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홀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5 94%
(백) 주님 공현 후 토요일 독서와 복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조회수 | 1,905
작성일 | 05.01.04
▥ 제1독서 :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 5장 14절-21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

▥ 복음 :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3장 22절-30절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465 94%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입니다. 인간적인 이해로 보면 두 분은 경쟁적인 관계일 것입니다. 동시대에 태어나신 같은 또래이신 데다가 사촌지간이셨고, 두 분 다 자신의 방식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적 시선으로 비교해 보면,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하며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훨씬 더 멋진 구도자처럼 보입니다. 먹고 마시며 떠도시던 예수님보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을 포기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영성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직면하는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냐?’, ‘나냐?’ 하는 물음입니다. 매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우리는 내 안에서 ‘주님’을 몰아내고 그 영광의 자리에 온통 ‘나’를 자리 잡게 합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예수님과 경쟁을 벌여서 내가 이기고 맙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다가는 결국은 허무한 ‘영적인 패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위대함은 많은 사람은 물론, 예수님께까지 세례를 베푼 ‘세례자’로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은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점 티끌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 놓은 데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말없이 떠난 자리에도 그렇게 주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

매일미사 2011년 1월 8일
  | 01.11
465 94%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세례자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느 주교의 강론 가운데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자신은 더욱 작아지도록, 예수님께서는 더욱 커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예수님께서 더욱 커지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한 세례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참된 신앙인의 모범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작아지고, 예수님께서 커져 가시는 것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기쁘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긴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인공이 되시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면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바로 오늘 복음에서 보여 준 요한의 마음가짐입니다.

-----------------------------------------------

매일미사 2013년 1월 12일
  | 01.11
465 94%
본당이나 활동 단체나 수도회나 또는 직장이나 모두 ‘공동체’라 일컫자. ‘나는 공동체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가?’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는 교회와 세상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아이나 어른이나 하찮은 이가 없다. 아이들도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일하고 돌아온 가족이 갓난아기를 들여다볼 때 평화롭게 자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노동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 준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존재감은 참으로 중요하다. 헌신의 힘이 존재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재감에서 중요한 국면에 봉착할 때가 있다. 역할의 중복이다. 이를테면 내가 본당 성가대의 소프라노를 맡고 있는데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보람되고 존재감이 있다. 어느 날 나보다는 실력이 훨씬 뛰어난 이가 성가대에 들어왔다. 나는 뭔가 불편한 긴장을 느끼게 된다.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나라의 세례 운동이 성과를 거둘 무렵 예수님께서 등장하셨다. 조직이 위축될까 긴장하는 제자에게 요한은 말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당의 전례나 성가대의 성장이다.

공동체가 성장하려면 내가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나서야 할 때가 있다. 세상에 대한 공동체도 그와 같다. 존재 이유가 없으면 스스로 사라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을 보는 눈이 ‘하느님의 일’을 아는 것이다.

-----------------------------------------------------

매일미사 2015년 1월 10일
  | 01.11
465 94%
나는 영혼일까요, 육체일까요?
물론 나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총체입니다. 그런데 영혼은 하늘에서 왔고 하늘에서 오는 기쁨으로 양식을 삼습니다. 육체는 땅에서 왔고 땅의 것을 먹으며 땅으로 돌아갑니다. 서로 추구하는 기쁨이 상반되기에, 내가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어느 것에 나 자신의 정체성을 두느냐에 따라 육체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육체적인 인간은 남겨지고 영적인 인간만 구원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기쁠 상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기뻐합니다. 그리고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육체적인 기쁨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을 좇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하며, 육체적인 기쁨을 줄여야 영적인 기쁨이 커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영적인 인간이 되려면,
오늘 독서 말씀대로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육체도 자아의 헛된 욕망 아래 놓여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요한 6,63 참조). 육체적인 기쁨을 버리고 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이만이 하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월 12일
  | 01.11
465 94%
충만한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적인 보람과 만족감이 아닌,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이 무엇인지 세례자 요한은 오늘 복음에서 알려 줍니다. 전에는 자신을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동향을 제자들에게서 전해 들은 세례자 요한은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경쟁하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은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고만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기쁨은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혼인 잔치의 신부인 당신 백성을 만나러 오시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기쁨이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더 크게 기뻐하는 신랑 친구의 기쁨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것은 세례자 요한에게 그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구세사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목격한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이 보람을 느낄 만도 하지만, 그는 보람이 아닌 충만한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에 그 이유가 나타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하느님의 뜻대로 응답하고 실천한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답변입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일을 마치고,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려고만 하지는 않습니까? 그 일이 하느님의 일이었음에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기쁨을 찾기보다, 누가 쉽게 공을 빼앗아 가면 허탈해하고 낙담하는, 보람만을 찾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독서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모든 일은 세례자 요한과 같이 기쁨과 희망의 삶일 수 있습니다.

--------------------------------------------

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매일미사 2021년 1월 9일
  | 01.1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480   [수도회] 제대로 된 자식이라면!  [3] 2005
1479   [부산/원주/제주/수원] 소작인이 강도가 되기까지...  [6] 2652
1478   [인천/서울/의정부] 나만 잘되면 그만이리라 생각  [3] 2378
1477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죽여 버리자)  [5] 1974
1476   [수도회] 누가 더 불행한가?  [3] 2032
1475   [부산/제주/원주/전주/수원] 부자와 거지 라자로  [6] 2749
1474   [인천/의정부/서울] “나는--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5] 2228
1473   (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  [6] 1912
1472   [수도회] 섬김의 리더십  [8] 1916
1471   [부산/원주/제주/청주/수원] 예루살렘으로 가는 두 마음...  [7] 2290
1470   [인천/서울]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5] 3048
1469   (자)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사람의 아들도 섬기러 왔다)  [6] 1955
1468   [수도회] 하느님 앞에 우열 없이  [5] 2057
1467   [수원/청주/전주/원주] 율법의 근본 정신!  [5] 2494
1466   [인천/서울] 진정한 믿음이란?  [3] 1937
1465   (자)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6] 2139
1464   [수도회] 머릿속이 환해지는 영화  [5] 2080
1463   [부산/제주/청주/수원/원주/전주]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를 베풀어라.  [10] 2268
1462   [인천/서울] 사랑하지 않을 이유…….  [3] 2126
1461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남을 용서해야 용서받는다)  [7] 1869
1 [2][3][4][5][6][7][8][9][10]..[74]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