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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수원/원주] 증언
조회수 | 288
작성일 | 23.03.22
[의정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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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당신에 대해 증언해줄 사람을 원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임무를 충실히 해내었죠.
요한은 진리를 증언하였습니다.
요한 이후로 수많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충실히 증언하다가 지금은 주님 곁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차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당신에 대해 증언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증언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학습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성서를 통해서,
교회 문헌을 통해서,
또 다른 신앙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늘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안다면 더 설득력 있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책을 읽고,
또 실제로 주님을 만나는 기도 시간을 갖는 등
예수님을 보다 더 잘 알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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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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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는 하느님 앞에 얼마큼 선한가? 그리고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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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예수님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특성이었다. 그들의 복장이나 그들이 거리에서 하는 기도나 모두가 남에게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행동이었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근본적인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자기 옆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가늠해 보는 동안은 만족할 수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찬양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이룰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나는 나의 이웃만큼 착한가?”가 아니라, “나는 하느님 앞에 얼마큼 선한가?” 하는 것이고, “나의 학식과 열심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들보다 더 큰가?”가 아니라, “나는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웃과 비교하는 한, 자만은 커지게 되고 또한 이 자만은 신앙을 말살해버리게 된다. 신앙은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발로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두고 그분과 비교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과 비교할 때,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겸손하게 되어 신앙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급소를 찌르신다.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책들은 모세가 전해준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다. “만일 너희가 이 책을 올바로 읽었다면 그것이 모두 나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희는 모세가 너희 중재인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가 너희를 고발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는 계속 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크고도 무서운 진리가 있다. 유대인들에게 큰 특권이 되었던 그것이 그들에 대한 큰 단죄 받을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단죄를 받을 수가 없다. 무지한 사람은 단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지식이 주어졌고 그들은 그 지식을 옳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지켜온 신앙이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특권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특권이 있다고 한다면 더불어 언제나 책임이 따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 마음에 남과 비교하면서 자만에 빠지고 결국은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우리를 채워주시도록 청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세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미사를 통하여 주님께 겸손하게 도우심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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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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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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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호렙산에서 십계판을 받으려고 호렙산으로 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친구가 되어 말씀도 해주시며 손수 당신 손가락으로 판 위에 증언판을 새겨주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급히 일러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탈출기 32장 8절)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하시지만 사실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속에 그들의 조상의 신을 잊어버리고 이방인의 신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늘 해 오던 대로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절을 하며 숭배를 하며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탈출기 32장 10절)라고 하시며 분노를 들어내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께 기껏 광야에 이 백성을 불러내시고는 ‘진노부터 터트리시면 어쩌시라는 말씀입니까?’라는 식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분노를 거두시고 재앙을 거두시라’고 당부합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데려가 놓고서는 ’산에서 다 죽여 버리셨구나.’라고 떠들어 댈 터인데, ‘그래도 되시겠느냐?’라고 여쭙는 투의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분노를 거두시기를 또한 당부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성조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계약’을 기억하시며 재앙을 거두십니다.

세월이 지나도 까마득하게 지난 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이 못 알아들을뿐더러 심기를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요한 복음 5장 46절)

예수님께서는 당신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 하느님이 아니시라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유일신이라는 사실에 목을 매는 그들이다 보니 당연히 그분의 신성을 못 받아들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더더군다나 못 받아들이고 ‘딴 소리한다.’고 하시며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증언한 사실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요한 복음 5장 31절-32절)

예수님께서는 물론 진리를 증언한 요한이 예수님을 위해서도 증언을 했지만 사실 사람의 증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복음 5장 36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요한 복음 5장 37절-38절)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존경하고 믿는 모세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적은 성경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들에게는 율법은 있을지언정 진정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을 뿐 아니라 사실은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는냐?’입니다. ‘온 정성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냐?’라는 질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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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1년 3월 18일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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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모세다.”(요한 복음 5장 31절-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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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요한 복음 5장 32절)

그분은 믿지 않을 수 없는 진실한 증인이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갔을 때도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음을 상기시키신다.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는 권능을 증거로 당신이 아들이시라고 하신다. 그분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하신 일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분이 하신 일들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요한 복음 5장 37절)

이 말씀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이 모두 그분에 관한 아버지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그분의 일들은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즉 아들이 행하는 일은 아버지의 증언이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같은 본성이 작용하고 있으며 아버지께서는 그 일들로 인해 그분을 증언하신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복음 5장 39절) 하신다.

