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홀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3 42.4%
[수도회] 묵묵히
조회수 | 69
작성일 | 20.12.25
묵묵히

---------------------------------------------------------------------

성탄을 코앞에 둔 오늘 드디어 즈카르야도 입이 열립니다.
열 달 막혔던 말문이 열리는 것인데 그래서일까 찬미가 터져 나옵니다.

이를 보면 찬미가 터져 나오는 건
자기 말문이 막혀야지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말문이 트여 있어 나불나불 얘기하던 입은 자기 얘기를 다 토해냈기에 답답한 것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말문이 트였을 때 기쁨도 없게 마련이지요.

저는 이번 성탄 대축일 강론의 주제를
'대전염병 시대의 성탄'으로 이미 주제를 잡았는데 내일 이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직 모르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과 관련지어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티브이를 봤는데
울릉도에 가면 나리분지라는 곳이 있답니다. 그곳은 하도 눈이 많이 와서 겨울 몇 달은 아무 것도 못할 뿐 아니라 완전히 갇혀 지내야만 되는 곳이고 그래서 그곳을 완전히 떠나거나 한겨울만이라도 떠났다가 다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남아서 그 혹독한 겨울 몇 달을 견뎌내는 분들도 있답니다.

그분들이 얘기하기를
육지 사람들은 좀 쉬었으면 하지만 자기들은 봄이 오면 일을 할 생각으로 설레는 맘으로 봄을 기다린다고, 혹독한 겨울이 없이 어떻게 설레는 봄을 맞이할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아무튼,
이분들은 인고의 겨울을 견뎌낸 분들이고, 그래서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견뎌낼 수 있는 힘은 혹독한 겨울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싫어 봄의 나리분지를 떠난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것을 알 수 있지요.

야성이 강한 고기나 동물은 수족관이나 우리에 갇히면 스트레스 때문에 바로 죽어버린다고 하지요.

그런데 스트레스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트레스란 말 그대로 압박이란 뜻인데 같이 압박을 받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지요. 그러니까 압박과 압박감 사이에는 사람 편차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압박감 또는 스트레스를 더 받겠습니까?
예를 들어 강아지가 목줄에 매였는데 목줄이 싫다는 강아지, 목줄이 싫으니 벗어나야겠다고 발버둥 치는 강아지입니까, 아니면 목줄을 받아들이고 의식치 않는 강아지입니까?

이런 비유가 인간에게 적절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즈카르야의 찬가가 즈카르야 입장에서는 열 달의 인고를 묵묵히 견뎌낸 뒤 터져 나온 것이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다윗왕 때부터 몇백 년을 묵묵히 기다린 찬가가 터져 나온 겁니다.

그렇습니다. '묵묵히'입니다.
'묵묵히'란 '아무 말없이'란 뜻이 아닙니까?즈카르야는 열 달을 아무 말 할 수 없이 묵묵히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불신과 의심의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왜 자기의 말문이 막힌 것인지 하느님의 뜻을 알기에 열 달을 묵묵히 참았습니다.

우리도
이 코로나의 긴 스트레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안다면 묵묵히 견뎌낼 것이고, 그렇게 견뎌낸 뒤에는 즈카르야처럼 구원의 찬가를 토해내게 될것임을 희망하며 이 답답함을 견뎌야겠습니다.

------------------------------------------------

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2020년 12월 24일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481   [수도회] 고난을 통한 완성  [8] 1797
1480   [청주/수원/부산/전주] 악마의 기도  [12] 1937
1479   [인천/서울] 예수님은 사랑의 법을 가르치시다  [5] 1806
1478   (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심)  [6] 1619
1477   [수도회] 가장 깊은 어둠 가까이에  [10] 1527
1476   [부산/대구/청주/수원/원주] 예수님 공생활 따라잡기  [9] 1862
1475   [인천/서울]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6] 1690
1474   (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고 믿어라-제자를 부름)  [5] 1436
1473   [수도회] ‘관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로부터  [8] 950
1472   [수원/청주/원주]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3] 757
1471   [인천/서울]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2] 561
1470   (백) 주님 공현 후 토요일 독서와 복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5] 1880
1469   [수도회] 작은 자로 남으십시오  [5] 1703
1468   [부산/대구/청주/수원] 지금 그리고 여기  [5] 1664
1467   [인천/서울]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3] 2355
1466   (백)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독서와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5] 1421
1465   [수도회] 사랑의 운명  [5] 1514
1464   [부산/광주/전주/청주/수원] 예수께선 고향인 나자렛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  [10] 1867
1463   [인천/의정부/서울]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분이 드는 단어는?  [4] 2484
1462   (백) 주님 공현 후 목요일 독서와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5] 1520
1 [2][3][4][5][6][7][8][9][10]..[75]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