국 모든 양이 초원을 달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들이 자기들이 뛰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앞에서 뛰니까 뒤에서 뛰고 뒤에서 뛰니까 앞에서 뛸 뿐입니다. 생각 없이 달리기 때문에 어디로 뛰는지도 모릅니다. 멈출 생각도 안 합니다. 그냥 열심히 달립니다. 벼랑에 다다라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는 벼랑인지 모르고 계속 달리기 때문에 앞의 양들은 떠밀려서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뒤에 오던 양도 속도를 줄이지 못해 수천 마리가 다 몰살한다는 것입니다. 스프링 팍 영양들의 무작정 달리기와 죽음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단에서 이탈되는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곧, 막무가내 집단에 소속되어 버리고 안주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삽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이 영양과 같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숨차게 뛰는지 모릅니다. 아마 이 영양과 같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한 두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짐승적인 본능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지 진정한 삶의 목표가 있어서 피땀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모르고 열심히 살면 그만큼 빨리 망합니다. 확실하게 망합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뛰면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생의 목표가 뚜렷할 때에만 가치를 발휘합니다. 목표 없이 뛰는 것은 죽음을 향해 뛰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주신 하느님을 위해서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유혹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에 안주하는 게으른 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충성스런 종이 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부산교구 김기태 신부
  |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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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3년은 청년실업자로 지내는 것이 이제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갈수록 내 탓은 없고 남의 탓만 불길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잠시 흥가 3성과 폐가 3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세 가지의 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그 나라가 번성하고 그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길쌈하는 소리와 책 읽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보면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릇 깨지는 소리도 여전합니다. 한쪽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아 신음소리를 내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방학만 되면 해외여행을 가느라 공항이 만원을 이루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할 줄 알지만, 어서 빨리 청년실업이 줄고,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갖고, 자영업자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일터가 지뢰를 묻어놓은 것 같다는 어느 비정규직의 고백에서 보여지듯 우리 사회가 일터라도 안정적이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2백만 원을 받던 정규직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1백만 원을 받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면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 전주교구 최종수 신부
  |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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