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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내 안에 예수님이 탄생해야 진정한 성탄
조회수 | 41
작성일 | 20.12.23
성탄이 아무리 수백·수천 번 되풀이된다 할지라도,
내 영혼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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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에 담긴 의미, 특히 성탄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하고고 또 묵상해야겠습니다.

신비가 <마이스터 엑카르트>가 우리에게 건네는
짧막한 예화 하나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하느님 육화강생의 신비,
예수님 성탄의 신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금슬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큰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고 크게 슬퍼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해도 왜 계속 그렇게 슬퍼하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여보, 내가 슬퍼하는 것은 눈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당신이 나를 덜 사랑할 것 같기 때문이랍니다.”
그러자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아무렇지도 않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잠시 외출을 나간 남편이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내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버리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나도 당신과 같이 되었소. 나도 이제 외눈이라오.”>

우리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애틋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예화입니다.

성탄이 아무리 수백·수천 번 반복된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나란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성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탄에 아무리 되풀이 된다 할지라도 내 영혼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거룩하고도 장엄한 드라마인 아기 예수님의 성탄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조연들로 엘리사벳, 그리고 즈카르야가 있습니다.

아들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한
천사의 메시지에 즈카르야는 살짝 의혹을 품었습니다.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지요. 즈카르야는 10달 동안이나 말 한 마디 못하는 언어장애자로 살았습니다.

즈카르야는 심연의 침묵 속에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고목(枯木)과도 같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였지만
크신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새싹을 틔워내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당하고 부족한 자신들을 당신의 인류 구원사업의 중요한 도구로 선택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즈카르야의 입을 열어주시자 마자
그의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즈카르야는 운 좋게도 ‘침묵의 10개월’을 통해 그토록 고대했던 ‘구원’을 온 몸으로 맛보았습니다.

강렬하고도 짜릿한 구원체험이
즈카르야의 내면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은혜롭게도 이미 낡은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암흑에서 빛으로 건너오는 파스카 체험을 맛 본 것입니다.

그 행복한 체험으로 인해
즈카르야 삶의 태도는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어두웠던 그의 낯빛은 기쁨과 설렘의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절망의 세월은 희망의 나날로 변화되었습니다. 우울하고 어두웠던 그의 일상은 화사한 봄날로 탈바꿈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체험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즈카르야가 맛본 구원 체험입니다. 파스카 체험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 전체를 위해 선물로 주시는 보편적인 구원을 개인화하는 작업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오늘 이 자리에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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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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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름은 단지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지게 하는 것만을 넘어서,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이나 사명을 결정짓는다고 믿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이름을 짓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로 다루어졌고, 오늘날에도 “작명소”라는 곳이 있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는
구세주의 탄생에 앞서, 요한의 탄생을 전해줍니다. 그는 사제인 아버지 즈카르야와 아론 가문의 어머니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가문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요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서 ‘새 이름’을 받음은
새로운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그의 이름으로, 그의 신원과 사명이 밝혀집니다. 곧 주님 앞에서 길을 닦게 되는 엘리야로서의 예언자의 신원과 사명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이름과 함께 각자의 신원과 소명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요 수도승이라는 신원을 지니고, 그에 따른 직무와 소명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존철학자 하이덱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세상 안에 과업을 짊어진 채 던져진 존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명을 과업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구원과 사랑을 “마음에 새기며”(루카 1,66), 소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훼퍼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는 존재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먼저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여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이 늘 우리를 보살피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웃들과 친척들도 그녀의 해산 소식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습니다.”(루카 1,58).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무언가가 벙어리가 된 즈카르야를 통해 실현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탄생하자 그의 부모와 친지들은 아기가 어떤 이가 될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수행할 사명이 무엇일지 궁금해 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그런데 여드레째 되는 날,
아기는 할례를 받고,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라는 요한이란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 순간 즈카르야의 묶였던 혀가 풀리고,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루카 1,65). 왜냐하면, 예상하지 못한 아기의 이름이 명해지면서 즈카르야의 혀가 풀린 사건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관여와 현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루카 1,66)

그렇습니다.
먼저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입니다.”(루카 1,66).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손길이 오늘도 우리를 보살피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자신을 묻고, 우리의 신원과 소명을 찬미하며 살아갑니다. 아멘.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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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마음의 불신을 무너뜨리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소서.
닫힌 태를 풀고, 제 몸에 당신 소유의 이름을 새기소서.
당신이 주신 이름을 제 삶의 서판 위에 새기게 하소서.
소명을 살게 하시고,
당신이 뜻하신 바가 제게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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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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