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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수원] 시련의 이유
조회수 | 260
작성일 | 23.03.21
[의정부] 시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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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고관의 마음은 참으로 절박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 정말 간절하게 사정하고 애원합니다.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어려운 일을 당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하느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온 마음을 다해 애원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탄원과 간청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열정적이 되는 때는 바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입니다.

편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이 보일 때에는 하느님을 별로 찾지 않다가도 시련이 닥치면 하느님을 열렬히 찾고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우리는 원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 편에서 보면 우리를 기도하게 만들고 당신을 찾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때때로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끔씩 혹독한 시련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시련이 생긴다는 것은
저주의 표지가 아니라
당신께로 마음을 당기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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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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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요한 복음 4장 43절-54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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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갈릴래아의 카나에 가셨을 때, 카파르나움의 왕실 관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청한다.

카파르나움은 카나에서 80리 정도 되는 먼 거리였다.

예수님은 애원하는 그에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복음 4장 50절)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고관은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기 종들을 만났다. 아들이 완쾌되었다는 말을 듣고, 온 집안이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먼 길을 찾아와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이 고관의 자세를 살펴보자.

우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고관이 일개 목수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께 오기 위해서 먼 거리를 고생하며 찾아왔고 예수님께 간청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표시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4장 48절) 하시면서 왕실 관리를 가르치신다.

사실 그는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복음 4장 49절) 했다.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기 때문에 아이가 죽으면 예수님도 되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기적들은 무엇보다 영혼을 위한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들만이 아니라, 마음이 병든 아버지도 치유해 주신다. 우리가 당신의 기적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 때문에 당신께 귀 기울이도록 만드시려는 것이다.

기적은 믿는 이들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과 믿음에 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는 기적을 기다리기보다는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복음 4장 50절)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함께 가셔야 아들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이 모자라는 이 관리를 도와주신다.

예수님은 관리에게 “가거라.”는 말씀으로 왕실 관리의 믿음을 알아주셨고,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는 말씀으로 당신의 사랑과 권위로 그의 소망을 이루어주시고 계시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복음 4장 50절)

여기서 믿었다는 것은 완전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덕분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 그는 처음부터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예수님께 돌아가 감사를 드리는 대신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각부터 물어보았다.

그 시각이 예수님께서 아이가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그와 온 가족들이 믿게 되었다.”(요한 복음 4장 53절) 한다.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에 두 사람이 치유를 받았다.
왕실 관리에게는 뜻밖의 믿음이 생겼고,
아이는 육체적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다.

우리도 지난날을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은혜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보답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자리에 모시고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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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1년 3월 15일
  |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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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게 하는 두 필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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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에서의 두 번째 표징입니다.
첫 번째 표징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습니다.
요한은 첫 번째 표징과 연결하라는 의미로 ‘다시’라는 말을 쓰며
이렇게 정보를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또한, 이런 정보도 줍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여기서 ‘카파르나움’으로 대표되는 갈릴래아는 다른 복음에서 ‘나자렛’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실제로는 믿을 마음이 없으면서 표징만 요구하는 바리사이-율법학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첫 번째 표징을 일으키게 했던 성모 마리아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 왕실 관리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것으로는 믿기가 부족했으나 왕실 관리는 그 표징들로 자신 안에서 ‘용기와 끈기’를 뽑아냈습니다.

그는 왕실 관리이면서도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용기’를 보였고 예수님의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청하는 ‘끈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청했던 것일까요?

그가 예루살렘에서 보거나 들은
예수님의 표징들은 완전한 믿음을 그에게 주지는 못했습니다.
남의 믿음으로 생겨난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그 표징이 나의 것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종합하여 나에게서 ‘용기와 끈기’를 뽑아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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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에릭슨>이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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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훈련할 경우 10년이고, 하루 10시간이면 3년이 걸립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 간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주, 연습 시간에서 비롯되고, 우수한 집단은 연습 시간이 1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인내와 끈기가 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결론입니다.

‘1만 시간’을 투자할 용기와 그 시간 동안 지치지 않을 ‘끈기’는 바로 누군가의 성공을 보았기 때문에 나옵니다.

타인들이 이뤄낸 것은 그들의 표징입니다.

일단 그들의 표징을 보지 않으면 아무리 100만 시간을 투자해도 그 자리일 뿐입니다. 움직이기는 하나 목적지가 없으면 빙빙 돌 뿐입니다.

남의 성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제, 그 성공이 나의 성공이 되게 만들기 위해 나도 ‘용기와 끈기’를 끌어내야만 합니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하느님의 뜻에 일반 대학을 자퇴하고 신학교에 입학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그리고 신학교에서 끝까지 버틸 끈기를 내지 못했다면 지금 가지게 된 그 작은 저만의 믿음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서 본 열 가지 재앙은 그저 모세의 표징이었습니다. 그 표징을 보고 홍해를 건널 용기와 광야를 이겨낼 끈기가 없었다면 성막 위에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표징은 가질 수 없었습니다.

용기가 ‘세례’의 필수 요소라고 한다면 끈기는 ‘견진’에 필요하고, 그렇게 가지게 되는 믿음이 ‘성체성사’의 준비가 됩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표징은 나의 용기와 끈기를 끌어내면 그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닮으려 해도 닮기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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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몇몇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의 답변은 “일단 돌아가서 매일 팔 돌리기 300번을 해 보게. 그렇게 한 달을 채우거든 그때 다시 나를 찾아오게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아니 팔 돌리기와 학문이 무슨 상관이 있지?’라며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절반의 인원만 다시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습니다.

“잘했네. 좋아. 다시 한 달을 해 보게.”

또다시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젊은이는 지난달보다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한 끝에 1년이 지난 후에도
소크라테스에게 자문하러 온 젊은이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플라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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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표징은 남이 일으킨 표징이 아니라 내가 일으킨 표징이어야 합니다.

내가 일으킨 표징만이 진정한 믿음을 줍니다.
표징을 일으키기 위한 용기와 끈기는
타인이 일으킨 표징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 믿는 것이 있으면
용기를 내고
용기를 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커넬 샌더스”는 트럭에서 자며 환갑이 넘어서 시작한 튀김 닭 사업을 위해 ‘1,008’번의 거절을 버텨낼 수 있었기에 ‘KFC 프라이드치킨’ 창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1,500번의 거절 끝에 자신을 20여 차례나 거절했던 감독에 의해 첫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영국 수상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이 <해로우 스쿨 졸업식>에서 이런 연설을 하였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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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1년 3월 15일
  |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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