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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광주/청주/마산]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조회수 | 69
작성일 | 21.03.31
[전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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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말하였다.(마르 15,37-39)

이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파견되어 부여받은 임무를 십자가위에서 완수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의 은총과 믿음의 축복을 주시는 마지막 장면으로 늘 대단한 감동과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시편 22,2)라는 시편기도를 숨을 거두실 때까지 큰 소리로 계속 바치셨다. 인간을 대변하여 바치는 기도로 내용을 보면 아버지한테 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고독감과 아울러 아버지께 의탁하는 깊은 신뢰심을 갖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인간의 죽음을 완전히 겪으시겠다는 다짐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인내심을 갖고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끝까지 십자가 위에서 당신임무를 완수하신다. 그래서 당신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구원을 위한 희생제물 봉헌이 되고 인간의 죄를 씻는 십자가 제사가 되며 인간이 십자가의 은총으로 하느님과 만나 하나되는 사랑의 파스카 잔치가 된다.

이 십자가의 신비는 인생이 죽음으로 끝장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준 다리가 되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므로 이제 주님께서 지성소에 숨어 계시지 않고 만백성에게 하느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은총을 주신 것이다. 인간은 “예수님이 과연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이시구나”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아들이(마태 27,54) 이방인이었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고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구원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으신 예수님께서 과연 인간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성주간 동안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백인대장처럼 “이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구나”고 고백하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온전히 바쳐주신 주님께 우리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삶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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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영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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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저를 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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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오늘, 내가 맞아야 할 매를 대신해서 맞습니다.

우리는 부부싸움 하면서 남편한테 맞으면 이 부부 싸움에 대해서는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맞은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말을 못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자손심 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만든 인간들에게 맞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맞을 뿐만 아니라 회초리 몇 대 맞고 끝나는 그런 매가 뼈가 드러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그런 채찍질을 당하십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누구나 이런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맞습니다. 내가 만신창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멀쩡하고 예수님이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라 살점이 걸레처럼 너덜거리듯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쓰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십니다.

내가 지었던 죄가 바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오물, 내가 받아야 할 침뱉음, 내가 받아야 할 조롱을 예수님께서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가시관을 쓰십니다.

하늘의 옥좌에서 왕관을 쓰셔야 하는 예수님 머리가 피투성이가 됩니다. 날카로운 가시 수십 개가 예수님의 머리를 뚫고 피는 낭자하게 얼굴을 적십니다. 내가 이제까지 교만부린 결과로 내가 받아야 할 수난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십자가를 지십니다.

자신이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되었는데 온 몸은 이미 저주를 받았는데 또다시 저주의 상징인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잔인한 사형도구를 몸에 지시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올라가셔야 합니다. 죄는 이렇듯 저주를 가져왔기에 그 저주를 몽땅 지시고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 죄! 내 탓으로 당신이 이렇게 잔인하게 죽어가건만 내 눈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내 죄를 아파하며 가슴을 후려친 흔적은 없고 너무 잘 먹어 생긴 나른함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바로 나 때문인데 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나 때문인데 내 몸은 왜 이렇습니까? 바로 나 때문인데 내 얼굴을 왜 이렇습니까? 바로 나 때문인데 내 머리는 왜 이렇습니까? 예수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저를 울게 하소서 저를 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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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연준 신부
  |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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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자기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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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리고 수난 복음을 통해 비춰진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 역사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대속죄의 죽음’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수난 복음 안에서 정확하게 묘사되고 비춰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수난받는 모습이며,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하게 순종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자기 낮춤과 자기 비움의 모습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자기 비움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인간 세상에 오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첫 번째 자기 비움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비유하자면 자기 비움, 자기 낮춤을 통해 주인이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죄 없으신 분이 수난과 고통을 받고 죄 많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모습, 다시 말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자기 비움, 자기 낮춤인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에게 희망이며 모범입니다. 우리에게 닥쳐 온 고통의 순간과 어려움은 어쩌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어 주는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십자가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당장의 고통이 힘들고 지칠지라도 부활을 꿈꾸며 나에게 닥쳐 온 십자가를 기꺼이 지십시오. ‘십자가를 통해서만 부활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되새기며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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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진병섭 신부
  |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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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십자가, 하늘을 만나고 형제를 만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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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이루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하신 날입니다. 똑바로 십자가를 바라보시겠습니까? 거기, 처참한 모습으로 매달린 한 사나이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뻗는 십자가의 종선(縱線)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만납니다. 인류는 그 종선(縱線)을 타고 하늘로 오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이전에 인류는 오를 수 없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절망을 세월을 보냈습니다.

좌(左)에서 우(右)로 가로지르는 십자가의 횡선(橫線)은 너와 내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너와 내가 만나서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합니다. 그리고 한 형제가 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인류는 미움과 증오, 원망과 원한의 골짜기, 단절의 장벽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합니다. 십자가의 종선(縱線)으로 하늘을 만나게 해주는 예수, 우리는 그분을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횡선(橫線)으로 너와 나를 만나게 해주는 예수, 우리는 그분을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그분에게 십자가는 고통이요 죽음이지만, 인류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새 생명으로 건너갑니다.

당신도 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과 형제들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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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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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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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일곱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입니다. 당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43)입니다. 죄인의 구원을 허락하시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모님을 모시도록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네 번째 말씀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입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목마르다”(요한 19,28)입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입니다.

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중에서 ‘목마르다’고 하신 다섯 번째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목마름은 한계이며 또한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한계를 나타내어 유다인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십니까?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샘솟는 물을 주신 주님께서 왜 목마르십니까?

그 목마름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내놓으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셨지만
제자들은 도망갔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합니다.
이제 우리가 남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목마름을 채워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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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김훈일 신부
  |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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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복음 23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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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시간인, 오후 3시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저녁 수난예식 전례는, 독서와 수난 복음으로 이루어진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로 거행됩니다.

또한 오늘 우리는 예수님 죽음에 동참하는 의미로 '금육과 단식'을 하고, 이렇게 절제한 몫을 수난예식 때 '예루살렘 성지 보존헌금'으로 봉헌합니다.

오늘 묵상 나눔은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십자가의 길'로 대신하면서 이 묵상에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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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말씀>

이제 십자가는 내 사랑의 작별을 고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목마르다."
"이제 다 이루었다."

말을 하려면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조금만 꿈틀거려도 몸,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새로이 깨어난 아픔이 온몸에 신경에 흘러 퍼진다.

이제 달려 있을 만큼 달려 있다가 한번 죽을 내 목숨은 사람의 속성 다 비우고 가물가물... 마침내 숨을 거둔다.

<드리는 말씀>

예수님, 나의 하느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언제 오든, 어떻게 닥치든, 언젠가 있을 저의 죽음을 그 슬픔, 그 두려움과 함께 주님께 바칩니다.

어찌 제가 살 시간을 일 초라도 더 늘릴 수 있겠습니까?

제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죄의 대가로 저의 죽음을 주님께 바칩니다.

하느님, 오, 우리 하느님!
저희가 하고 있는 일, 저희가 모르고 있사오니, 저희를 버리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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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2021년 4월 2일
  |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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