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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수원] 예수님의 때
조회수 | 541
작성일 | 23.03.23
[의정부] 예수님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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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7장 1~2.10.25~30절 그들은 예수를 잡고 싶었으나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때

인간의 일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고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같아 보여도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개입이 있고 시기와 때를 조절하는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이 공존합니다.

유다인들이 벌써부터 예수님을 제거하고 싶어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때문이었지 그들이 망설이거나 주저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시기와 때를 정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조정되며 통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의 모든 의도와 계획은 밀어붙이고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 시기 또한 하느님께서 조절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제 욕심에 겨워 조바심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되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자신의 계획을 맞추려는 신중함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 하면서 도리어 일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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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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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묵은 나로부터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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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제 당신 신변의 위협을 아시고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니었으므로 갈릴래아 지방을 다니신다. 그리고 초막절이 되어 제자들과 따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초막절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 간 광야에서 방황하던 생활을 기억하며 언약을 새롭게 하는 절기로서 9월말에서 10월 초순에 걸쳐 지냈다. 이 축제는 8일간 계속되었는데 예루살렘에서 32킬로미터 안에 사는 성인 남자는 이 축제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영광스럽게 변모시켜 보여주신 때가 바로 초막절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것인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27절)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이러한 것은 예수께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출신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유다인들은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론에 따라 그들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서도 그분은 메시아이시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따로 있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주셨다(28- 29절)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 예수님의 태도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 되고 이 때문에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은 그러한 상황 앞에 어떻게 처신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느끼면서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망설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집과 체면 때문에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웃에 대해 선입견과 고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대하기 때문에 진정 그 이웃 안에 계시는 주님을 외면하고 우리 사이에서 치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할 습관에서 우리는 과감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을 진정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로 바뀌는 것, 여기에서 참으로 묵은 자아로부터의 탈출이 이루어지고 하느님 앞에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이 사순절 기간 동안 하느님께 대한 나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지를 깊이 생각하고, 주님께나 이웃에게나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 변화하기를 노력해야 한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도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하고 그러한 변화의 노력과 은총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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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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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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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때 꿈이 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정말 꿈을 꾸면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나는 꿈만 꾸었습니다. 그러나 잘 날지는 못했습니다. 항상 날다가 건물에 부딪히거나 땅에 고꾸라졌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을 즐기며 밑을 내려다보며 자유롭게 날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높이 올라갈수록 함께 증가하는 것은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면 날지도 못할 것임을 알았고 두려움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도 두려웠고 실패하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저의 영웅들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 통곡하면서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스승님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셔야 하다니요.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꼭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소크라테스의 죽음 앞에서의 이 당당함은 선한 영혼은 죽어서도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저는 믿음이란 것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특효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예루살렘에 겁도 없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설교도합니다. 사람들은 그 용기에 신기해합니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미움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내 집 드나들듯이 합니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손을 대지 못합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 노는 꼬마를 만났습니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

이렇게 묻자 꼬마는 “아뇨”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습니다.

“왜 무섭지 않지?” 다시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우리 인생의 관리인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그 분 소관입니다.

예수님의 당당함은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데서 나옵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 질 것을 알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알고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분이 어떤 일로 자신에게 벌을 줄 지 몰라 항상 불안해합니다.

특히 아버지께 신임을 잃었기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신임을 얻은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까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하십시오. 하늘을 나는 자유와 당당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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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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