그들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지만,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분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 복음 5장 40절) 그래서 그들 마음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신다.(요한 복음 5장 42절) 이 말씀은 믿음 없이 단지 성경을 읽기만 해도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진정한 성경의 열매는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성경을 읽기만 하는 것을 그들은 자랑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결정적 말씀을 하신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요한 복음 5장 43절)

성경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시편 118장 26절) 그분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람들 가운데 오신 분이시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었던 모세이다.”(요한 복음 5장 45절) 그들은 모세를 믿는다고 하면서 감히 모세가 기록해 놓은 그분을 거스르고 있다. 그것은 모세를 잘못 믿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을 고소할 이는 그들에게 율법을 준 모세가 될 것이다. 그들이 모세를 올바로 알았더라면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에”(요한 복음 5장 46절) 그리스도를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글을 믿지 않기에 예수님의 말도 믿지 못한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를 다 이루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생활해야 한다. 이 사순시기에 더욱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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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1년 3월 18일
  | 03.22
528 43.6%
[수원] 에덴동산엔 옷 입고 못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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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믿으려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그 핑계로 표징만 요구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선 요한의 증언이 있었고, 당신이 하시는 일이 당신을 증언해주고, 또 아버지께서 직접 증언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이 당신을 증언하는데도 그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들의 영광만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으십니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자기 영광을 추구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과 반대되는 것일까요? ‘자기 영광’은 ‘자존심’과 같은 말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은 ‘내가 그것을 했다.’라고 말하나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맞서는데, 결국엔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

자존심은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은 그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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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 부잣집에 시집 온 가난한 여인이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자존심입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도 다 돈 좋아하는데, 뭐?’라는 마음으로 달랬습니다.
이렇게 자존심은 사실을 왜곡하게 만듭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우리 재산은 다 너희 재산이 될 거야.
너는 그렇게 꾸미지 않아도 이미 부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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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 영광을 받으면 나 자신을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이 영광은 바라지 않고 자존심만 세웠습니다. 자존심을 세우는 방식은 자기를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가해 다른 이들도 자신과 똑같다고 여깁니다.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거짓으로 포장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미 다 이해한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이 하느님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들도 자신과 똑같아야 하기에 ‘역지사지’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다 아는데 역지사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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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사는 것에 대해 매우 분개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 매우 철저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앞길을 막을 정도로 심한 망나니였습니다. 참다못한 아버지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아들을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일단 집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역할극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던 대로 아들을 자신처럼 철저한 모습으로 키우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고, 아들은 처음엔 잘 해 보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자신이 술과 마약으로 망가지는 것으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들이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던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의사는 아버지가 아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이번에는 역할을 바꿔서 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 따듯한 말들과 위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에요!”라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처지가 되어볼 필요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혹시라도 자기 자존심에 금이 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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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처지가 되어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해하고 믿게 됩니다. 위 아버지와 같은 상태까지 오게 만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의 처지대로 남을 판단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남도 자기와 같을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은 하나의 자기 합리화 방법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멈추면 자기 식대로 남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습관도 멈춥니다. 아담이 자기 몸을 가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하와를 심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내 껍데기를 벗어야 상대의 진실도 보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합리화는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가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물론 하느님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믿으려면 무엇보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느님도 믿게 됩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 성경도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하느님도 그런 분이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쉽게 믿는 이유는 그들에겐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하지 못하면 고해성사를 통해서라도 끊임없이 나의 치부를 드러냅시다. 껍데기를 벗어야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옷 입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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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1년 3월 18일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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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   [부산/전주/청주]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4] 1318
1614   [수원/춘천/대전/원주] 소경 바르티매오  [3] 1465
1613   [인천/서울]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3] 1446
1612   (녹)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 3625
1611   [수도회]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  [1] 1479
1610   [부산/대구/광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3] 2263
1609   [수원/춘천/대전] 주님께 나를 따르시라고?  [2] 1141
1608   [인천/서울]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고?  [2] 1347
1607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스승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4] 4716
1606   [수도회]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5] 1438
1605   [부산/광주/춘천/청주/전주] '진정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5] 1412
1604   [수원/춘천] 재물과 재능은 하느님의 뜻에 맡게 사용해야 한다.  [3] 1086
1603   [인천/서울]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 자리?  [4] 1987
1602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전부 버리면 내세에서는 영생을 받는다)  [6] 3598
1601   [수도회]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3] 2821
1600   [부산/청주/전주] 재물에 노예  [3] 3039
1599   [수원/춘천] 나는 얼마나 선행을 하고 있는가?  [3] 38
1598   [인천] 어느 부자 청년  [1] 3707
1597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가진 것을 다 팔고, 나를 따라라)  [4] 2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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